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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떠나는 시원한 냉면여행

등록 2014-06-18 19:33수정 2014-07-02 15:28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경기 북부 냉면 맛집
여름철 최고 인기 음식인 냉면의 고향과 가까워서일까.
경기도 북부에는 숨은 냉면 맛집들이 많다.
곧 돌아갈 줄 알았던 실향민들이 연천에 둥지를 틀고
메밀을 심어 면을 뽑아내던 이곳은 서울 냉면 맛집들의 본류이기도 하다.
‘연천냉면’을 아시나요?

냉면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마니아도 생소한 이름이다. 새로 생긴 냉면 맛집이 아니다. 농촌진흥청의 전통향토음식 자료집을 보면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에서 재배한 메밀을 이용하여 실향민들이 북쪽 고향 맛을 재현하고자 만들어 먹기 시작한 연천 특유의 냉면’이라고 한다. 피난민들이 많았던 백령도까지 알려진 냉면이다. ‘특유의’라는 문구에 귀가 솔깃하다. 도대체 어떤 맛일까?

맥 끊길 뻔하던 연천냉면
이십대 젊은이들 열정으로
복원해 명맥 살려
메밀향 강한 게 특징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올해도 여름의 제왕은 냉면이 될 모양이다. 벌써부터 서울의 유명 냉면집 앞에 늘어선 줄이 길다. 그 줄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북쪽으로’ 연천냉면을 찾아 떠나보자. 내친김에 경기북부지역의 다른 냉면 맛집들도 한 바퀴 돌면 여름 채비는 마친 거다.

경기도 동두천시에 있는 '평남면옥'의 평양냉면
경기도 동두천시에 있는 '평남면옥'의 평양냉면
지난 12일은 ‘냉면 먹기 좋은 날’이었다. 지하철 1호선 소요산역에서 내려 전곡터미널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자 흥겨운 트로트 음악이 엄지손가락 춤사위를 부른다. 연천냉면을 만드는 거의 유일한 냉면집, ‘황해냉면’을 찾아가는 길이다. 전곡터미널에서 한 시간에 한번씩 오는 58번 버스를 타야 한다. 논과 산등성이, 작은 국도를 곁에 둔 황해냉면은 낡았다. ‘신스(since) 1980’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을 담은 간판에 궁금증이 더해진다. 하지만 주인의 얼굴을 접하자 의심이 고개를 든다. 주인인 이시연(23), 이승건(25)씨는 10대처럼 앳되다. 이들은 남매다. “아버지가 하시던 가게 물려받았나?”라는 질문에 이씨는 “아니다” 단호하게 답한다. 면 반죽을 기계에 돌리고 육수를 끓여내는 솜씨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이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연천냉면은 이 땅에서 단언컨대 사라졌다.

연천냉면의 맛을 잇고 있는 ‘황해냉면’.
연천냉면의 맛을 잇고 있는 ‘황해냉면’.
경기도 의정부시의 '평양면옥'
경기도 의정부시의 '평양면옥'
연천냉면은 고향으로 곧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더 남하하지 않은 실향민들의 향수가 짙게 밴 냉면이다. 평양냉면과 맛의 뿌리가 같고 조리법도 대동소이하나 강원도와 이북산간지역과 가까워 질 좋은 메밀 재배가 가능했고 그런 지역적인 특색이 살아 있는 냉면이다. 지금 서울의 일부 냉면명가의 시작인 의정부 평양면옥도 최초 출발지는 연천이었다.

시연씨는 하루 종일 뜨거운 김과 폴폴 일어나는 메밀가루와 씨름해도 “정말 재밌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소리만 한다. 그녀에게 도시의 현란한 불빛 따위는 관심 밖이다. 황해냉면 창업자인 김순년(76) 할머니와의 조우는 그 열정이 부른 행운이었다. 본래 김 할머니는 황해도가 고향인 남편 이기관씨와 황해냉면집을 열었다. 40년 단골이라는 주민 현석주(70)씨의 증언을 들어보면 1970년대쯤 처음 열고 1980년 왕징면사무소 인근에서 지금의 자리인 ‘68-3번지’로 이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동안 황해냉면은 지역의 최고 맛집이었다. 현씨는 “영감님 있을 때 잘됐지. 줄 서서 먹었어. 영감님 사람이 좋아서 친구처럼 술 한잔도 많이 했어”라고 전한다. 근처 부대의 군인들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줄을 섰다. 김 할머니는 2009년 할아버지가 작고하자 혼자 냉면집을 운영했다. 이씨 남매의 이모가 운영하는 찜질방을 다니다가 주인과 친해져 냉면집을 임대해 줬다. 시연씨는 “처음에는 냉면집을 운영하게 된 이모를 돕기 위해 왔다가 3년 전부터 제가 직접 나섰다”고 한다. 황해냉면 건물 2층에 살던 김 할머니는 3년 동안 냉면집의 새 주인이 된 시연씨에게 ‘할아버지의 냉면 만드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쳤다. 영양학을 전공한 그는 동두천에서 매일 출퇴근하면서 일을 배웠다. 제대한 오빠 승건씨도 돕겠다고 나섰다.

