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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하늘 아래서 태평가를 부르세

등록 2014-03-19 19:35수정 2014-07-04 10:44

김영권씨의 강원도 화천 집의 외관. 그는 집에 ’태평가’란 이름을 붙였다.
김영권씨의 강원도 화천 집의 외관. 그는 집에 ’태평가’란 이름을 붙였다.
[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22년간의 직장 생활 접고 강원도 화천에 마지막 보금자리 완성한 김영권씨의 집짓기

내 집의 이름은 ‘태평가’다. 나는 이 집에서 태평하게 산다. 3년 전 이맘때 22년간의 직장생활을 접었다. 그리고 강원도 화천에 조그만 집을 짓고 귀촌했다. 나의 두번째 삶은 나이 50에 시작됐다.

첫번째 삶은 온통 일에 매여 있었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렸다. 나중엔 살기 위해 버는 건지, 벌기 위해 사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서 일을 멈추고 출구전략을 짰다. 험한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가자. 그곳에서 덜 벌고 더 살자. 그만 벌고 편히 살자. 꼭 하고 싶은 일과 꼭 해야 할 일만 하면서 단순하게 살자. 두잉(Doing)이 아니라 비잉(Being)을 하자. 태평가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지은 집이다. ▷▷ 김영권씨의 집 화보 보기

태평가를 설명하기 위해선 그 집터를 이야기해야 한다. 집 앞으로는 맑은 개울이 흐른다. 광덕산과 화악산에서 시작해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지촌천이다. 여울 따라 매끈한 자갈이 햇살에 반짝인다. 이 개울에 반해 집도 물길 따라 나란히 지었다. 거실과 방을 모두 개울 쪽에 두어 어디에서도 물이 보이고 물소리가 들린다. 앞마당의 작은 텃밭도 개울 쪽에 길쭉하게 냈다. 집 뒤는 토보산 자락이다.

집은 ‘작게, 따뜻하게, 단순하게’ 지으려 했다. ‘작은 집이 아름답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분에게 공감해 설계를 부탁했다. 하지만 이분이 생각보다 서툴고 실전에 약해 애를 먹었다. 결국 적당한 선에서 끝내고 시공업체에 가서 다시 뜯어고쳤다. 설계 단계부터 삐끗한 셈이다. 설계에 충실하려면,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은 최소한 준공 날짜로 마음먹은 날의 반년 전이 좋겠다.

집은 방을 셋으로 하니 작게 해도 83.5㎡가 됐다. 손님방을 대비해서 방을 늘렸는데 이보다는 방을 둘로 하고 규모도 66㎡ 아래로 하는 게 더 좋았겠다. 여분을 두려는 마음도 대개는 욕심인 것 같다. 터는 578㎡ 넓이다. 산골은 겨울이 춥고 길다. 집이 허술하면 난방비가 겁난다. 따뜻한 집을 위해 목조주택 안팎으로 단열재를 보강하고 창호 사양을 높였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1년 기준 한달 평균 난방비는 10만원 안팎이다. 작고 단순한 구조에 장식적인 요소를 과감히 빼서 건축 비용을 줄이는 대신 단열에 조금 더 돈을 들이는 게 바람직한 전략일 것이다.

처음에는 그림같이 예쁜 집을 그렸다. 모던 스타일의 이층집에 멋진 발코니를 내려고 했다. 넓은 데크에 빨간 차양을 치고 거실에는 벽난로를 두고 싶었다. 하지만 작고, 따뜻하고, 단순하게 지으려다 보니 결국 아담한 단층집이 됐다. 집 안에는 가구가 별로 없다. 소파도 없고 침대도 없다. 걸린 액자도 없다. 책장은 구석 벽면에 숨기듯 집어넣었다. 자잘한 짐은 다락을 두어 위로 올렸다. 거실에는 텅빈 텔레비전과 오디오, 다탁과 푸른 화분 몇개뿐이다. 밝은 톤으로 마감하고, 거실 천장을 높여 탁 트인 느낌이다. 이 집은 더 이상 채우지 않으려 한다. 나는 텅 빈 공간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

3년 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귀촌한 김영권씨.
3년 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귀촌한 김영권씨.

