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도의 디저트.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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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페루 식당 3곳 올라
아마존정글·안데스산맥에서 생산되는 먹거리 풍성
‘2015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페루 식당 3곳 올라
아마존정글·안데스산맥에서 생산되는 먹거리 풍성
여자가 남자를 그윽하게 쳐다본다. 태평양의 해풍이 여자의 등을 밀자 둘의 입술은 천국의 입맞춤을 한다. 페루의 수도 리마의 ‘사랑의 공원’(Parque del Amor)에서 젊은 연인들의 키스를 목격하는 일은 흔하다. 활달하고 개방적인 남미인의 성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페루에서 입맞춤보다 더 황홀한 것이 음식이라면 지나친 비유일까. 페루는 먹거리가 다양하고 풍성한 나라다. 4~5년 전부터 아마존, 안데스산맥, 사막지대, 해양 등 7개의 다른 고도와 기후에서 생산되는 식재료와 매년 최고의 레스토랑 50개를 선정해 발표하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페루 레스토랑 등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달 4일부터 13일까지 페루 수도 리마에서는 남미 최대 미식축제인 ‘미스투라’(Mistura)가 펼쳐졌다. 축제장에서 만난 페루 통상관광부 마갈리 실바(49) 장관은 “페루 음식이 유명해진 건 정부가 실력있는 요리사를 지원해 고급 식도락 여행객을 불러들이고, 동시에 페루 전통음식을 적극 홍보한 결과”라고 말했다. 리마의 미스투라 축제를 찾아, 일명 ‘페루 퀴진’, ‘페루비안 푸드’로 불리는 페루의 맛을 경험하고 왔다.
안데스 자연을 담은 고급 식문화
지난 6월에 발표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페루의 레스토랑 3곳이 순위에 올랐다. 30대의 젊은 셰프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의 식당 ‘센트럴’이 4위,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페루의 국민 셰프 가스톤 아쿠리오의 ‘아스트리드 이 가스톤’(Astrid y Gaston)이 14위, 일본계 페루인 미쓰하루 쓰무라가 운영하는 마이도(Maido)가 44위다. 지난 3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 행사에 초청됐던 마르티네스는 당시 세계가 페루 음식에 주목하는 이유로 “기름진 토양에 바탕을 둔 전통음식에 다양한 식문화(잉카, 스페인, 이탈리아 중국, 일본, 아랍 등)가 섞여 근본(자연)에 충실하면서 개성이 뚜렷한 음식을 창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각) ‘센트럴’. 차림표에는 -10m, 120m, 1800m, 3900m 등 17가지 코스요리마다 숫자가 적혀 있다. 재료를 구한 해발고도를 표시한 것으로, 미식여행가에게는 별난 체험이다. -10은 10m 바닷속에서 채취한 재료라는 뜻이다. 셰프는 “페루의 지형만이 줄 수 있는 맛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캐나다 오타와와 런던의 ‘르 코르동 블뢰’를 졸업하고 뉴욕과 스페인 등지의 레스토랑에서 조리기술을 연마했다.
페루 전통식에 서양 조리기술 ‘센트럴’
동양인 사로잡은 ‘수르키요 시장’ 세비체
정부, 실력 있는 요리사 적극 지원
페루비안 푸드 전세계 미식가 사로잡아
서양 조리기술이 접목된 남미의 대자연이 식탁에 펼쳐졌다. 모자반, 삿갓조개, 바다달팽이와 게로 조리한 ‘스파이더스 온 어 록’은 바다 향과 시트러스(오렌지, 레몬류의 향과 풍미)가 조화롭다. 재료 본래의 형태를 해체해 다른 모양을 창조했다. 본격적인 미식 체험은 페루 남쪽의 도시 쿠스코에서 채취한 약초로 만든 음료로 입안을 씻어내면서 시작한다. ‘밸리 오브 어 트리’는 깨뜨린 접시에 아보카도, 선인장과 캐롭나무에서 채취한 허브로 만든 맛을 얹었다. 아보카도는 고춧가루를 망토처럼 입혔다. 해발 3900m와 2900m에서만 채취 가능한 희귀한 식재료 툰타(tunta)와 쿠슈로(cushuro)로 맛을 낸 접시와 코카콜라의 재료이기도 한 코카잎, 3가지 방법으로 조리한 키노아(남미 고원지대에서 자라는 곡물)가 등장하면 숨이 차다. 등반을 하지 않아도 몽롱한 환희와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고산병을 체험하는 듯 아찔하다.
