[매거진 esc] 을지로 맛집 안내서
명소로 떠오른 예술작업실 겸 카페 ‘호텔수선화’, 배우가 원두 볶는 ‘커피한약방’
명소로 떠오른 예술작업실 겸 카페 ‘호텔수선화’, 배우가 원두 볶는 ‘커피한약방’
‘호텔수선화’에는 침대가 없다. ‘커피한약방’에는 한약이 없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수상한 이 두 곳의 정체는 뭘까?
흥청망청 돈이 넘쳐나던 1970~80년대 초 을지로에는 식당과 다방이 즐비했다. 80년대 말 상권이 강남으로 이동하면서 화려한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식당들은 ‘노포’라 불리며 맛에 깃든 추억을 판다. 2000년대 들어 ‘늙은 식당’만 남은 이 거리에서 당대 문화를 주도하는 카페나 식당들을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몇달 전부터 이 거리에 변화의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맨 앞줄에 호텔수선화와 커피한약방이 있다.
“을지로에 최고 ‘힙’한(최신 유행을 이끄는) 카페가 생겼다고 해서 왔어요.” 대학을 갓 졸업한 이상은(22)씨는 지난 18일 호텔수선화에 앉아 수입 맥주를 마셨다. 호텔수선화는 지난해 12월 을지로3가에 문을 열었다. 그는 “홍대나 경리단길은 더는 힙한 동네가 아니다”라며 “아저씨들의 거리라고만 생각했던 을지로에 힙한 카페가 생겨 반전”이라고 말했다.
20대가 몰리는 홍익대 앞이나 가로수길에 호텔수선화가 있었다면 그다지 ‘힙’하지 않았을 것이다. ‘힙스터’(유행에 민감하면서도 대중의 흐름과는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추구하는 이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을지로는 서울에서 몇 안 남은 힙한 빈티지 공간 중 하나다. 그 공간을 호텔수선화가 꿰찼다.
“옛 시간과 공존하는 걸 보여주려
남은 옛날 벽지도 그대로 뒀어요” “과거 허준이 사람을 고치던 곳
한약방이란 이름, 운명인가봐요” 호텔수선화는 차와 맥주, 와인 등을 파는 카페이기 이전에 작업실이다. 이경연(가방·의상 디자이너, 브랜드 ‘킨더가튼’ 운영), 이나나(의상·웹 디자이너, 브랜드 ‘비츠니카’ 운영), 원혜림(보석 디자이너, 브랜드 ‘파이’ 운영) 등 이 공간을 만든 20·30대 여성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겸하고 있다. 카페 한쪽에 있는, 자개가 박힌 상으로 막은 3칸의 작업실은 누구나 볼 수 있게 훤히 뚫려 있다. 원씨는 호텔수선화를 “‘코 플러스 워크 플레이스 카페 앤드 바’(CO+WORK PLACE CAFE AND BAR)이자 전시, 공연 등을 통해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장”이라고 말했다. 뼈대가 훤히 보이는 천장에 무심하게 설치된 독특한 전등에서도 예술적 감성이 드러난다. 영국 런던의 예술학교 등을 졸업한 이들은 작품 제작을 의뢰하거나 재료상이 몰려 있는 을지로, 동대문, 신설동과 가깝고 임대료가 싼 이곳을 주저 없이 선택했다고 한다. 이경연씨는 “을지로는 서울이란 도시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과 옛것의 표정이 남아 있는 곳”이라며 “옛 시간과 공존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수리할 때 발견한 옛날 벽지도 그대로 뒀다”고 했다. 이나나씨는 “영국에선 100년도 더 된 공간을 활용해 전시를 한다. 을지로가 훼손되지 않고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2만~4만원대 와인과 1만5천원이 넘지 않는 쿠스쿠스, 치즈 등 안주, 3천~4천원대 커피가 있다. 맥주와 케이크도 있다.
호텔수선화에서 북쪽으로 길을 건너면 명탐정 셜록 홈스라도 쉽게 찾을 수 없는 후미진 골목에 커피한약방이 있다. 한국 근대문화의 주역 ‘모던뽀이’나 ‘모던껄’의 주 무대였던 을지로에 그 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커피한약방의 개업은 늦은 감마저 있다. 괘종시계, 찬장 등 근현대박물관이라 해도 될 정도로 카페에는 빈티지풍 소품이 많다. “의외로 그 시대(한국 근대) 물건이 남아 있지 않아서 구하는 데 애를 먹었어요. 외국은 골동품 보전이 잘 되어 있는 편인데 우리는 아니더라고요.” 주인 강윤석(47)씨의 말이다.
