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유럽여행을 한 사람들이 이구동성 외치는 대목. “얼음 좀 시원하게 주면 좋겠어.” 습하지 않아서 햇볕이 쨍쨍한 날도 그늘 아래만 들어가면 시원하기 때문일까. 청량음료도 살짝 차가운 정도로 팔고, 아이스커피를 시켰더니 얼음덩어리 하나만 달랑 주는 경우도 있다. 대형마트에서도 얼음을 팔지 않는다. 차가운 음식도 거의 없다. 파스타는 차가운 게 없을까. 미지근한 건 있다. 샐러드처럼 식혀서 먹을 뿐, 얼음 갈아 넣어 입이 얼얼하게 먹는 건 없다. 간혹 한국에서 냉파스타라고 파는 건 일본에서 유래됐다. 차갑게 식힌 스파게티에 명란이나 유자, 고추냉이(와사비)를 무쳐낸다. 일본에 ‘히야시 우동’이라는 게 있다. 뜨거운 국물을 연상시키는 우동을 차갑게도 먹는다. 소바처럼 파와 생강, 무 간 것을 얹은 뒤 양념간장을 부어 비벼낸다. 일본은 더운데다가 습도가 말도 못하게 높아서 셔츠가 등판에 붙어버린다. 그런데 생각보다 차갑게 먹지는 않는다. 히야시 우동도 “음, 제법 시원하군” 정도다. “으허헉, 식도가 얼어붙는 것 같아!” 식의 만화적 감탄사는 나오지 않는다. 유럽의 얼음과자인 그라니타와 셔벗을 보고 빙수를 만들어낸 민족답지 않다. 얼음과자는 몰라도 음식에는 얼음이 통째로 들어가지 않는다. 냉커피(아이스고히)에 들어간 얼음 수도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다. 커피보다 얼음을 더 많이 넣는 한국식과는 사뭇 다른 경지다.
한국인은 미각보다 통각을 더 애호한다. 펄펄 끓인 탕을 그대로 퍼마신다. 식도가 타도록 들이켠다.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고 하는 매운맛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자학의 미각이다. 다 살기 힘들어서 그런 거다. 통각은 처음엔 괴롭지만 점차 도파민을 유발한다. 마약처럼 일상의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차갑고 매운 음식을 찾는다. 한·일 양국에서 여름이면 크게 성행하는 메밀국수도 그렇다. 일본식은 그저 ‘뭐, 차갑긴 하지?’ 정도의 양념장에 식힌 메밀국수를 찍어 먹는다. 이른바 ‘자루소바’다. 한국도 일제 때 일본식 자루소바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먹는 방법은 자못 다르다. 자루소바는 사철 먹는 반면, 한국식 여름 메밀국수(담는 그릇이 대나무판이라는 데서 착안한 판 메밀이라고 부르는)는 여름이 한철이다. 아예 얼음을 갈아서 차갑게 만든 국물에 국수를 넣어 냉면처럼 훌훌 들이마신다. 양념장을 아예 슬러시로 만들기도 한다. 쯧쯧, 혀를 차는 미식가도 있겠지만 뭐 어떠냐. 일본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한국식으로 먹으면 그만이지.
일본도 살기 힘들어지는 걸까. 변두리 식당에서도 매운 김치가 반찬으로 나오고, 어지간한 라멘집에서는 ‘기무치라멘’ 메뉴가 있다. 김치찌개가 포장되어 마트에서 팔린다. 얼음에 바락바락 씻고 얼음처럼 얼려서 들이마실 때 식도를 과감하게 유린하는 게 특기인 한국식 냉면도 점차 인기를 끈다. 주요 도시의 냉면 파는 한식당에 손님이 제법 있다. 중국식 면을 차갑게 내는 집도 있다. 하루사메(春雨)라고 부르는 당면에 간장소스로 중국식 냉면을 만든다. 탄탄멘이라는 쓰촨식 국수를 여름용 냉면으로 바꾸기도 한다. 어쨌거나 여름엔 역시 한국식 냉면이 갑이다. 아아, 저 긴 줄은 어쩔 것이냐.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