다시 뚝 떨어져 해저 20m의 맛을 체험한다. 여행자들이 꿈꾸듯 미식의 바다에 빠지는 동안 훤히 보이는 주방에는 25명의 요리사들이 과학자처럼 음식을 만든다. 그들 사이에 4개월째 일하고 있는 20대의 한국인 요리사, 정상이 있다. 식탁에 찾아와 정씨가 한글로 읊조리며 알려주는 메뉴는 저 먼 안데스산맥의 구름이 불어주는 휘파람 소리 같다. 센트럴이 원시의 열락이라면 마이도는 다분히 동양의 신비다. 일본식인 마이도의 음식을 주인 미쓰하루 쓰무라는 ‘닛케이 푸드’라 칭한다. 1890년대 일본 오키나와 주민이 이주해 일본인 2세가 대통령(알베르토 후지모리)이 될 정도로 일본은 페루 사회에 뿌리가 깊다. 음식도 예외가 아니다.
한 면만 바삭하게 잘 구운 교자만두, 갑오징어와 가리비초밥, 소의 편도선으로 만든 육고기 초밥, 아마존 감자로 만든 소바(일본식 메밀국수) 등은 그 모양새가 낯설지 않다. 다만 만두소는 ‘쿠이’로 만들고, 초밥에는 고추냉이가 없다. 쿠이는 햄스터와 비슷하게 생긴 기니피그(애완용, 식용으로 사육하는 설치류 동물) 구이다. 노부 마쓰히사를 흉내 내는 것일까? 2012년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가 세계에서 8번째로 돈을 잘 버는 요리사로 지목한 노부는 젊은 시절 페루에서 초밥집을 했다. 그 경험이 지금의 노부를 만들었다.
미쓰하루 쓰무라는 “노부는 ‘일본’에다 ‘페루’를 조금 얹었지만 반대로 나는 페루에 일본적 요소를 조금 가미하는 것뿐”이라며 선을 긋는다. 페루의 전통음식 세비체(날생선에 라임, 레몬 등의 소스와 채소, 삶은 옥수수 알 등을 버무린 음식)에도 일본 간장을 넣는다. 극단의 창조의 미학을 보여주는 음식도 있다. ‘라파스 세비체’는 오목한 돌이 접시고, 마치 약가루 같은 고운 옥수숫가루, 아보카도, 날생선, 질소에 얼린 레몬즙 등을 비벼 먹는 음식이다. 불고기, 삼겹살을 좋아한다는 그는 한국에 꼭 오고 싶다고 했다. 고급 레스토랑 식도락 여행가라면 ‘아마즈’도 들러볼 만하다. 감자와 맛이 비슷한 카사바나 얇고 넓적한 파스타 면 같은 팜나무순샐러드, 소고기볶음요리인 ‘로모 살타도’ 등은 배가 불러도 젓가락이 계속 간다.
주머니 가벼운 여행객의 미식 천국
리마 남동부 지역인 수르키요에는 서울 광장시장의 3분의 1만한 재래시장이 있다. 우리 돈으로 수십만원에 이르는 센트럴의 식도락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주머니 가벼운 여행객들에게 맛의 지상낙원이다. 결코 고급 식당에 뒤지지 않는 짜고 달고 맵고 고소하고 구수한 뜨거운 남미의 맛이 다 있다. ‘페루비안 푸드’의 반전을 경험한다.
달콤한 과일행사에 온 정신이 팔려 셔터를 누르다 보면 시장 안쪽에서 새콤한 향이 날아와 ‘빨리 오라’고 엉덩이를 쿡쿡 쑤신다. 시큼한 향의 정체는 세비체. 세비체는 페루의 심장이자 정신이자 모든 것이다. 페루인은 나면서부터 세비체의 디엔에이가 박혔다고 농을 한다. 골목마다 전문점이 없는 곳이 없고 그 가짓수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산도가 높아 먹자마자 신맛에 화들짝 놀라는 세비체는 더운 남미에서 식중독을 피하면서도 날생선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기본 조리법도 간단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조차 만들기 쉽다. 레몬이나 라임즙, 으깬 마늘, 고추, 양파, 후추, 소금, 레몬주스 등으로 소스를 만들고 날생선, 삶은 옥수수 알이나 감자 등과 섞으면 된다. 주의할 점은 ‘살이 단단한 흰살 생선을 쓸 것’, ‘라임이나 레몬즙이 양이 다른 재료에 비해 많을 것’ 등이다. 이 조리법을 기초로 변주를 한다.
