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별장이 된 캠핑카, 마을을 꿈꾸다

등록 2014-06-11 19:36수정 2014-06-12 11:17

캠핑카 마을 ‘오름새’에 주말이 밝았다. 조용하던 마을에 생기가 돈다. 이경전(맨 왼쪽)씨의 ‘집’ 마당에 아이들이 모여 무언가를 한다. 이제 막 마을에 입주한 송명환·이민주(맨 오른쪽) 부부는 마을의 ‘홍반장’인 이씨에게 와인잔을 받아들고 건배를 했다.
캠핑카 마을 ‘오름새’에 주말이 밝았다. 조용하던 마을에 생기가 돈다. 이경전(맨 왼쪽)씨의 ‘집’ 마당에 아이들이 모여 무언가를 한다. 이제 막 마을에 입주한 송명환·이민주(맨 오른쪽) 부부는 마을의 ‘홍반장’인 이씨에게 와인잔을 받아들고 건배를 했다.
[매거진 esc] 캠핑카 정박촌 탐방
앞집 아이가 비어 있는 옆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 그림책을 본다. 누가 갖다놨는지도 모를 수박을 같이 먹고 이야기한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앞집도 옆집도 집은 아니다. 캠핑카 이십여대가 정박해 만든 작은 마을을 찾아가 1박2일 동안 동네 사람이 돼봤다.
경기도 여주의 한적한 시골길 끄트머리. 작은 숲이 나온다. 내비게이션은 어느덧 안내를 종료했다. 하지만 눈앞에 차가 여러번 지나간 흔적이 있는 흙길이 이어진다. 차를 조금 더, 조금 더 안쪽으로 몰고 들어가면 다시 시야가 넓어진다. 자갈이 깔린 널따란 대지 곳곳에 하얀 집들이 모여 있다. 아니다, 집이 아니다. 하얀 차들이다. 가만, 차도 아니다. 네모반듯한 캠핑 트레일러들이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오름새 캠핑장’. 하지만 일반인의 캠핑 신청을 받는 곳이 아니기에 캠핑장이라기보다는 ‘오름새 마을’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마을에는 21가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집을 짓는 대신 캠핑카를 가져다 두었다. 각자의 땅을 나눠 평평하게 고르고 자갈을 깔고 캠핑카를 정박했다. 그렇게 마을이 탄생했다.

도시 사는 사람들은
전원주택이나 별장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꾸잖아요
가격을 따지면 별장보다
캠핑카가 실현가능한 꿈이죠

“정말 크다! 아빠, 이거 우리가 잡았어요!” 아이들 8명이 우르르 언덕을 뛰어내려왔다. 4~9살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꼭 잡고 있는 것은 어른 손바닥만한 개구리였다. 개구리는 버둥버둥, 아이들은 깔깔깔. 웃음소리가 마을에 퍼졌다. 이 집 저 집에 ‘커다란 개구리’를 자랑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5월의 마지막날 따가운 햇살 속에서 아이들은 땀 흘리며 뛰어다녔다.

“주중에는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서 어른들은 회사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 가느라 얼굴도 못 보잖아요. 그러니 주말에는 거의 무조건 이 마을로 와요. 여기 오면 마음 맞는 이웃이 있고, 아이들의 친구가 있고, 우리 가족의 별장인 캠핑카도 있으니 푸근하고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홍반장’ 이경전(39)씨의 말이다.

이씨는 ‘캠핑 마니아’다. 동갑내기 부인 김효정씨와는 10여년 전 연애할 때부터 텐트를 들고 여행을 다녔다. 첫딸 상은(9)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캠핑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이후 다영(8), 석훈(5)이가 태어났다. 가족이 늘어날수록 하나둘 캠핑 장비가 늘어나다 보니 주말에 한번 짐을 꾸리는 것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고층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가득 짐을 싣고 3~4번 왕복해야 간신히 차를 출발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다른 방식의 캠핑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7년에 처음으로 ‘캠핑카’를 구입했다. 차 뒤에 상자 모양의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다가 펼치면 잠자리 공간이 되는 방식의 ‘폴딩형 트레일러’였다. 어디든 가서 트레일러를 펼쳐 잠은 잘 수 있게 됐지만 아이들 화장실과 씻을 공간 등이 부족했다. 이동식 주거 공간으로 부엌과 화장실을 갖춘 ‘카라반’(주거 공간이 갖춰진 캠핑 트레일러를 뜻함)을 구입한 까닭이다. 셋째가 태어난 직후에 그는 따로 트레일러 면허를 구입해야 끌 수 있는 750㎏ 이상급 대형 카라반을 구입했다. 그리고 이 마을을 만났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어딘가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짓거나 별장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꾸곤 하잖아요. 저희 가족은 캠핑을 좋아하니 좋은 집을 사는 대신 캠핑카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그 꿈을 이룬 거죠.” 평범한 회사원인 그는 전셋집에 살고 있다. 이 마을 어귀에만 해도 ‘친환경 한옥 전원주택 2억원대’라는 내용의 홍보 펼침막이 걸려 있다. ‘억’ 소리 나는 전원주택이나 별장에 비해 1천만~5천만원대의 캠핑카는 ‘실현 가능한 꿈’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씨의 첫째 딸 상은과 막내 아들 석훈이.
이씨의 첫째 딸 상은과 막내 아들 석훈이.
자유로움과 한적함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했던 캠핑은, 늘어나는 캠핑 인구 속에서 부대끼는 날이 늘어가면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캠핑 공동체’에 대한 꿈으로 번져나갔다. 짐 싸고 또 풀고 다시 싸는 데 지치는 여행이 아닌 어른도 아이들도 제대로 쉬고 맘껏 놀며 어울릴 수 있는 시간. 3년 전 비슷한 꿈을 가진 이들이 모여 땅을 마련했고 마을을 꾸렸다.

