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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보다 중독성 강한 매력이라오

등록 2014-05-07 20:07수정 2014-05-08 21:50

독도와 사이판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남우선 피디.
독도와 사이판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남우선 피디.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취미의 달인들
오디오에서 MTB까지 섭렵, 악기만 7가지 연주하는 취미의 달인 2인 인터뷰
인생은 짧고 취미는 한가지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취미의 매력에 쉽게 빠져들고 빨리 익히는 사람들이 있다. 취미의 달인이라고 할 그들을 만나봤다.

‘취미 인생’ 찾는 남우선 PD

취미로 인생을 바꾼 남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남자의 취미>라는 책을 쓴 남우선(48) 대구문화방송 피디는 그 자신이 취미 중독자다. 화가가 되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고, 대학에 와서는 사진에 빠져 전국흑백사진공모전 등에서 상을 받은 일도 있다. 클래식 음악과 오디오에 취미를 붙여 “24시간 오디오만 생각하는” 자칭 타칭 ‘오디오 파일’인데다 8000장 넘는 음반을 모았다. 나중엔 그 자신이 <우리 소리 태교 1, 2> 음반을 직접 제작, 판매하기도 했다. 스쿠버다이빙은 최저 수심 67m 기록에 어드밴스트 면허를 딴 10년차 다이버이다. “몸을 엔진으로 하는 완벽한 탈것”인 산악자전거(MTB)에 빠져 자전거를 3번 바꿨다. 복싱은 그에게 “몸속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 파괴본능을 달래는 경험”을 남겼다. 그리고 커피콩을 볶아 자신의 이름을 딴 라벨을 붙여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직접 드립도 하는 독학 바리스타다.

대여섯명 취미를 합친 것보다 분주하고 긴 취미 생활 편력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한가지 취미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 싶으면 새로운 취미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착한 여자와 오래 연애하기 힘든 것처럼 취미와 내가 합일되는 느낌을 가졌다 싶으면 싫증이 나버린다. 가장 좋은 취미는 내 능력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에 있는 어떤 것이다.” 너무 어려운 취미는 포기하고, 쉽다 싶으면 한눈을 팔게 되니 우리가 취미 활동을 하는 진짜 이유는 취미와 밀당(밀고 당기기)할 때의 그 마음상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남우선 피디는 올해 말쯤엔 취미 달인이 된 여자 9명을 모아 <여자의 취미>라는 책을 낼 예정이지만 연애와도 비슷한 취미의 심리적 기제 때문에 취미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남자가 훨씬 많다는 지론을 펼친다. 남자들이 연애 초기에 여자를 만나기 위해 어떤 짓이라도 서슴지 않는 것처럼 그도 음반에 1억5000만원, 오디오엔 1억원쯤을 쓰고 다른 것은 몹시 내핍한 생활을 살았다. 방송일에 밤새워 몰두한 것은 오로지 취미를 즐길 시간을 내기 위해서였단다. “취미 중독자는 같은 중독자를 알아본다. 취미에 빠져서 자기 존재를 잊고 금전 개념이 없어지고 ‘인생엔 유구한 행복이 없다. 지금 아니면 이 순간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사람들은 취미 이야기를 할 때 염화미소를 띤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삶의 고단함과 지루함을 잊게 하는 결정적 순간을 찾는 일은 어떤 마약보다 중독적이지만 해롭지는 않았다. 나에게 취미는 종교와도 같았다.” 결국 취미 때문에 남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한번쯤은 듣고, 삶의 토대를 바꿀 정도는 되어야 취미의 달인으로 인정한다는 얘기다.


취미중독자는 서로 알아본다
이 순간이 다시 안온다는 걸
깨달아버린 사람들은
취미 이야기를 할 때
염화미소를 띤다

피아노, 바이올린 등 7가지 악기 연주를 취미로 하는 최원일씨.
피아노, 바이올린 등 7가지 악기 연주를 취미로 하는 최원일씨.
7가지 악기 연주하는 최원일씨

최원일(32)씨는 바이올린, 플루트, 오보에, 첼로, 비올라, 피아노, 클래식기타 등 7가지 악기를 연주한다. 주말이면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 첼로, 비올라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객원으로 연주하거나 결혼식 같은 행사에서 축하 연주를 해왔다. 가끔은 전문 연주자들과 협연하기도 한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한의원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최씨는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요, 돈을 받고 연주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그의 취미 활동에 속한다. “어릴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대학 입학 기념으로 나에게 오보에를 선물했다. 그러다 대학 때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실은 10년 넘게 애인이 없었다는 게 더 결정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연애하느라 오케스트라 활동을 빼먹기도 하고 그랬는데 난 애인이 없으니 수업이 없을 때도 죽어라 연습만 하고 4년 동안 오케스트라 활동을 한번도 쉬지 않았다.”

남들이 데이트 비용에 들였을 법한 돈을 레슨 받거나 새 악기를 장만하는 데 들였다. 연애에 도취되는 시간인 한밤중이면 교향곡 연주에 몰두했다. 주말이면 시간이 남아돌아 8시간 넘게 연습을 해본 날도 많단다. 모태 솔로의 역사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그의 취미의 역사는 눈물 없이 듣기 어렵지만 그 결과 얻어진 취미 신공이 놀랍다. 아무리 기다려도 듀엣 연주를 할 애인이 나타나지 않길래 혼자서 여러 악기를 번갈아 가며 연주하고 그걸 합쳐 1인 합주곡으로 편집했다. 모차르트 현악 4중주 등 여러 악기 합주곡을 두고 혼자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각각 녹음해서 하나로 합쳐 유튜브에 올린 곡이 40개가 넘는다. 그는 이걸 “혼자 놀기의 결정판”이라고 부른다. 까다로운 클래식 악기를 여럿 섭렵한데다 스스로 ‘교향곡 덕후’라고 하지만 최원일씨는 자신이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음악이 즐거운 놀이가 되고 평생 동반할 수 있는 취미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한가지 악기를 어느 정도 하게 되면 새로운 악기에 흥미가 생기는데 그때 기분은 마치 게임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갈아타는 것과 같다. 내겐 온라인 게임과 클래식 악기 연주가 크게 다르지 않다. 오케스트라에서 교향곡을 연주할 때 기분은 마치 엠엠오아르피지(MMORPG: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를 하는 것 같다.” “취미는 중독성 강한 게임과도 같다”는 그가 유튜브에 올린 연주 동영상은 키위주스(kiwijuice)라는 닉네임으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남우선 피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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