태평가가 들어선 곳은 화천군에서 도시민 귀촌사업을 위해 마련한 전원마을 부지다.
태평가가 들어선 곳은 화천군에서 도시민 귀촌사업을 위해 마련한 전원마을 부지다.

태평가는 2012년 강원도에서 심사한 경관주택에 뽑혔다. 말하자면 ‘예쁜 집 대회’에서 입상한 것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한 멋이 담긴 집, 이 집을 짓는 데 1억2000만원이 들었다. 땅값과 부대 비용을 모두 합치면 1억8000만원이다.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대도시에서 전세 살 돈이면 시골에 평생 꿈꾸던 집을 지을 수 있다. 수십년 개미같이 일해서 서울이나 신도시에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한 보통 수준의 중산층이라면 그 집을 팔아 전세로 바꾸고 남은 돈으로 시골에 작은 집을 한 채 지을 수 있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전략이다.

마을 조성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토지 기반공사는 가다 서다 반복했고
입주자들의 의견도 나뉘었다
하지만 머리를 맞대는 과정 자체가
이웃의 정을 쌓고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같이 귀촌한 이웃이 많다. 화천군에서 도시민 귀촌 사업을 위해 전원마을 부지를 조성해 분양한 곳이기 때문이다. 아래로 개울만 보이고 위로 하늘만 보인다고 해서 마을 이름은 ‘개울하늘’이다. 입주민은 다 ‘도시 서민’이다. 이 중 절반은 시골로 완전히 터전을 옮겼다. 절반은 주말에 모인다. 대부분 은퇴를 앞두고 귀촌을 준비하는 분들이다. 우리 마을은 금, 토, 일요일에 붐빈다. 만약 시골로 터전을 옮기려고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전원마을을 만들어 귀촌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는 충고를 하고 싶다. 입지와 경관이 좋은 택지를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구할 수 있고, 자연스레 이웃도 생긴다. 이런 느슨한 형태의 도시민 귀촌 공동체가 은퇴 이후를 고민하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로와 세로 직선이 잘 맞아떨어지는 태평가의 부엌은 김영권씨의 성격을 닮아 단정하다.
가로와 세로 직선이 잘 맞아떨어지는 태평가의 부엌은 김영권씨의 성격을 닮아 단정하다.

소파도 액자도 없는 단아한 태평가의 거실.
소파도 액자도 없는 단아한 태평가의 거실.

그래도 마을을 조성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토지 기반을 다지는 공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입주자들의 의견이 나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풀려고 수시로 모여 머리를 맞대는 과정 자체가 이웃의 정을 쌓고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개울하늘에는 지금 16가구가 들어서 있다. 목조주택이 제일 많다. 그 외에 한옥이 한 채, 흙집이 두 채다. 난방비가 거의 들지 않도록 단열 효과를 극대화한 ‘패시브 하우스’도 한 채 있다. 다들 모양이 제각각이다. 개성 있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마을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태평가는 나의 마지막 보금자리다. 세어 보니 평생 스무번 이사를 했다. 결혼 전에 열두번 옮겼다. 그중 우리 집이었던 적은 딱 한번이다. 결혼 뒤에도 여덟번 옮겼는데 여섯번째에 내 집을 마련했다. 이제 그만 옮겨 다니고 이 집에서 편히 머물 것이다. 평생이 집을 위한 투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태평가는 나의 스무번째 집이면서 마지막 집이다.

집을 더 꾸미려고 애쓰지 않을 생각이다. 마당도 채우지 않고 비워 두려고 한다. 대신 울타리 삼아 마당 둘레에 꽃과 나무를 넉넉히 심고 싶다. 초록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자리잡은 다소곳한 집이 되면 좋겠다. 사실 앞마당 지나 개울이 있고, 뒷마당 지나 푸른 숲이 있으니 굳이 울타리 안만 꾸미고 살 이유도 없다. 드넓은 자연이 다 내 집, 내 마당, 내 놀이터다.

나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집보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집이 더 좋다. 이 집도 세월과 함께 알뜰살뜰한 삶의 더께가 쌓이고, 머문 사람의 향기가 배도록 해야겠다. 그런 집은 하우스(house)가 아니라 홈(home)이다. 그리고 하우스를 홈으로 만드는 비결은 바로 내 안에 있을 것이다.

김영권 <어느 날 나는 그만 벌기로 결심했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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