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좋은 음식에 돈 쓸까, 의료비로 대가 치를까 고민할 시점

등록 2015-01-07 20:45수정 2015-01-08 09:55

김종덕 교수. 사진 박미향 기자
김종덕 교수.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요리
일상화된 GMO 소비 경고하며, 건강한 먹거리 중요성 설파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장 김종덕 교수 인터뷰
맛은 식재료의 질이 8할, 조리사의 실력이 2할이라는 소리가 있다.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부와 땅이 중요한 이유다. 농부가 없다면 맛도 없다. 경남대 사회학과 김종덕(62·사진) 교수를 만나 그가 먹거리 운동에 빠진 사연과 지금 농업의 문제 등을 들었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 처음으로 대학에 농업사회학 과목을 개설하고 30년 넘게 현대사회의 먹거리 문제점과 대안 식량 체계를 연구했다.

지난해 12월12일부터 사흘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4 슬로푸드 위크’.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제공
지난해 12월12일부터 사흘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4 슬로푸드 위크’.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제공

“지금 엄청난 위기다. 농업과 먹거리 분야가 비상사태다. 전세계적으로 그렇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50년도 못 간다.” 그는 앉자마자 격앙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일반인들은 실감을 못 한다. 어떤 위기를 말하는 건가?

“공장식 효율성을 농업에 적용하고, 자연의 시간이 지배하던 영역을 산업의 시간이 지배한다. 농업의 근본적인 부분이 파괴되고 있다. 땅은 빠르게 산성화, 사막화됐다. 토양의 지력이 약화되니 화학비료를 더 쓴다. 지구의 물은 양이 정해져 있다. 공장식 축산은 물을 엄청나게 쓴다. 그래서 식수나 농업용수가 부족하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해 4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인터뷰에서 10년 내 ‘물·식량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응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식량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지엠오(GMO·유전자변형작물)가 마구 수입되고 있다. 우리 밥상의 주권은 누가 가지고 있나? 원래 우리 주도하에 음식을 만들고 먹어야 하는데 지금은 식품회사들이 가공한 것, 반 이상 처리한 것, 싸고 편리하다고 먹는다. 밥상을 그들이 차리고 그들이 통제한다. 이런 과정이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글로벌 푸드 시스템을 더 확산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소비자는 음식문맹자가 된다. 문맹을 깨친 ‘음식시민’이 많아져야 변화가 일어난다.”

-지난해 11월 한-중 자유무역협정 타결 등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있었다. 농업의 주체인 농민들이 점점 더 위기에 몰리고 있다.

“산업형 농업에서 가장 문제는 농민이 줄어드는 거다. 더구나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서 농민은 조립라인 노동자다. 조립라인 노동자는 자율성이 없다. ‘일로부터 소외’가 일어난다. 과거에는 농민이 자가채종(自家採種)을 하고 땅도 관리했다. ‘농민몫 푸드달러’(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자가 샀을 때 농민한테 돌아오는 몫)는 엄청 적다. 1000원짜리 무를 팔았을 때 농민에게 돌아가는 돈은 200원 정도다. 종자 값 치르고 나면 100원도 안 된다. 생계 유지가 안 되니 농촌을 떠나는 거다. 그들로 인해 도시의 노동자들도 고용 불안에 빠진다.”

젊어서 먹는 데 돈 적게 쓰고
나이 들어 의료비를 많이 치르거나
건강한 먹거리에 투자해
의료비를 적게 쓰거나
개인의 생명비용도 고민할 때다

지난해 유엔은 2014년을 ‘가족농의 해’로 선포했다. ‘씨앗부터 밥상’까지 자본이 모두 장악한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서 과거 일반적인 형태였던 가족농은 가장 약자다. 유엔은 식량수급의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족농의 가치를 강조했다. 지속가능한 농업의 핵심에는 가족농이 있다고 봤다.

