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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업자 건너뛰니 고생 두배, 만족은 열배

등록 2014-07-30 19:10수정 2014-07-31 13:30

인테리어의 전체 콘셉트는 ‘화이트’였다. 집이 작은 이유도 있었지만 전문가가 아닌 우리가 여러 색을 쓰다간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테리어의 전체 콘셉트는 ‘화이트’였다. 집이 작은 이유도 있었지만 전문가가 아닌 우리가 여러 색을 쓰다간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결혼 2년차 이정국 기자의 생애 첫 내집, 23평 다가구주택 셀프 리모델링 분투기
드디어 ‘우리집’이 생겼다. 비록 ‘어마무시한’ 대출로 하우스푸어 신세가 됐지만, 가족만이 향유할 수 있는 집이 생겼다는 것은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막상 집 계약을 해놓고 보니 막막했다. 10년이 넘은 다가구주택은 신혼부부가 살기엔 너무나 ‘올드’했다. ‘대충 살자’는 남자와 ‘이대로는 못 산다’는 여자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결국 인테리어를 하기로 했다. 처음엔 남들이 그러하듯 ‘업자’를 찾았다. 신혼부부를 위한 온라인 카페에서 “저렴하고 잘한다”는 인테리어업체에 견적을 맡겼다. 전용면적 77㎡(23평)짜리 주택인데도 부담스런 가격을 제시했다. 몇 군데 더 알아봤으나 가격은 대동소이했다.

이 면적대 아파트 인테리어 견적은 2000만~3000만원 사이에서 형성된다. 지극히 평범한 인테리어가 그렇다. 좀더 개성있고 예쁜 집을 만들기 위해선 디자인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고, 가격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고민에 빠졌다. 예산이 제한돼 있으니 잡지에 나올 만한 예쁜 집을 꾸미긴 힘들고, 평범한 집을 원하는데 이 정도로 많은 돈을 들여야 할까?

우리는 돈을 주니
공사는 너네가 해라 식으로
방치하면 집 망치기 십상
꼼꼼하게 공사 상황 챙기고
맘에 안들면 바로 수정 요청해야

주변에 조언을 구하면서 ‘마도구찌’란 말을 듣게 됐다. ‘마도구찌’는 ‘창구’를 뜻하는 일본어다. 인테리어업체에서 직접 시공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테리어업체가 창구가 돼서 부분별 시공을 발주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를 ‘마도구찌’라고 불렀다.

‘마도구찌’는 ‘셀프 인테리어’와는 다른 개념이다. ‘셀프 인테리어’는 전문 시공자 수준은 아니지만 ‘손수 제작’(DIY)이 가능한 건자재를 구입해 스스로 시공하는 것을 말한다. ‘마도구찌’는 일종의 중개 역할이기 때문에 시공은 전문 시공업자가 한다. 다만 중개 수수료와 공사 관리비가 빠지니 가격이 그만큼 절감된다.

‘마도구찌’를 해서 남은 돈으로 아내의 소원(?)이었던 브랜드 싱크를 설치했다. 싱크 타일은 직접 고른 뒤 화장실 공사할 때 같이 시공을 맡겼다. 식탁은 기존 아일랜드 테이블 위에 인조 대리석 상판을 얹었다.
‘마도구찌’를 해서 남은 돈으로 아내의 소원(?)이었던 브랜드 싱크를 설치했다. 싱크 타일은 직접 고른 뒤 화장실 공사할 때 같이 시공을 맡겼다. 식탁은 기존 아일랜드 테이블 위에 인조 대리석 상판을 얹었다.
욕실은 모던한 느낌을 주기 위해 회색 톤으로 했다. 해바라기 샤워기는 건축 박람회에서 찜했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제품.
욕실은 모던한 느낌을 주기 위해 회색 톤으로 했다. 해바라기 샤워기는 건축 박람회에서 찜했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제품.
효과는 컸다. 인테리어업체를 통해서 할 때보다 아낀 돈으로 평소에 갖고 싶었던 가죽소파와 책장, 에어컨 등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자재는 애초 업체가 제시했던 것보다 훨씬 고급으로 했는데도 말이다. 엄두도 못 내던 ‘브랜드 부엌 싱크’를 할 여유도 생겼다. 문손잡이나 수전, 조명 하나하나까지 전부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만족도가 높은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든 집’이라는 자부심이었다.

인테리어는 크게 목공, 욕실, 도배, 부엌, 바닥, 조명, 새시 공사로 나뉜다. 여기에 페인트와 필름 작업이 추가된다. 서울 을지로에는 이 모든 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인테리어의 메카나 다름없다. 물론 값비싼 수입품을 취급하는 매장은 강남에 많다.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공이다. 목공은 인테리어 뼈대를 세우는 일이다. 티브이 뒤쪽인 ‘아트월’을 어떻게 할지, 몰딩(테두리 장식재)을 어떻게 할지 등을 결정하고 문짝과 문틀 교체 작업도 이 목공업체에서 도맡는다. 조명 및 전기 공사를 하기 전에도 목공 작업은 필수다. 전등을 어디에 달지, 플러그를 꽂을 자리를 어느 쪽에 만들지 등을 시공자와 협의해 위치를 정한다. 조명 공사를 계약할 땐 “언제 목공이 오느냐”고 묻는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다.

우리집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마루가 나오는 ‘휑한’ 구조였다. 목공업체와 상의해 중간벽과 중문을 만들었다. 별것 아니었지만 신발장 및 현관 공간이 확보되고 방음이 강화됐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훨씬 안정적인 느낌도 줬다.

