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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글 깊이 스며든 땀과 고집

등록 2015-05-27 20:32수정 2015-05-28 10:15

[매거진 esc] 요리
박병혁 사진작가가 5년동안 찍어온 한국의 음식장인들 지면 전시
사진가 박병혁
사진가 박병혁
사진가 박병혁(51)은 한국 음식을 지켜온 장인 70여명을 지난 5년간 찍어왔다. 증류소주, 어란, 푸른 콩으로 만든 된장, 조청, 토판천일염, 황토죽염 등 패스트푸드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우리 음식에 셔터를 눌렀다. 방방곡곡 흩어져 있던 장인들의 숨은 노고와 고집, 손길이 그의 앵글에 오롯이 담겼다. 그가 음식 장인들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다리컨설팅의 정두철 대표를 만나면서다. 정 대표는 당시 산업자원부의 한 사업이었던 ‘명인 발굴 프로젝트’를 수주해 진행하고 있었다. 개인 작업으로 1991년부터 옹기 장인 등을 찍어온 그에게 정 대표는 프로젝트의 영상을 맡겼다.

‘창평 쌀엿’ 장인인 유영군 장인은 3대째 옛 방식 그대로 하얀 쌀엿을 생산한다. 창평 쌀엿은 조선조 양녕대군이 창평에 낙향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깊은 단맛과 바삭한 식감이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
‘창평 쌀엿’ 장인인 유영군 장인은 3대째 옛 방식 그대로 하얀 쌀엿을 생산한다. 창평 쌀엿은 조선조 양녕대군이 창평에 낙향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깊은 단맛과 바삭한 식감이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
제주도의 ‘아침미소목장’을 남편 이성철씨와 함께 운영하는 양혜숙씨는 무항생제 우유를 저온 살균해 요구르트를 만든다. 많이 달지 않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
제주도의 ‘아침미소목장’을 남편 이성철씨와 함께 운영하는 양혜숙씨는 무항생제 우유를 저온 살균해 요구르트를 만든다. 많이 달지 않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
정춘희 장인은 직접 재배한 유기농 콩으로 된장을 만든다고 한다. 된장 브랜드로는 드물게 ‘유기가공인증’까지 받았다. 체에 거른 바닷물을 조금 넣는 울진 지역의 된장제조법을 활용한다. (경북 울진군)
정춘희 장인은 직접 재배한 유기농 콩으로 된장을 만든다고 한다. 된장 브랜드로는 드물게 ‘유기가공인증’까지 받았다. 체에 거른 바닷물을 조금 넣는 울진 지역의 된장제조법을 활용한다. (경북 울진군)
“처음에는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는 박씨는 “장인들이 몇 대에 걸쳐 해온 일인데 몇 시간 만에 찍고 돌아오는 것이 매우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시골마을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세련된 도시 남자인 박씨를 장인들은 낯설어했다. 만남이 반복될수록 그는 “장인들의 열정과 그들이 사랑하는 흙”에 매료되었다. 장인 한 명당 1년에 적게는 4~5번, 많게는 10번 이상 방문해 찍고 또 찍었다.

그는 본래 산업사진가였다. 흔히 사진은 예술사진, 광고사진, 다큐멘터리 사진 등으로 분류된다. 이들 분야에는 유명한 사진가가 여럿 포진해 있고 지금도 이 분야에 뛰어들려는 새내기 사진가들이 많다. 하지만 그가 30년 넘게 매달린 산업사진 분야에는 박기호 선생이 손에 꼽히는 정도다. 산업사진가는 주로 기업인, 생산현장, 신제품 등을 앵글에 담아 산업의 흐름과 방향을 대중에게 알리고, 기업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이들이다.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 수많은 기업인이 박기호 선생의 제자이기도 한 그의 카메라 앞에 섰다.

충북 문화 류씨 종가의 종부인 김종희 장인은 시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독특한 장 제조법을 익혔다. 그는 참나무 장작으로 달군 가마솥에 콩을 익히는 등 옛 방식 그대로 장을 만든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충북 문화 류씨 종가의 종부인 김종희 장인은 시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독특한 장 제조법을 익혔다. 그는 참나무 장작으로 달군 가마솥에 콩을 익히는 등 옛 방식 그대로 장을 만든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식초인 ‘오곡초’를 생산하는 한상준씨. 아이티업계 프로그래머였던 한씨는 8년간의 노력으로 오곡을 주재료로 한 식초 생산에 성공했다. 친환경 오곡과 쌀로 누룩을 빚어 만든 식초는 구수한 향과 장류처럼 독에 넣어 숙성 발효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경북 예천군)
식초인 ‘오곡초’를 생산하는 한상준씨. 아이티업계 프로그래머였던 한씨는 8년간의 노력으로 오곡을 주재료로 한 식초 생산에 성공했다. 친환경 오곡과 쌀로 누룩을 빚어 만든 식초는 구수한 향과 장류처럼 독에 넣어 숙성 발효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경북 예천군)
문경주조 홍승희 대표. 홍 대표는 전통 탁주 제조방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탁주를 빚는다. 최종 완성까지 90일이 걸리는 홍 대표의 탁주는 맛이 진해 적은 양으로도 충분히 풍미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경북 문경시 동로면)
문경주조 홍승희 대표. 홍 대표는 전통 탁주 제조방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탁주를 빚는다. 최종 완성까지 90일이 걸리는 홍 대표의 탁주는 맛이 진해 적은 양으로도 충분히 풍미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경북 문경시 동로면)
50년대 쌀과도 맞먹을 정도로 고가였던 소금. 전남 신안군에서 토판천일염을 생산하는 박성춘 장인은 염전을 운영하던 부친의 가업을 이어 천일염을 생산한다. 토판천일염은 염전의 바닥이 탄탄한 흙바닥으로 되어 있어 ‘장판천일염’이나 ‘타일천일염’ 등과 구별된다. (전남 신안군) 사진 박병혁 제공
50년대 쌀과도 맞먹을 정도로 고가였던 소금. 전남 신안군에서 토판천일염을 생산하는 박성춘 장인은 염전을 운영하던 부친의 가업을 이어 천일염을 생산한다. 토판천일염은 염전의 바닥이 탄탄한 흙바닥으로 되어 있어 ‘장판천일염’이나 ‘타일천일염’ 등과 구별된다. (전남 신안군) 사진 박병혁 제공
지금 그는 스스로를 ‘음식을 찍는 휠체어 사진가 박병혁’이라고 부른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전담 사진가로 활동하다가 강원도 선거 유세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진가로서 큰 시련이 닥쳤다. 인생의 늪에 빠졌을 때 그를 일으켜 세운 이들은 긴 세월 인연을 맺어온 장인들이었다. 경북 울진의 조청 생산 장인인 이원복 선생은 사고 이후 찾아온 그를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는 이제 휠체어에 앉아서만 볼 수 있는 “정직한 눈높이”로 셔터를 누른다. 인물사진가로 방향을 틀어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과 협업해 시각장애인에게 사진을 강의한다. 서울 동대문과 남대문 일대 등의 쪽방촌을 찾아가 인간적인 교류를 나누면서 사진작업을 한다. 인생의 물길이 다른 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그의 사진에 대해 스승 박기호 선생은 “피사체의 마음을 전하는 사진가는 적다”며 “그의 사진은 진솔한 장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어 감동적이다”라고 평한다.

오늘 2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0층에서 그의 전시 ‘명인명촌 꽃피우다’가 열린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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