-일각에서는 슬로푸드운동이 지향하는 건강한 음식·유기농생산 등은 도시 저임금 노동자를 외면한다, 늘어나는 세계 인구를 그것만으로는 먹여 살릴 수는 없다 등의 비판이 있다. 높은 가격도 문제로 제기된다. 결국 유기농 생산물 운동은 고소득층을 위한 거 아닌가? 2008년 슬로푸드운동 창시자인 카를로 페트리니가 esc와 한 인터뷰에서도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생산하는 유기농 먹거리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음식을 돈(가격)이 아니라 가치로 보아야 한다. 무상급식 문제를 생각해보자. 국가가 돈이 없어서 무상급식이 어렵다고 한다. 다른 데 돈을 쓰고 남은 것으로 무상급식을 하려니깐 없는 거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가정마다 소득은 다르지만 돈을 사용하는 데 우선순위를 어디다 둘 것인지가 중요하다. 우리 몸에 들어오는 먹거리는 일반 상품과는 차원이 다르다. 생명비용에는 2가지 타입이 있다. 먹는 것에 돈을 적게 써서 나이 들어 의료비를 많이 치르거나, 우선순위를 건강한 먹거리에 둬서 의료비를 적게 쓰거나! 개인의 전략이 될 수도 있고 국가의 전략이 될 수도 있다. 국가는 유엔(UN)의 인권선언에서 권고한 식량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충족시켜야 한다. 제대로 된 식량을 보급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유기농뿐만 아니라 저농약 생산물이라도 재래시장 가서 구매해 순화시키는 세척법을 활용하면 된다. 우선순위 문제다.”

-로컬푸드도 이용하자는 말인가?

“로컬푸드는 지역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미국 동부 버몬트주의 소도시 하드윅(Hardwick)은 지역 산업이 붕괴되면서 피폐해졌는데 청년들이 로컬푸드로 도시를 살렸다. 우리도 비슷한 사례가 전라도 완주군 등에 있다. 미국에는 ‘슬로머니’(Slow money) 운동이 있다. 은행에 저축하는 돈은 조금 과장하자면 다 투기가 돼서 자본주의 경제의 거품을 만들기에 은행에 저축하지 말자, 지속가능한 사업을 하는 청년들에게 투자하자는 운동이다. 요즘 농업 분야에서도 소셜펀딩 등의 활동이 있다.”

-지난해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녹색평론>과 한 대담이 화제가 됐다. 지엠오와 그것을 유통시키는 몬샌토(미국의 다국적 농업생명공학기업)에 관한 얘기였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심각하다. 지난해만 식용지엠오 포함 900여만톤이 수입됐다. 이전에는 사료만 수입되던 것이 이명박 정부 때 식용도 들여왔다. 지엠오 콩, 옥수수, 카놀라유 등이 우리 식품업계에 밀려들었다. 국민의 식량권을 지켜야 하는 정부가 한 일이다. 수입과자, 혼합가루 등도 포함된다. 발암, 불임 등의 원인이라는 경고가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지엠오를 먹고 있는 셈이다. 외환위기 때 국내 메이저 종자회사들이 모두 외국으로 넘어갔다.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는 지금 우리 종자에 종자 로열티를 내고 있다.”

-한국에도 학계 등에 ‘몬샌토 장학생’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학계 등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들은 아마도 순수한 연구비용 지원이라고 할 거다. 지엠오는 옹호하는 쪽과 반대하는 편의 전선이 형성돼 있다. 기업은 끊임없이 전략을 세워 옹호하는 쪽을 지원한다.”

몬산토코리아는 2013년 서울대 농생명대와 ‘몬산토 장학기금’ 협약식을 열고 미화 15만달러(한화 약 1억6000만원)를 전달했다. 2010년에는 충남대에 장학금을 전달한 바 있다. 농촌진흥청은 2011년에 ‘지엠(GM)작물실용화사업단’(현재 지엠작물개발사업단으로 변경)을 설립했다.

그는 요즘도 거의 매일 ‘음식시민의 행동이 푸드 시스템을 바꿉니다’란 글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린다. 벌써 294회째다. 이전에 22회 올린 ‘슬로푸드운동과 힘’이란 글을 합치면 300회가 넘는다. ‘세월호’ 때는 잠시 펜을 멈췄다.

고등학교 졸업 뒤 1년4개월간 공무원을 하다가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전공을 바꿔 사회학과에서 이례적으로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미국의 한국 농산물 원조가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 농업에 미친 영향’으로 잡고 연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먹거리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슬로푸드운동의 핵심은 농업이다. 그냥 탈패스트푸드가 목적이 아니다. 다양한 음식,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좋은 음식은 맛보다는 배려가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