조명은 전부 엘이디(LED) 제품이다. 대부분 집에 있지만 쓰지 않는 포인트 등도 엘이디여서 전기료 부담이 적다.
조명은 전부 엘이디(LED) 제품이다. 대부분 집에 있지만 쓰지 않는 포인트 등도 엘이디여서 전기료 부담이 적다.
욕실은 목공과는 별도로 진행되지만, 만약 문틀을 교체한다면 목공과 일정을 맞춰야 한다. 문틀을 해체할 때 욕실 타일에 손상이 오기 때문에 목공 공사가 끝난 뒤에 욕실 공사에 들어가야 한다. 욕실은 을지로3·4가에 몰려 있는 타일 상가에 가면 타일부터 도기까지 전부 해결할 수 있다. 타일과 도기, 수전 등을 원하는 대로 고르면 해당 업체에서 시공업자를 연결해준다. 발품을 팔아 많이 보고 견적을 비교해보는 게 좋다.

이런 식으로 도배, 부엌, 바닥 공사를 진행한다. 해당 가게에 찾아가 주문을 하고 시공 일자를 받는 식이다. 일부 제품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따로 알아봐도 된다. 제품을 미리 받고 시공하는 날에 맞춰 설치를 부탁하면 된다. 아주 특별한 제품이 아니라면 추가 비용을 받지는 않는다. 우리도 수전이나 포인트 조명, 문손잡이 등은 인터넷이나 해외 직구 등을 이용했다.

인테리어에서 가장 큰 비용이 드는 곳이 바로 새시다. 30평대 아파트의 경우 새시 교체 비용만 때론 1000만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럴 때 페인트와 필름을 이용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새시 교체 효과가 난다. 원하는 색깔의 페인트를 덧칠하거나 필름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우리는 필름과 페인트를 반반씩 시공했다. 필름 시공은 작업 속도가 빠른 편이지만 나중에 필름이 벗겨질 우려가 있고, 특히 유리를 고정하는 실리콘이 필름과 다른 색깔이면 실리콘 작업을 추가로 해야 하는 등 비용이 발생한다. 페인트는 필름보다 외관상의 매끄러움은 덜하지만 관리가 쉽다. 긁혀도 다시 칠하면 그만이다. 페인트는 셀프 시공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한번 해보면 전문 시공업자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방문이나 몰딩의 경우 교체해도 그다지 비싸지 않으니, 색깔이나 디자인이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체해도 큰 부담은 없다. 재활용도 적극 검토 대상이다. 처음엔 넓어진 주방에 맞춰 식탁을 새로 사려 했다. 하지만 비용 절약을 위해 기존에 쓰던 아일랜드 식탁 위에 인조 대리석 상판을 얹었다. 10만원 남짓 들였는데 근사한 식탁이 새로 생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콘셉트와 일정 잡기다.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인테리어 콘셉트를 철저하게 세워야 한다. 인테리어 전문가가 아닌 우리도 각종 전람회를 찾아다니고, 잡지나 책 등을 통해 감을 익혔다. 많이 보는 만큼 안목도 넓어지게 마련이다. 하나하나 고르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부부일 경우, 결정은 한 사람이 하는 게 현명하다. 의견이 갈릴 경우 공사 들어가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

콘셉트를 잡았다면 시공 일정 조율을 해야 한다. 일정만 잡히면 인테리어의 70%는 끝난 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철거-목공(조명 및 전기 기초공사)-욕실-필름 및 페인트-도배-조명-바닥-부엌-입주청소 순으로 하면 무리가 없다. 최소 2주 정도로 잡는 게 여유롭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돈을 절약하는데 대가가 없을 리 없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원래는 인테리어업자가 해야 할 일이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는 돈을 주니, 너네는 공사를 해라’라는 식의 사고다. 집 망치기 십상이다. 꼼꼼하게 공사 마무리 상황을 살피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정 및 추가 요청을 해야 한다. 배 떠나면 그만인 것처럼 인테리어 쪽에서 ‘애프터서비스’는 기대 안 하는 게 좋다.

대부분 시공업자는 일용직이다. ‘하루벌이’라는 말이다. 이들은 아침 8시께 나와 오후 5시께 퇴근하는 게 불문율이다. 퇴근시간이 늦어지면 일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같은 일당을 받는데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침대, 서랍장, 커튼 모두 기존에 쓰던 것들. 암막 커튼을 달아 주말 늦잠을 방해받지 않도록 했다.
침대, 서랍장, 커튼 모두 기존에 쓰던 것들. 암막 커튼을 달아 주말 늦잠을 방해받지 않도록 했다.
공사 초반 욕실 타일 공사가 길어져 밤 8시께 끝난 적이 있다. 시공이 어려운 작은 타일(모자이크 타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타일 위치가 삐뚤빼뚤하고 줄눈 사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등 마감이 엉망이었다. 주말을 헌납해 시멘트로 타일 사이 줄눈을 메우고 위치를 바로잡는 등의 마무리 작업을 했다. 공사가 끝난 뒤 나오는 각종 폐기물을 치우는 건 당연한 ‘잔무’였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 전화로 “알아서 잘해주세요”라는 접근이 화근이었다.

다음부터는 출근길에 들러 물과 음료수를 사다드리고 적지만 점심값을 챙겨드렸다. 저녁에는 빨리 일을 마치는 사람이 현장으로 가 마감 상황을 지켜봤다. 그 뒤론 훨씬 공사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결국 노동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 좋은 집을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지금도 집을 둘러보면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해결이 가능한지 알게 됐다는 것은 큰 수확이다. “실리콘 좀 바르면 되겠네”, “백시멘트로 좀 메워”, “페인트칠 좀 하면 되겠네” 등 이른바 ‘솔루션’을 찾은 것이다. 가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럴 때마다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다시는 안 해!”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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