평남면옥의 '돼지고기'계자'무침'
평남면옥의 '돼지고기'계자'무침'
평양면옥의 '돼지고기편육'
평양면옥의 '돼지고기편육'
냉면에서 메밀향이 확 풍긴다. 면이 뚝뚝 끊긴다. “소요산역 근처 작은 밭에서 메밀 재배 직접 해요.” 가위로 오린 것 같은 아주 얇은 돼지편육 한 장, 절인 무, 오이가 고명이다. 어라, 달걀이 여느 유명 냉면집과 다르다. 구운 달걀이다. “손님들이 흰 달걀은 많이 남기더라.” 면의 색은 좀 짙다. 메밀의 껍질을 까서 반죽했다면 나올 수 없는, 막국수와 비슷한 색이다. “껍질 깐 메밀과 안 깐 메밀, 옥수수 전분, 밀가루를 조금 섞어 쓴다”고 한다. 한우 잡뼈, 사태 등이 국물의 기본이다. 거기에 동치미 국물이 들어간다. 본래 김 할머니가 만들었던 연천냉면은 사골로 국물을 우리는 것이었지만 시연씨는 “요즘 사람들 입맛에 부담스러운 느끼한 맛이어서 바꿨다”고 한다. 시연씨의 꿈은 크다. “이 냉면을 서울사람들에게 맛보게 하고 싶다.” 가격 7000원. ‘할아버지의 꿩만두’도 있다.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무등리 68-3/031-833-7470)

황해냉면의 '꿩만두'
황해냉면의 '꿩만두'
명맥이 끓길 위기에서 기사회생한 냉면집은 또 있다. 동두천 최강 냉면집 ‘평남면옥’. 냉면은 자고로 첫 한입에 결판이 난다. 싹싹 그릇 바닥까지 다 비울 것인가, 남길 것인가! 쇠고기 육수와 동치미 국물이 뒤서거니 앞서거니 경쟁하는 평남면옥의 육수는 ‘명성이 그냥 명성이 아니다’란 생각을 갖게 한다. 한 모금에 고아한 풍미가 온몸으로 퍼진다. 메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섞고 익반죽한 면은 미끄러질 듯 부드럽다. 역시 동두천시 대표선수답다. 하지만 주인 윤혜자(54)씨는 “여기는 (서울에서) 멀다. 꼭 찾아오는 단골은 있지만 전성기보다는 줄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대도시, 서울의 공포스러운 막강파워가 여기까지 미친다. 평남면옥은 1950년대 초 문을 연 노신사급 냉면집이다. 윤씨는 10년 전 주인이 됐다. 그가 인수하지 않았다면 평남면옥의 우아한 맛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본래 평양이 고향인 김종연(76)씨의 아버지가 창업자다. 김씨는 아내 한음전씨와 2대째 운영하다가 2000년대 초 아내가 작고하자, 10년 전 20대부터 평남면옥에서 일했고 가족처럼 지낸 윤씨에게 맛의 모든 것을 넘겼다. 고향이 충청도 부여인 윤씨는 결혼하자마자 남편의 고향인 동두천시에 와 살았다. “우리 겨자무침은 다른 곳에 없다. 초계탕 하는 데는 많아도.” 갖은 채소, 소나 돼지고기를 섞고 겨자소스를 뿌린 무침은 술안주로 최고다. 윤씨는 “가게를 더 넓힐 생각은 없다. 서울에서 같이 내자는 이도 있는데, 그냥 배운 대로 이 정도 규모로만 하고 싶다”고 한다. “아버지 같고 오빠 같은” 김종연씨가 아직도 이곳을 찾는다. 그를 섭섭하게 하고 싶지 않다. 현재 윤씨의 아들 김지용(33)씨가 이을 준비를 한다. 7000원. (경기도 동두천시 생연로 127/031-865-2413)

'군남면옥'의 냉면
'군남면옥'의 냉면
경기 북부 냉면투어에 ‘군남면옥’과 의정부 ‘평양면옥’을 빼놓을 수가 없다. 군남면옥은 황해냉면에서 차로 5~7분 거리에 있다. 지역민들은 “황해는 옛날식 그대로고, 군남은 요즘 맛이다”라고 한다. 군남면옥은 전통식과 이른바 분식점 냉면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강원도가 고향인 박경선(62)씨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만들었다. 아들 박혁수(35)씨는 “아버지는 (연천에 살던) 작은아버지를 젊은 시절 뵈러 왔다가 물 좋고 산 좋은 이곳에 눌러앉으셨다”며 “처음에는 뱃사공이셨다”고 한다. 북삼교가 생기자 여인숙 겸 백반집을 운영했고, 군남면옥의 시작이었다. 닭 육수에 메밀과 감자 전분을 5 대 5 혹은 6 대 4 정도로 섞어 면을 만드는데, 감자 전분을 쓰는 곳이 의외로 많지 않다. 가격은 5000원. 푸짐해서 성인 여성 둘이 한 그릇 나눠 먹어도 부족하지 않다. 군남면 일대 낚시터를 찾은 이들이 가는 맛집이다.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삼거리 400-16번지/031-833-8131) 의정부 평양면옥은 서울의 을지면옥, 필동면옥, 잠원동의 본가평양면옥의 ‘본가’다. 평양이 고향인 고 홍영남씨가 70년대 처음 경기도 연천군에 열었다. 1987년 지금 위치로 냉면집을 옮기고 아들 진권씨가 가업을 이었다. 서울의 냉면집들은 홍영남씨의 딸들이 운영한다.

고풍스러운 외관은 예전과 다름없고, 본가답게 냉면은 슴슴하고 수육은 가히 당대의 으뜸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풍미가 좋다. 9000원.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3동 385/031-877-2282)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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