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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5만원과 8년 엄마 손길로 만든 쭌이네집

등록 2014-04-30 19:42수정 2014-07-04 10:46

8년 동안 손수 개조한 집에서 심숙경씨와 남편 최원석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8년 동안 손수 개조한 집에서 심숙경씨와 남편 최원석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문짝과 벽, 싱크대, 가구까지 직접 만들어 20년 된 24평 아파트를 변신시킨 부산 구포 심숙경씨 집
돌쟁이 아기 잠투정에
지친 몸으로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 결심했다
“벽지가 맘에 안들어. 바꿀래”
아파트는 오르막길의 끝에 있었다. “내려서 좀 밀어주든지 하이소.”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택시 기사가 농을 던졌다. 그렇게 찾아간 부산시 구포동의 20년 된 아파트. 1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현관문을 보니 불안했다. 20년 된 82㎡(24평) 아파트가 별다를 수 있을까? 집주인 심숙경(39)씨가 벌컥 문을 열었다. 순간, 다른 공간이 열렸다.

눈앞에 ‘빈티지한 느낌의 카페’와 ‘정갈한 살림집’을 섞어놓은 느낌의 공간이 펼쳐졌다. 현관 오른쪽은 짙은 색 벽돌벽이었고 가운데엔 화사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끼워져 있었다. 거실로 향하는 벽은 아치형으로 뚫려 있었다. 초록색 (화장실) 문, 검정 미닫이 (발코니) 문 등 의외의 색깔이 튀어나왔다. 싱크대부터 침대까지 나무로 직접 만든 가구들이 가득했다. 구석구석 집주인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반질반질 윤이 났다.

현관.
현관.
“2007년에 이사 왔어요. 당시는 결혼해서 우리 혁준이가 태어난 지 6개월 되던 때였고, 저희 부부에겐 처음으로 가진 ‘내 집’이었죠. 그때부터 햇수로 8년 동안 반찬값 아껴가며 아주 조금씩, 천천히 바꿔가다 보니 지금 모습이 됐습니다.”

말은 겸손하게 했지만 심씨의 작업은 온라인상에서 이미 유명하다. 2010년부터 자신이 집을 ‘개조’해가는 모습을 ‘쭌사마’란 이름으로 블로그(blog.naver.com/pazu7506)에 올리기 시작해 이듬해부터 2년 연속 가구·인테리어 분야의 ‘파워 블로거’로 선정됐다. 최근에는 그동안의 집 단장 이야기를 모아 <엄마의 작은 개조>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고 하지만 인테리어나 가구 만들기와는 전혀 연관이 없던 그였다. 결혼하며 첫 전셋집을 구했을 때도,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왔을 당시만 해도 “집이 깔끔하기만 하면 됐지”란 생각에 집 꾸미기에 무관심했다. 그런 그가 바뀐 것은 ‘육아의 고달픔’ 덕분이었다.

식탁.
식탁.
부엌.
부엌.
돌쟁이 아기는 오래 자지 않았다. 잠투정이 심하고 밤에도 두 시간마다 한번씩 깨 젖을 찾았다. 당시 직장에서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해야 했던 남편은 3일에 한번씩 집에 왔다. 아이를 낳은 뒤에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했던 심씨는 ‘나홀로 육아’에 지쳐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바쁘게 사는데 나만 집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를 재운 뒤 찌뿌드드한 몸으로 거실에 앉아 벽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벽지가 마음에 안 든다. 바꾸고 싶어.”

그때부터였다. 아기가 잠든 뒤면 심씨는 거실로 나와 소파를 한쪽에 밀어두고 작업을 시작했다. 새벽 3~4시까지 나무를 자르고 페인트를 칠하고 사포질을 해도 힘들지 않았다. 집안 구석구석을 바꿔나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싫증 내지 않고 이렇게 오래 해본 일은 이 일이 처음”이다. 아기가 유치원에 가기 시작한 뒤로는 오후 3시까지 맹렬히 작업을 하고 한 시간 동안 청소를 한 뒤 4시에 아이를 맞이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저같이 아기 키우는 엄마들 중에 솜씨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소품이며 가구는 물론, 도배나 페인팅 등 셀프 인테리어까지…. 정말 대단하다 감탄하며 저도 흉내내는 수준으로 액자나 수납장 같은 걸 만들어봤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작은 액자 만들기로 시작한 그의 작업은 수납장, 식탁, 소파, 침대 등 ‘가구 만들기’로 이어졌다. 톱, 지그소(전동톱), 대패, 드릴, 전기 태커 등 우락부락한 공구도 늘어만 갔다. ‘선배 주부’들의 ‘셀프 인테리어’ 후기글들은 그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다.