들어서자마자 흔치 않은 모양의 커피배전기에 매달려 있는 강씨가 눈에 띈다. 그가 들려주는 원두 볶는 소리는 음악 같다. 그는 30년 경력의 연극·뮤지컬 배우다. <빌리 엘리어트><에어포트 베이비><원스>등이 최근 출연작이다. 공연 없는 날, 그는 커피한약방에서 원두를 볶는다.
그가 이 거리를 선택한 이유는 한 시대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과거 70년대에는 다방만 50군데가 넘던 거리였죠. 60년대에는 서울에서 제일 잘나가는 나이트클럽인 ‘판코리아’가 있었고요. 옛날의 부귀영화를 복원해 아직 남아 있는 이 거리의 멋스러움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는 중국 상하이나 유럽까지 뒤져 근현대 소품을 구해 걸었다.
이곳 커피 맛은 수준급이다. 그는 10년 전 커피 세계에 푹 빠졌었다. 직접 숯불에 원두를 볶는 등 다채로운 방법을 시도했었다. “직화로 구운 커피가 더 맛있다”는 결론을 얻은 그는 커피 장인도 다루기 어려운 직화 수제커피배전기를 일본에서 들여와 쓰고 있다. 커피한약방에서는 하루 5㎏의 원두를 소비한다. 2014년 봄에 문 연 뒤로 독특한 이곳 분위기가 소문나면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무엇보다 ‘아저씨들의 거리’에 있다는 점이 회자되었다.
커피한약방은 그의 두번째 커피집이다. 이미 6년 전 서울 안암동에 커피집 ‘커피수공업’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안암동은 그가 태어난 곳으로, 우리 1세대 커피 장인 박이추 선생의 커피집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는 “스타벅스 커피 맛이 기준이 되다시피 한 우리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커피한약방은 우리가 추구하는 맛도 즐겨보시라고 권유하는 커피집”이라고 말했다. 그는 웃으면서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지금 이 자리가 과거 허준이 사람을 고치던 곳이래요. ‘한약방’이란 이름은 우연히 지은 건데, 결과적으로 을지로와의 인연이 운명인가 봐요”라고 그는 덧붙였다. 최근 2층과 좁은 골목 바로 앞에 별관을 마련했다. 2층에 오를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 옛 노래 소리 같다. 누구라도 여기서는 영화 <암살>의 주인공 전지현과 하정우가 될 수 있다. 각종 커피와 음료가 3천~5천원이다.
이 거리에는 호텔수선화보다 먼저 문 열어 회자된 카페 ‘신도시’도 있다. 30대 작가 이윤호·이병재씨가 연 곳으로, 칵테일 종류가 많고 술이 다채롭다. 이들은 다른 예술가 3명과 의기투합해 인근에 중고물품숍 ‘우주만물’도 열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호텔수선화. 사진 박미향 기자
남은 옛날 벽지도 그대로 뒀어요” “과거 허준이 사람을 고치던 곳
한약방이란 이름, 운명인가봐요” 호텔수선화는 차와 맥주, 와인 등을 파는 카페이기 이전에 작업실이다. 이경연(가방·의상 디자이너, 브랜드 ‘킨더가튼’ 운영), 이나나(의상·웹 디자이너, 브랜드 ‘비츠니카’ 운영), 원혜림(보석 디자이너, 브랜드 ‘파이’ 운영) 등 이 공간을 만든 20·30대 여성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겸하고 있다. 카페 한쪽에 있는, 자개가 박힌 상으로 막은 3칸의 작업실은 누구나 볼 수 있게 훤히 뚫려 있다. 원씨는 호텔수선화를 “‘코 플러스 워크 플레이스 카페 앤드 바’(CO+WORK PLACE CAFE AND BAR)이자 전시, 공연 등을 통해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장”이라고 말했다. 뼈대가 훤히 보이는 천장에 무심하게 설치된 독특한 전등에서도 예술적 감성이 드러난다. 영국 런던의 예술학교 등을 졸업한 이들은 작품 제작을 의뢰하거나 재료상이 몰려 있는 을지로, 동대문, 신설동과 가깝고 임대료가 싼 이곳을 주저 없이 선택했다고 한다. 이경연씨는 “을지로는 서울이란 도시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과 옛것의 표정이 남아 있는 곳”이라며 “옛 시간과 공존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수리할 때 발견한 옛날 벽지도 그대로 뒀다”고 했다. 이나나씨는 “영국에선 100년도 더 된 공간을 활용해 전시를 한다. 을지로가 훼손되지 않고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2만~4만원대 와인과 1만5천원이 넘지 않는 쿠스쿠스, 치즈 등 안주, 3천~4천원대 커피가 있다. 맥주와 케이크도 있다.
커피한약방.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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