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삼쇠고기찹쌀말이. 태안의 6쪽마늘을 먹인 한우가 재료다.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요리
향토음식과 파인 다이닝 접목, 먹거리 과학콘서트 등 음식문화의 울타리 넓히기 활발
향토음식과 파인 다이닝 접목, 먹거리 과학콘서트 등 음식문화의 울타리 넓히기 활발
지난 10여년간 우리 식도락 문화는 빠르게 발전했다. 맛집 탐험은 일상의 취미가 됐고 요리 프로그램은 채널마다 넘쳐난다. 요리사는 스타가 됐고 관련 책도 줄을 잇는다. 최근 식도락 업계에서는 먹거리 지식에 목마른 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들도 봇물 터지듯이 열리고 있다. 콘셉트가 분명한 강좌부터 지역 제철음식을 내세운 문화관광 행사까지 다양하다. 먹거리가 미식의 대상을 넘어 타인과 삶을 나누는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
제철 지역 먹거리는 우리 마을 문화관광콘텐츠
지난달 27일 오후 6시께. 충남 태안군 정당리. 안면도의 복합문화공간 ‘떼루아’로 도시인들 20여명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떼루아는 마치 도시의 레스토랑을 옮겨놓은 듯 세련됐다. 음식평론가이자 주인인 손현주씨가 마이크를 잡는다. “미식은 관광의 꽃입니다. 요즘 태안을 찾는 이들은 ‘노을 보러 갈래’라고 하지 않아요. ‘대하철이라는데 먹으러 갈래’ 합니다. 서울에서 2시간 거리인 것도 큰 장점입니다.” 태안 자랑으로 말문을 연 그는 ‘태안 밥상-섬의 만찬 향수’를 기획했다. 방송작가 이연화, 미식체험여행을 진행하는 ‘가스트로투어서울’의 대표 강태안, ‘조은네트워크’ 류왕보, 임영진 대표 등 먹거리 관련 일을 하는 이들을 초청해 만찬을 열었다. 태안의 식재료를 활용한 밥상이다. 먹거리로 그 지역을 이해하고자 하는 문화콘텐츠 행사다. 이번이 6회째다. “이 지역 재료로 궁중음식을 재현한 파인 다이닝(정찬)입니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파인 다이닝 행사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서양의 식문화인 파인 다이닝을 지방제철 만찬의 형식으로 취해 식문화 콘텐츠를 고급화했다. 지방에만 머무는 콘텐츠가 아니라 도시의 식도락가들의 눈높이도 고려한 것이다. 이후 콘텐츠로서 지속성과 외연의 확장이라는 점에 눈여겨볼 만하다. 대전의 ‘킴스키친’의 대표이자 궁중음식연구가인 김은영씨가 밥상을 준비했다. 식탁 저편 부엌에 뚝딱뚝딱 칼질하는 소리와 후각을 깨우는 고소한 향이 피어오르는 사이 전통주 소믈리에인 이현주씨가 마이크를 이어 잡는다. “바다와 산이 가까워 재료가 풍성하고 술의 재료가 되는 쌀도 질이 좋아요.” 그는 궁중음식과 전통주의 마리아주(술과 음식의 궁합)를 시도한다. 백련 하얀연꽃 맑은술, 구기주, 금산 인삼주, 계룡 백일주, 한산 소곡주, 면천 두견주가 우아한 궁중음식과 짝이 된다. 늦가을 태안은 가을꽃게, 대하가 한창이고, 추위가 본격적으로 불어닥치면 곰치, 굴이 날개를 편다. 어리굴젓은 간장게장이 질투할 만큼 밥도둑이다. 김장철 태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먹거리는 게국지다. 게국지는 어려웠던 시절 가난한 밥상을 지켜준 태안의 향토음식이다. 버려지는 배추의 겉잎과 제철 흔한 해산물로 만든 김치인데 팔팔 끓여서 먹는다.
첫번째 우리 혀를 달군 것은 오색밀쌈과 감태가 올라간 청포묵이다. 김밥처럼 돌돌 만 ‘수삼쇠고기찹쌀말이’의 겉옷은 ‘태안 6쪽마늘한우’로 조리했다. 단군신화 후속편을 창작한다면 당연히 주인공은 태안 한우다. 태안군은 10여년 전부터 인근 홍성군의 한우와 차별성 있는 한우 브랜드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물이 태안 6쪽마늘을 먹인 한우다. 김은영씨가 냄비째 들고 나와 자랑한다. ‘궁중우럭면’. 조선시대 궁중음식인 승기악탕의 태안 버전이다. 조리 과정은 같으나 숭어, 잉어, 조기 같은 생선 대신 태안에서 사철 잡히는 우럭을 썼다. 손씨가 우럭면을 다 비운 이들을 향해 말한다. “낙지와 떡갈비가 만났어요.” 마늘한우와 낙지를 다져 뭉쳐서 구운 떡갈비가 식탁에 나온다. 전통주가 돌수록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방송작가 이연화씨는 청양둔송 구기주의 가격까지 묻는다. 행사에 참석한 태안군 김정호 부군수는 조금 과장해서 노화방지주라고 말한다. 취할수록 주름이 펴지는 술일까? 이현주씨는 “쌀의 단맛과 구기자의 묵직한 풍미가 잘 조화된 맛”이라고 설명한다.
