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서울 청담동에 세계 최대 규모의 매장을 연 것을 기념해 한국 작가 6명과 협업한 작품 전시회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을 8월25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연다. 사진은 협업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설치미술가 이불.
[매거진 esc] 스타일
8월까지 DDP에서 열리는 전시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에서 향수 ‘미스 디올’을 주제로 작품 선보인 이불 작가 인터뷰
8월까지 DDP에서 열리는 전시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에서 향수 ‘미스 디올’을 주제로 작품 선보인 이불 작가 인터뷰
이번엔 크리스티앙 디오르다. 지난 5월 서울에서 크루즈쇼를 연 샤넬과 전시회를 연 루이뷔통에 이어, 이번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서울 전시회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이 지난 20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막을 열었다. 4년 동안의 공사를 마친 디오르의 세계 최대 규모 매장 ‘하우스 오브 디올’을 서울 청담동에 새로 연 것을 기념한 행사로, 8월25일까지 계속되는 무료 전시회다.
예술성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고가 브랜드들이 줄지어 서울에서 행사를 여는 탓에 각 브랜드의 차별화 전략은 치열하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선택은 한국 예술가들과의 협업. 1947년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처음 진행한 오트 쿠튀르(예술성에 무게를 둔 고급 맞춤옷) 컬렉션에서 선보인 ‘바’ 앙상블, 일명 뉴룩부터 최근까지의 의상, 가방, 구두, 모자, 향수의 전시도 인상적이지만, 이 브랜드의 역사와 상품 등을 모티프 삼아 지명도 높은 한국 작가들이 빚어낸 작품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설치미술가 서도호는 프랑스 파리 몽테뉴가의 디오르 하우스를 본뜬 작품을 선보였고, 화가 김동유는 점묘화처럼 보이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초상화를 내놨는데, 자세히 보면 그의 얼굴은 디오르의 옷을 자주 입었다는 배우 마릴린 먼로의 작고 수많은 얼굴로 채워져 있다. 화가 김혜련은 디오르가 좋아한 꽃인 장미를 그렸고, 설치미술가 박기원은 한지에 유화를 그렸다. 설치미술가 박선기와 이불은 각각 향수 ‘쟈도르’와 ‘미스 디올’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향수는 공중에 사라지는 행위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잖아요
그 과정이 매우 시적이라 느꼈어요
정체성이 소멸되는 동시에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으로 퍼져나가는”
<한겨레>는 이들 가운데 이불 작가를 지난 18일 오후 만나 그가 해석한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정신’이 무엇인지, 그의 작품관과 디오르의 접점은 어디인지 등을 물었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그의 작품은 2013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에스프리 디오르, 미스 디오르’ 전시회에서 선보인 바 있다. 향수 ‘미스 디올’을 주제로 여성 작가 15명을 초청해 연 그 전시회에서 이 작가는 가로세로 각 3m, 높이 3.8m의 누에고치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설치작품 ‘셀라’를 공중에 매달아 눈길을 사로잡은 바 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청담동 매장 1층을 이 작가의 대형 샹들리에로 장식하기도 했다.
‘미스 디올’의 어떤 점이 이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했을까? 일반적으로 고가 패션 브랜드의 향수는, 소비자들이 옷보다 훨씬 싼값으로 그 브랜드를 경험하고 이미지를 소비하게 하려고 내놓는 것이다. 그런데 ‘미스 디올’은 1947년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첫 컬렉션과 함께 출발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디오르는 조향사에게 ‘사랑의 향’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향수는 첫 컬렉션이 열린 파리 매장 전체에 뿌려진 뒤 세련되고 대담한 젊은 여성의 이미지로 58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향수는 공중에 사라지는 행위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잖아요. 그 과정이 매우 시적이라고 느꼈어요.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소멸되는 동시에, 전에 가졌던 것과는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으로 퍼져나가는 것 말이에요. 제 작품 내부는 거울 조각들로 가득 차 있어요. 그 안에서 서보면, 거울 조각마다 각기 다르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 조각조각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죠. 자신의 모습, 즉 아이덴티티가 분해되면서 빛처럼 흩어지고 반짝이는 장면인 거죠. 그건 냄새가 가진 움직임의 (시각적인) 모습일 거라 생각해요.”
이 작가는 초기에 페미니즘에 기반한 작품들을 선보였고, 최근엔 현대 물질문명에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그가 상업적 경쟁의 선두에 서 있는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하는 것이 불편하진 않았을까 궁금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뉴룩은 여성 신체의 곡선미를 살려 화려하게 만든 옷으로, 전쟁으로 지친 여성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 옷을 입으려면 끊임없이 몸을 관리할 수밖에 없어, 뉴룩은 여성들에게 ‘정신의 코르셋’이 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브랜드가 만든 상품의 정체성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맞게 적절히 변한다고 생각해요. 그건(뉴룩은) 그 당시의 아이덴티티이지 지금의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와 상충되는 부분은 없어요. 더구나 디오르는 작가의 자유 의지를 존중해줍니다. 작품을 광고처럼 브랜드의 이미지에 기여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죠. 작가들과 협업을 하는 게 상품 판매에 어떤 역할을 얼마나 할 것인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 디오르의 영역이 확장되는 걸 원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디오르는 역사가 있는 브랜드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름다움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영감의 출발지나 매개는 될 수 있지만 작가의 생각이나 작품이 거기에 제한받지는 않아요.”
‘셀라’만 하더라도 향수에서 출발한 작품이지만 누에고치, 벙커, 세포, 우주선, 거대한 투구 등 다양한 형태를 연상시킨다. “연상의 거리랄까, 냄새에서 시작해 긴 여행을 하는 거예요. 오래된 것을 이야기하지만 미래적인 우주선이 연상되기도 하고, 굉장히 크고 무거운 설치물이 공중에 매달린 걸 보면 중력을 무시한 것 같은 느낌도 받고.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맥락에서 작품을 보면서 자유롭게 연상하고 느끼는 거죠.”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여성들을 더 행복하고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 브랜드가 여성의 아름다움과 행복, 우아함을 ‘디오르 정신’이라 일컫는 이유다. 예술은 ‘각기 다른 맥락에서 자유롭게 연상하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 이불에게 ‘디오르 정신’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탐구하는 거죠. 패션의 의미에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찾고 변화하면서 멈춰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작가와도 흡사한 모습이고요. 어떤 것을 추적해 현재의 상태를 변화시켜가는 모습, 흥미롭지 않나요?”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크리스티앙 디오르 제공
크리스티앙 디오르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바’ 앙상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잖아요
그 과정이 매우 시적이라 느꼈어요
정체성이 소멸되는 동시에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으로 퍼져나가는”
이불 작가의 작품 ‘셀라’.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에 전시된 디오르의 작품.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에 전시된 디오르의 작품.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에 전시된 디오르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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