시장 안 ‘엘 세비차노’(El Cevichano)의 주인 에리카(51)는 따끈한 생선수프인 치카노(chicano)부터 준다. 버릇이 되어버렸는지 수프에도 레몬을 쭉 짜 넣는다. 2~3분마다 뚝딱뚝딱 3가지 세비체를 만들어내는 그는 프로다. 끓인 땅콩즙이 들어간 고소하고 시큼한 세비체와 해초나 가리비가 올라간 세비체의 맛은 물컹한 식초의 바다에 빠진 듯하다. 30년간 남편과 이 시장에서 장사를 한 그는 1년 전 이 전문점을 개업해 4명의 자녀를 키운다. “요즘 부쩍 중국인 관광객이 오고 더러 한국인도 보인다”고 말한다.
15솔(한화 5200원)에 남미가 입안에 들어온다. 털을 다 뽑은 닭, 온갖 내장까지 걸어둔 정육점, 각종 향신료와 생소한 온갖 채소들이 늘어선 가게가 즐비하다. 체리와 비슷한 달콤한 과일 아과이만토(aguaymanto) 같은 별천지도 만난다. 돌아서면 바로 이름을 잊어도 달고 즙이 많은 그 맛은 영원히 기억할 남미 과일들이다. 세비체와 과일로 배를 채우니 한 식재료상에서 한글이 눈에 띄어 놀란다. ‘자연산 골뱅이’가 적힌 깡통이 떡하니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애국심이 발동한다. “이거 파는 나라에서 왔어요!” 굵은 올리브 열매와 치즈, ‘만사나’(manzana) 같은 과자를 파는 상점까지 좁은 시장 골목 어느 한곳도 놓치기 아깝다.
전통과 현대의 맛이 숨쉬는 축제 미스투라
페루요리협회가 주관하는 남미 대표 미식축제 미스투라가 지난달 4일(현지시각)부터 13일까지 수도 리마에서 열렸다. 식재료의 다양성과 무한한 페루비안 푸드의 창의력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열린 이번 축제는 올해로 8회를 맞았다. 온갖 식재료들이 한자리에 모여 맛의 경합을 펼치고 이민 역사가 긴 일본과 중국의 식문화도 한자리를 차지해 잉카문명의 전통조리법과 경쟁했다. 식당 부스는 총 188개로 푸드트럭, 수제맥주 제조업체, 노천식당, 그랜드마켓 등이 어우러져 있다. 새롭게 조망받고 있는 페루의 초콜릿이나 커피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한때 유행을 한 곡물 키노아, 분홍 소금 등 식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일행은 수천년 전 고대의 조리법으로 익히는 고기요리 부스를 발견하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달군 돌멩이를 화기로 삼아 익히는 돼지고기 요리인 ‘파차망카’(Pacha manca) 부스가 가장 인기였다. 돼지를 통째로 뼈만 발라 버리고, 성인 한두 명이 들어갈 만한 4각 석쇠에 걸고 나무로 불을 지펴 굽는 ‘찬초 알 팔로’(Chancho al Palo) 부스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돼지 한마리가 껍데기까지 붙어 있어 마치 양탄자 같다. 소 심장구이인 안티쿠초(anticucho)도 빼놓을 수 없는 먹을거리. 페루의 대표적인 서민음식이다.
리마(페루)/박미향 기자 mh@hani.co.kr
미스투라에 참가해 손님을 모으고 있는 페루 농부. 사진 박미향 기자
미식축제 미스투라에 전시된 페루 감자. 사진 박미향 기자
동양인 사로잡은 ‘수르키요 시장’ 세비체
정부, 실력 있는 요리사 적극 지원
페루비안 푸드 전세계 미식가 사로잡아
센트럴의 음식 ‘밸리 오브 어 트리’. 사진 박미향 기자
하이 앨티투드 레인포리스트. 사진 박미향 기자
다이버시티 오브 콘. 사진 박미향 기자
수르키요 시장에서 파는 세비체. 사진 박미향 기자
아마즈의 음식 ‘로모살타도’. 사진 박미향 기자
치즈를 얹은 구운 바나나. 사진 박미향 기자
수르키요 시장에서 파는 과일. 사진 박미향 기자
미스투라에서 선보인 ‘찬초 알 팔로’.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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