아이방 모습.
아이방 모습.
그의 집은 좁은 부엌과 거실에 안방과 작은방, 미닫이문이 달려 있는 방 등 3개의 방이 있는 구조다. 이 ‘답답한 구조’를 그대로 두고 집을 꾸미기란 어렵기만 했다. 심씨는 고심 끝에 미닫이를 떼어내고 나무로 만들어진 문턱까지 싹 없앴다. 윗부분에 나무를 둥글게 덧대 아치형 벽을 만들고 그 방을 거실로 꾸몄다. 떼어낸 미닫이문에는 나무살을 덧대고 검은색 페인트를 칠해 발코니 쪽 오래된 새시와 바꿔치기를 했다. 가족이 둘러앉을 곳조차 마땅치 않았던 집에 널찍하고 분위기 있는 거실이 새로 탄생했다.

안방 한쪽 벽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재질의 나무 패널을 일렬로 붙였다. 덕분에 방에 들어서면 통나무집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직접 만든 네모반듯한 나무 침대틀에 매트리스를 올리고 그 위에 좋은 면 소재의 하얀 침구를 깔았다. 과일 꿰짝을 다듬어 만든 탁자에 작은 스탠드도 올려두었다. 동갑내기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우리집”이라고 칭송하는 공간이다.

하나 남은 방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혁준이의 몫이다. 아이방의 한쪽 벽면은 늘 색깔이 달라진다. 집 꾸미기 8년차에 접어든 심씨에게 이제 “벽 색깔 하나 바꾸는 일쯤은 일도 아니”다. 요즘 아이방 한쪽 벽은 전체에 푸른색 ‘칠판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아이는 마음껏 낙서를 한다. 나무로 직접 만든 탁자와 하늘색 의자, 연두색 수납장과 하얀색 커튼…. 모두 엄마의 작품이다.

벽걸이 수납대.
벽걸이 수납대.
작은 부엌은 심씨가 ‘핸드메이드의 집결체’라 부르는 공간이기도 하다. 줄무늬 모양의 판재에 노란색을 입혀 싱크대 문짝을 새로 만들었다. 냉장고를 뒷베란다로 빼 공간을 넓히고 다용도실 벽부터 문짝, 수납장과 선반까지 반질반질 오래되고 정갈한 나무 느낌을 살려 만들었다.

‘집 꾸미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족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근처에 사는 친정아버지는 나무 재료를 볼 때마다 혀를 차며 “살림하는 주부가 또 이런 걸 샀느냐”고 타박했다. “넉넉한 형편도 아니고, 걱정하는 시선을 알기 때문에 한달에 예산을 5만원으로 정해두고 재료를 구입했다”고 심씨는 말했다. 이제는 가족과 이웃, 친구들이 그의 ‘팬’이 됐다. 아버지도 이젠 “수납장 하나 만들어달라”고 한다.

얼마 전부터 심씨는 집 근처 가구공방에 나가기 시작했다. “제대로 공부해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대서다. 언젠가 ‘쭌사마’의 이름을 달고 가구를 만드는 꿈도 꿔본다. 당장은 이제 곧 ‘잠자리 독립’을 할 아들의 침대부터 만들 작정이다. “내가 그려본 살림들이 내 눈앞에 현실로 하나둘 나타날 때면 탄성이 절로 나왔죠. 그런 기쁨 때문에 홀로 집을 단장하면서 몸은 고되어도 마음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앞으로 이 집에 사는 동안 계속해서 조금씩, 행복하게 집을 고쳐나가고 싶습니다.”

부산/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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