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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제육국수 헌정사

등록 2015-10-14 19:15수정 2015-10-15 10:15

[매거진 esc] 국수주의자 박찬일
지난 6월4일치 이 칼럼에 쓴 ‘메밀국수 만들기’는 다시 시도해보지 않았다. 구수하고 거칠거칠한 메밀이 그토록 ‘까칠’할 줄 몰랐다. 정리하자면, 글루텐이 적은 메밀을 국수로 만들 요량에는 온갖 기술적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더운물로 익히듯 반죽하는 익반죽이 동원되고, 글루텐을 보충하기 위해 밀가루와 전분을 넣는다. 시중의 냉면집에서 거의 이런 방법을 쓴다. 각기 다른 노하우가 있을 뿐 큰 차이가 없다. 수분이 적은 반죽을 힘으로 눌러(압출식) 반죽의 밀도를 유지하는 기계를 쓰는 것도 비슷하다. 그래서 메밀만 100% 넣는다는 ‘순면’을 만드는 냉면집이 위대하고, 그 면에서 소다 냄새가 나지 않으면 더 기분이 좋다. 소다로 쫄깃함을 보강하는 것은 식품공정에서 자연스러운 발상이지만, 뭐랄까 그런 첨가물의 힘을 빌리지 않은 순면의 노고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떡배 단배>라는 소설을 읽고 자란 세대다. 요즘 아이들도 읽는다고 한다. 마해송(1905~1966) 선생님의 작품이다. 개성 출신인 마 선생님은 음식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개성의 특별한 음식인 ‘삼층 제육’도 어느 글에서 언급하셨다. 삼겹살을 이르는 그쪽 말이다. 삼층이란 문자 그대로 삼겹이고 제육이란 물론 저육, 즉 돼지고기를 뜻한다. 멋진 작명 아닌가. 개성 사람들이 삼겹살을 즐겼는데, 사육 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적어놓았다. 영양가가 풍부한 사료와 그렇지 못한 사료를 번갈아 먹이면 기름과 붉은 고기가 층층이 배에 쌓인다는 것이다.

고기국수. 사진 박미향 기자
고기국수. 사진 박미향 기자
그 글에 자극받아 삼겹살을 좀 ‘끊어’ 와서 국수를 삶기로 했다. 제주식으로 하면 고기국수다. 그러나 뽀얀 국물은 아니다. 돼지 사골이나 머리뼈를 우린 육수는 쓰지 않고 맑게 끓이는 국수다. 면은 좀 굵은 중면을 써야 한다. 인터넷으로 지방에서 만드는 중면을 사는 게 좋다. 제주 고기국수에도 대개는 중면을 쓰는데, 덜 붇고 박력이 있다. 먼저 두툼한 삼겹살을 구한다. 썰어놓지 않은 걸 사야 한다. 정육점에 가서 얇게 자르지 말고 1㎏ 정도 썰어달라고 하면 된다. 찬물에 1시간 담가 가볍게 피를 뺀다. 물 3ℓ에 마늘 3쪽과 대파 1줄기, 월계수잎 1장만 넣고 삶는다. 물이 끓으면 바로 중약불로 낮추고 천천히 삶되, 젓가락이 쑥 들어가면 불을 끈다. 고기 온도계가 있으면, 속을 찔러서 80℃에 도달하면 그대로 30분 더 두어서 부드럽게 익히는 게 좋다. 뜨겁게 육수를 데우고, 두툼한 고기를 저며서 준비한다. 막 탱탱하고 미끈하게 삶은 국수를 담고 육수로 두어 번 토렴한 후 고기를 얹어 먹는다. 새우젓으로 간을 하면 된다.

이름하여 ‘삼층제육 중면’이라고 붙였다. 마해송 선생에 대한 헌정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명 ‘부산 교통부 할매국밥집’의 고기 삶는 법을 슬쩍 훔친 것이다. 고기국수이되, 맑고 정갈하다. 다진 청양고추와 마늘을 조금 넣어도 좋겠지만, 여러 가지 채소는 고명으로 안 얹는 게 좋겠다. 그저 고기 맛에 더 집중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다. 삶은 삼겹살을 얇게 저미면 더 고급스럽게 혀에 말려들고, 두툼하게 썰면 아주 터프한 맛이다. 좋은 새우젓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만들기 쉽고 맛도 좋다. 삼겹살 대신 보쌈용 앞다리살을 써도 훌륭하다. 후룩후룩!

박찬일 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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