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호씨.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낙원상가 부활의 노래
익선동 한옥마을에서 고향 동네 슈퍼 같은 ‘거북이슈퍼’ 운영하는 시골 청년 박지호씨
익선동 한옥마을에서 고향 동네 슈퍼 같은 ‘거북이슈퍼’ 운영하는 시골 청년 박지호씨
1930년대 형성된 한옥마을인 서울 종로구 익선동은 박정희 정권 시절 ‘요정 정치’의 대명사였던 ‘오진암’ ‘명월’ ‘대화’ 등 기생집이 즐비했던 곳이다. 70년대에는 기생 관광지로 유명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얇디얇은 모시적삼 치맛자락이 밤거리에 휘날리던 곳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거치면서 익선동 유흥문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새조차 찾지 않는 적막한 동네가 돼버린 이곳에 최근 두세달 전부터 20대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거북이슈퍼’는 그들이 열광하는 공간이다.
지난 11일과 13일 저녁 7시, 거북이슈퍼는 앉을 자리 하나 없이 빼곡했다. 담배, 치약 같은 생필품, 각종 과자류를 파는 동네 슈퍼인 이곳은 ‘가맥’(가게 맥주)집이기도 하다. 지난해 4월 이곳에 터를 잡았는데, 이미 벽은 맨살을 드러냈고, 청춘을 훌쩍 넘긴 의자와 탁자는 삐걱거렸다. 이른바 ‘빈티지풍’ 인테리어다. 거북이슈퍼는 시골 청년의 드라마 같은 성공담을 품고 있다.
익선동에 새바람을 일으킨 이들이 대부분 유학파이거나 세련된 도시인이라면 거북이슈퍼 주인 박지호(28)씨는 대학까지 충청도에서 마친 시골 청년이다. “제가 살았던 동네는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생각하시면 돼요.” 물 좋고 공기 좋은 고향을 떠나 2014년 상경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가 웃었다. 하지만 서울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지하철에서 깜짝 놀랐어요.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마치 로봇처럼 고개를 처박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 거예요. 다들 너무 바빠 보였죠.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매일 불안했어요.”
맨살 드러낸 벽, 삐걱대는 의자
연탄불에 구워주는 오징어, 쥐포
그런데도 20대들이 몰리는 가맥집
“내가 받은 위로 다른 이에게 전하고파” 그의 고향 충남 공주시 이인면 구암리는 가로등 하나 없어 높이 뜬 달이 밤 골목 그림자 길이를 조절하는 동네였다. 마을 슈퍼 앞 평상에는 한잔 술에 취한 노인들의 노랫가락이 퍼지고 ‘노래차’(생필품을 싣고 지방을 도는 트럭. 노래가 흘러나와 붙은 이름)라도 오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잔칫날처럼 몰려나왔다. 그런 곳에서 두 해 전까지 산 그에게 서울은 화성이나 목성보다 더 낯선 외계나라였다. 그는 엄청난 성공을 꿈꾸는 청년도 아니었다. 그저 적은 돈이라도 매달 규칙적으로 받아 소박한 꿈을 펼칠 수 있는 직장을 원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 그에게 ‘익선동’이 나타났다. “고향에 온 것 같았어요. 친절한 동네 분들과 낮은 지붕, 동네 꼬마들, 저에게 큰 위로가 됐지요.” 고향의 동네 슈퍼 같은 가게를 열기로 결심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한 건축가를 소개받았다. 자신의 구상을 얘기하니 건축가는 세련된 솜씨를 발휘해 지금의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열광하는 20대 단골들이 생겨났다. 잡지사에서 화보 장소 섭외도 들어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스타가 된 배우 안재홍도 이곳에서 화보를 찍었다. 거북이슈퍼의 안주는 준비하는 과정부터 20대의 독특한 취향을 저격한다. 박씨가 가게 들머리에 앉아 오징어, 육포, 쥐포, 먹태를 직접 연탄불에 구워준다. 취객이 늘까 싶어 소주는 안 파는 그는 오로지 국산 맥주만 판다. 뭐든 온라인 주문이 더 편한데도 동네 철물점만 간다는 그는 동네 주민들과 호흡하고 싶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20대에게도 깊숙이 다가간 것처럼 거북이슈퍼가 재현한 70년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익선동은 벽 너머 옆집 얘기 소리가 다 들리는 동네입니다. 정겹죠. 80년도 더 된 이 한옥마을이 (거대 자본에 의해) 훼손되지 않아서, 제가 받았던 위로를 2~3년 뒤 찾은 이들도 느꼈으면 합니다. 그 위로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그는 더는 이 시대의 불안한 청춘이 아니다. “성공의 기준을 돈으로만 따진다면 저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죠. 하지만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그러면 성공한 거 아닌가요?” 미소가 번진다. 가게 이름은 ‘느리게 살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지었다고 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연탄불에 구워주는 오징어, 쥐포
그런데도 20대들이 몰리는 가맥집
“내가 받은 위로 다른 이에게 전하고파” 그의 고향 충남 공주시 이인면 구암리는 가로등 하나 없어 높이 뜬 달이 밤 골목 그림자 길이를 조절하는 동네였다. 마을 슈퍼 앞 평상에는 한잔 술에 취한 노인들의 노랫가락이 퍼지고 ‘노래차’(생필품을 싣고 지방을 도는 트럭. 노래가 흘러나와 붙은 이름)라도 오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잔칫날처럼 몰려나왔다. 그런 곳에서 두 해 전까지 산 그에게 서울은 화성이나 목성보다 더 낯선 외계나라였다. 그는 엄청난 성공을 꿈꾸는 청년도 아니었다. 그저 적은 돈이라도 매달 규칙적으로 받아 소박한 꿈을 펼칠 수 있는 직장을 원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 그에게 ‘익선동’이 나타났다. “고향에 온 것 같았어요. 친절한 동네 분들과 낮은 지붕, 동네 꼬마들, 저에게 큰 위로가 됐지요.” 고향의 동네 슈퍼 같은 가게를 열기로 결심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한 건축가를 소개받았다. 자신의 구상을 얘기하니 건축가는 세련된 솜씨를 발휘해 지금의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열광하는 20대 단골들이 생겨났다. 잡지사에서 화보 장소 섭외도 들어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스타가 된 배우 안재홍도 이곳에서 화보를 찍었다. 거북이슈퍼의 안주는 준비하는 과정부터 20대의 독특한 취향을 저격한다. 박씨가 가게 들머리에 앉아 오징어, 육포, 쥐포, 먹태를 직접 연탄불에 구워준다. 취객이 늘까 싶어 소주는 안 파는 그는 오로지 국산 맥주만 판다. 뭐든 온라인 주문이 더 편한데도 동네 철물점만 간다는 그는 동네 주민들과 호흡하고 싶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20대에게도 깊숙이 다가간 것처럼 거북이슈퍼가 재현한 70년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익선동은 벽 너머 옆집 얘기 소리가 다 들리는 동네입니다. 정겹죠. 80년도 더 된 이 한옥마을이 (거대 자본에 의해) 훼손되지 않아서, 제가 받았던 위로를 2~3년 뒤 찾은 이들도 느꼈으면 합니다. 그 위로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그는 더는 이 시대의 불안한 청춘이 아니다. “성공의 기준을 돈으로만 따진다면 저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죠. 하지만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그러면 성공한 거 아닌가요?” 미소가 번진다. 가게 이름은 ‘느리게 살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지었다고 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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