만찬의 백미는 안면도 섬사람들의 추억을 식탁에 불러낸 ‘가마솥에 찐 생선’이다. 섬 주민들은 무심하게 소금을 툭툭 뿌려 생선을 말렸다. 압력솥이나 전기밥솥 같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할 수 없었던 시절, 가마솥 밥 위에 짚이나 잔나뭇가지를 깔고 말린 생선을 넣어 쪘다. 주로 박대나 조기 새끼였다. 짚을 깔지 않으면 밥물에 생선이 푹 젖는다. 익은 밥알의 향이 밴 생선은 적당히 꾸들꾸들해 일품이다. 이번 만찬에서는 박대를 가마솥 대신 찜솥을 활용했지만 얼추 비슷하게 재현됐다. 손씨는 “이런 것들이 무형 자산”이라며 “보존해야 하는 콘텐츠”라고 강조한다. 그는 내년에도 실력있는 요리사 12명을 선정해 1년간 매달 ‘태안의 12색 밥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공정, 지역, 계절, 윤리, 철학, 생태계의 순환이 기준이 될 것입니다.”
먹거리로 지역 이해하는 문화행사에
방송작가부터 요리연구가까지 참여
미식의 대상에서
타인과 삶을 나누는 매개로 확산 알면 더 맛있는 먹거리 과학콘서트 “한가지 향을 오래 맡으면 (맛을 보는 감각이) 무감각해진다. 입안의 침은 미각의 기준점이다. 침은 아무 맛도 없다. 단것이 들어와 침과 섞여 녹으면 우리는 달다고 느끼고, 쓴 게 들어와 침에 녹으면 쓰다고 느낀다. 미뢰(미각세포)에 (맛본 것이) 도달하려면 액체 상태가 돼야 한다. 침은 아무 맛도 없지만 사람마다 차이는 조금씩 있다. 어른이 되면 남의 침 맛볼 기회가 오긴 하는데….” 박장대소가 터진다. 김준철와인스쿨의 대표 김준철씨가 담담한 표정으로 강의를 한다. 지난달 28일 저녁 7시, 서울 논현동에서는 별난 수업이 열렸다. ‘과학으로 풀어보는 맛있는 세계’. 문화사적으로 접근한 맛 강좌는 많지만 화학식과 차가운 과학의 잣대를 들이댄 강좌는 드물다. 와인, 발효 등의 연구자, 음식 관련 책 저자, 음식평론가인 4명이 뭉쳐서 ‘맛있는 맛은 무엇인가?’란 의문에 과학적인 접근을 한다. 와인 업계의 전문가인 김준철씨, <맛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최낙언씨,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노봉수 교수, 음식평론가 유지상씨가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대학에서 식품공학 등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의 전문가들이다.
“미각의 차이는 별로 없다. 후각 차이가 영향을 미친다. 사람마다 1000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 코를 막고 음식 맛을 보면 실제 차이를 못 느끼는 현상을 간단하게 설명한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먹거리에 관심이 많거나 업계 인사다. 전통음식연구가인 박종숙 선생, 녹색소비자연대 허혜연 국장 등이다. 2시간가량 이어진 수업이 끝나자 화기애애한 술판이 벌어진다. 김준철 대표가 아껴뒀던 와인을 직접 서빙하고 건배를 제안한다. 빨갛게 볼이 달아오르자 삼삼오오 친구가 된다. 충남 논산시에서 송어양식업을 하는 양촌감영농조합법인 대표 서종석씨가 조심스럽게 술을 꺼낸다. “마셔보세요. 감이 한 병당 8개나 들어가요.” 그가 개발한 감와인이다. 뒷맛이 독특하다. 흔히 와인에서 따지는 탄닌과는 또 다른 떫은맛이 혀를 치고 올라온다. 이 강좌를 기획한 유지상씨는 “맛있다는 체험은 (우리들이) 충분히 해왔지만 과학적 근거 없이 애매모호한 결론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그 부분을 정리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며 “4회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년에는 12회 정도 더 늘려 두번째 강좌를 열 계획도 있다”고 말한다.
태안/박미향 기자 mh@hani.co.kr
낙지떡갈비. 노루궁뎅이버섯이 떡갈비와 한 접시에 올랐다. 사진 박미향 기자
27일 태안에서 열린 ‘태안밥상-섬의 만찬 향수 행사. 만찬을 준비한 이들을 기획자 손현주(사진 위 왼쪽에서 둘째)씨가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방송작가부터 요리연구가까지 참여
미식의 대상에서
타인과 삶을 나누는 매개로 확산 알면 더 맛있는 먹거리 과학콘서트 “한가지 향을 오래 맡으면 (맛을 보는 감각이) 무감각해진다. 입안의 침은 미각의 기준점이다. 침은 아무 맛도 없다. 단것이 들어와 침과 섞여 녹으면 우리는 달다고 느끼고, 쓴 게 들어와 침에 녹으면 쓰다고 느낀다. 미뢰(미각세포)에 (맛본 것이) 도달하려면 액체 상태가 돼야 한다. 침은 아무 맛도 없지만 사람마다 차이는 조금씩 있다. 어른이 되면 남의 침 맛볼 기회가 오긴 하는데….” 박장대소가 터진다. 김준철와인스쿨의 대표 김준철씨가 담담한 표정으로 강의를 한다. 지난달 28일 저녁 7시, 서울 논현동에서는 별난 수업이 열렸다. ‘과학으로 풀어보는 맛있는 세계’. 문화사적으로 접근한 맛 강좌는 많지만 화학식과 차가운 과학의 잣대를 들이댄 강좌는 드물다. 와인, 발효 등의 연구자, 음식 관련 책 저자, 음식평론가인 4명이 뭉쳐서 ‘맛있는 맛은 무엇인가?’란 의문에 과학적인 접근을 한다. 와인 업계의 전문가인 김준철씨, <맛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최낙언씨,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노봉수 교수, 음식평론가 유지상씨가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대학에서 식품공학 등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의 전문가들이다.
‘과학으로 풀어보는 맛있는 세계’ 강좌. 와인전문가 김준철씨가 와인 발효에 관해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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