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미식의 도시다, 라고 쓰고 보니 슬쩍 화도 난다. 관광객이 워낙 들끓어서 엉터리 음식도 많다. 특히 시내 주요 관광지에서 먹는 음식은 최악이다. 성정 때문일까, 유럽의 대도시가 서로 느낌이 다르다. 로마는 파리와 흡사하다. 관광 왔으니 니들, 주머니 내놓고 가렴 한다. 말라비틀어진 미국식 햄버그스테이크와 통조림 소스에 미리 익혀둔 국수를 말아 낸다. 해물스파게티에는 냉동새우와 구두창처럼 질긴 오징어가 두어점 들어 있다. 홍합은 물론 냉동으로 수입한 한국산도 넣는다. 로마에서 이탈리아 음식의 진수? 관광지를 벗어나 웨이터 제복 같은 건 입지 않은 식당으로 가야 한다. 또다른 유럽의 대도시 런던은 형편없다고 알려진 음식문화와는 달리 시내 관광지에서도 먹을 만하다. 으레 맛이 없겠지 하는 선입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기대가 적으면 실망도 적은 법. 내 인생의 모토이기도 하다. 그러고 말겠지, 설마, 아니면 말고, 그 정도야 되겠어, 다시 하지 뭐…. 파리라면 런던과 다르다. 다들 기대가 크다. 쓰레기(음식들아, 미안하다) 겨우 벗어난 걸 음식이라고 낸다. 너무 구워서 씹히지도 않는 손가락만한 소시지에, 깡통에 든 데미글라스 소스(조미료 맛이 장난 아니더군)로 맛을 내시고, 으깬 감자는 아예 화학약품 냄새 나는 분말제품을 썼다. 물론 이런 음식은 서울에서도 맹활약하고 계시지만 ‘불란서 파리’라니, 아아 파리라니.
화가 난 내게 현지인이 팔을 잡아끈다. 13구에 가면 화가 풀릴 것이란다. 차이나타운이다. 엄밀히 말해 ‘베트남+남중국 타운’이다. 아니, 보트피플 타운이다. 폭삭 망해버린 월남의 화교 세력이 보트 타고 건너와서 하나둘 식당을 차렸다. 나중에 온 화교 세력들도 꽤 있는데, 역시 베트남풍 요리를 한다. 대세가 베트남식이니까. 음식을 시키면 엉터리 불란서식에 치민 분노가 사라진다. 값도 좋다. 파리에서 8유로짜리 음식이라니. 세금도 20% 정도 붙으므로 실제로는 더 싼값이다. 프랑스에서 살던 사람들은 한국에서 쌀국수 못 먹는다. 먹더라도 욕이 튀어나온다. 이건 쌀국수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한다. ‘엑기스’로 받은 조미료 범벅 소스에 더운 물 타서 육수라고 내는 집들 말이다. 진짜 쌀국수를 파는 집도 더러 있으나 흔하지 않다. 그래서 맛있는 쌀국수 먹으러 일부러 안산까지 가는 사람도 봤다. 유럽에서 먹는 진짜 쌀국수는 각별하다. 불란서어로 ‘통키누아즈’라고 부르는 이 슬픈 쌀국수. 패망의 즙이다. 그래도 맛은 최고다. 나이 든 직원에게 북부 하노이식인가 물었더니, 대뜸 인상을 쓴다. (빌어먹을 공산당이 있는?) 북부는 이렇게 허브를 주지 않아요. 아닌 게 아니라 허브의 잔치다. 민트를 다발로 준다. 다 씹어 먹었다. 남방의 향보다 보트피플의 슬픔이 밀려온다. 프랑스가 그들을 받아준 건 물론 인도적 차원? 천만에. 그들의 원죄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연인>이 탄생한 배경이다. 식민지는 상처를 남긴다. 파리 13구의 통키누아즈. 국물은 남방의 깊은 밀도와 농도. 진해서 목에 걸린다. 국수는 쭉쭉 넘어간다. 대부분 손님들은 파리 시민들이니 후루룩 소리를 내지 말자. 고수와 생숙주를 함께 집어서 삼킨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