이씨는 마을의 가장 아래쪽 땅에 한쪽에는 카라반을 정박했고 다른 쪽에는 대형 천막을 쳐 사랑방을 꾸몄다. 나무를 직접 구해다가 카라반 앞쪽에 나무 데크를 설치하고 천막 안에 냉장고, 빔 프로젝터까지 가져다 놓으니 언제든 몸만 훌쩍 오면 되는 ‘제2의 집’이 탄생했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시시한 놀이나 하죠. 텔레비전 보고 핸드폰 만지고. 여기서는 할 게 정말 많아요. 개구리 재우는 법 아세요? 배를 문질러 주면 돼요. 애들이랑 하루 종일 놀아요.” 아홉살 상은이의 ‘마을 예찬론’이다.

마을에는 그처럼 ‘오래된 캠핑족’부터 초보 캠퍼까지 다양하다. 송영은(33)·한만혁(33) 부부는 카라반을 구입해 캠핑 세계로 입문한 지 이제 1년이 됐다. 요즘 캠핑의 재미에 푹 빠진 그들은 아들 호영(7), 호준(5)을 데리고 마을에서 가장 왕성하게 ‘외출’을 나간다. “10번의 주말 중 8번은 카라반을 끌고 여행을 나가고 두번은 마을에서 지내요. 7번 국도를 따라 바닷가를 쭉 여행하는 것이 참 좋더라고요. 집에는 카라반을 세워둘 곳도 마땅치 않은데 집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 세워두고 마을에서 사람들과 어울려도 즐거우니 카라반 공동체, 대만족입니다.”

독일 비스너 카라반의 실내 모습.
독일 비스너 카라반의 실내 모습.
이경은(40)씨는 아예 캠핑 트레일러를 정박해 놓고만 사용할 요량으로 유럽형보다 무거운 대신 더 가정집 같은 실내를 가진 미국식 트레일러를 선택했다. “오늘도 남편이 바빠서 초등학교 2학년과 다섯살인 아이 둘만 데리고 왔어요. 예전에 폴딩형 트레일러를 끌고 다닐 때는 남편 없이 엄두를 못 냈는데 이렇게 정박해놓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니 아무 짐 없이 저 혼자 아이들 데리고도 주말 지내기가 거뜬합니다.” 김금영(36)·주옥(35)·만식(32) 남매처럼 카라반 한 대와 오두막 두 채로 마을 안에 가족 공동체를 뿌리내린 이들도 있다.

스무가구가 넘는 집이 분쟁 없이 지내려면 공동의 규칙도 필수다. 마을에는 “지속적으로 가족 중심의 공동체 캠핑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행동수칙을 철저히 지켜달라”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 두 가족 이상 음주 시 자정 이후에는 자제하기, 친지나 지인 방문 시 사전에 공지하기, 쓰레기 되가져가기, 여기서만이라도 아이들이 마음껏 소리 지르며 뛰어놀 수 있도록 소란스럽더라도 이해하기, 개구리·산새 등 생명 소중히 하기, 나무 꺾지 않기, 전력량 소모 많은 전열기구 사용하지 않기 등 내용이 세심하다. 마을의 정자에서는 새 입주 희망자 심사, 마을 관리 등에 관한 회의도 종종 열린다.

오름새 마을에 아침이 밝았다. ‘홍반장’ 이경전씨의 카라반 앞 테이블로 옆집 김기용(40)씨가 수박 반쪽을 가져다줬다. 잠시 뒤에 한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과일 화채 한 바가지를 놓고 간다. 누가 가져다주는지,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지 마을 사람들은 묻지 않는다.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어느 집에서든 잘 얻어먹고 있을 테니 여기서는 우리 애만 챙겨서 먹일 필요가 없어요. 문 열어두고 이 집에서 과일 먹고 저 집에서 차 마시고…. 그게 우리 마을 자랑이죠.”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과 편리함의 상징인 서구의 캠핑카가 한국에 와서 끈적끈적한 공동체에 정박했다. 현재까지 국내에 2~3곳 정도의 캠핑카 공동체가 형성됐다. 마을 사람들은 때로 한적하길 원하고 주로 함께이길 원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이 주말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이따금 떠나고 자주 모여서 먹고, 자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주말 캠핑카 마을. 새로운 공동체의 출현이다.

여주/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