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로 만드는 국수는 밀가루와는 다른 맛을 선사한다. 그래서 마니아도 많다. 한국은 냉면, 일본은 소바다. 냉면은 반죽을 틀에 넣고 눌러서 내리는 압출면이고 소바는 절면, 즉 반죽한 후 칼로 썰어서 먹는 면이다. 어쩌다가 도쿄에 갔다. 메밀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다. 220년 된 집이라고 한다. 낮인데도 사람이 가득 찼다. ‘사라시나’를 주문한다. 메밀 속살로만 만드는 면이다. 색깔이 하얗다. 후루룩! 일본식으로 소리를 내어 삼킨다. 메밀은 향이 있다는데 우아하게 그 아취를 맡으려고 해도 통 모르겠다. 메밀면은 검다는 선입견을 부순다. 그렇긴 하다. 메밀쌀이라고 부르는 도정 알갱이를 보면 푸르스름한 빛이 돌고 속의 가루는 하얗다. 사라시나는 도정률 50% 정도. 속껍질을 같이 갈아서 거무스름한 것보다 향이 적지만 쫄깃한 편이다. 일왕이 소바를 시켜 먹는데 퍼지지 말라고 개발된 것이 사라시나라고도 한다. 속살은 탄력이 더 강한 편이다. 소바 반죽은 주와리라고 부르는 100% 메밀이 있고, 보통 니하치라고 하는 8대2면이 대세다. 메밀 80%다. 메밀은 밀가루의 10배 값이다. 기본적으로 값이 좀 나간다. 너무 싼 메밀국수는 메밀 함량이 별로다.
소바의 원조는 도쿄다. 그러나 일본 전국에서 각기 즐긴다. 오사카 스타일도 있다. 간장으로 만든 쓰유의 양이 좀 많다. 값도 싼 편이다. 도쿄 소바는 비싸다. ‘오모리’라고 부르는 곱빼기를 시켜도 배가 허하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메밀은 소화가 잘된다고. 그런데 먹자마자 소화가 될 리 있나? 도쿄는 원래 깍쟁이다. 음식 양이 적다. 곱빼기에 보통 하나를 더 시켜야 양이 된다. 누구는 그런다. 곁들이를 시키게 하는 꼼수라고. 보통 메밀국수집에서는 튀김 같은 것을 같이 판다. 튀김을 먹자니 맥주도 ‘땡’긴다. 도쿄의 어지간한 소바집에서 나 같은 하층민은 탈탈 털리고 나온다. 셋이서 십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래서 내 친구는 소바를 먹고는 소바유(湯)만 잔뜩 추가시켜 마신다. 이른바 면수다. 소바 삶은 물을 내주는데, 먹고 남은 양념간장(쓰유)을 타서 마시는 게 제대로 된 순서다. 그러니까 양 적은 걸 탓하지 말라는 걸까, 진정한 서비스일까. 이 소바유를 마시다 보면 어떤 기시감이 있다. 한국 냉면집에서 식전에 주는 그 면수다. 간장 타서 먹는 걸 한 법도로 배웠다. 그걸 상기하니 화들짝 놀란다. 혹시 이 풍습도 일제의 잔재?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자꾸 어른거린다. 한정식을 먹다가 일본 가이세키 요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처럼. 한정식은 현대에 와서 코스식으로 내는 식사법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가이세키도 그렇다. 코스로 내다가 마지막에 밥과 국을 준다. 한정식이 그러는 것처럼. 옆길로 샜다. 한때 여름이면 장안의 메밀집들을 다녔다. 그게 한국식인 줄 알았다. 일제의 유산이다. 그러나 먹는 방식은 한국화됐다. 쓰유가 덜 달고 양이 많다. 면을 찍어 먹는 것이 일본식인데, 아예 냉면처럼 한 대접 말아주는 집도 있다. 슬러시 얼음을 갈아서 주기도 한다. 제멋이지만 이래서는 소박한 메밀국수 맛을 느끼기 어렵다. 국수에 메밀 함량은 대개 아주 낮다. 친구는 그걸 ‘둥둥 메밀’이라고 부른다. 넣는 둥 마는 둥. 한국인은 메밀국수란 검어야 진짜라는 인식이 있어서 까맣게 태운 메밀껍질을 섞는 경우가 많다. 정작 들어가야 할 메밀가루는 적게 배합된다. 씹어보면 안다. 메밀은 원래 글루텐이 적어서 툭툭 끊어진다. 좋은 냉면집 면이 그렇다. 서울에도 일본식 소바를 먹을 수 있는 집들이 있다. 서초동의 미나미(02-522-0373·사진)가 요새 뜬다. 점심에 갔더니 만든 면이 다 팔려버렸다. 손으로 일일이 반죽해서 빚는다. 날씨가 더워지면 만석이 된다. 그런데 원래 소바는 여름에만 먹는 건 아니다. 냉면도 이가 시리는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이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