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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면 말고 족타면 아십니까

등록 2014-02-26 19:51수정 2014-07-31 09:59

사진 박찬일 제공
사진 박찬일 제공
[매거진 esc] 국수주의자 박찬일
면식수행이란 유행어가 있다. 세끼를 라면 요리만 먹으며 인터넷에 빠져 사는 걸 말한다고 한다. 어쨌든 면에 미쳐야 가능한 일이다. 한술 더 떠 ‘修行’이 아니라 ‘獸行’이라고 할 정도로 무섭고 끈질긴 사람도 봤다. 그런 경우를 자부심 아닌 면부심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국수 면(麵) 자를 쓴다. 나도 면부심 수행(獸行)까지는 아니어도 어디어디 면이 맛있다고 하면 달려간다.

예전에 중국집에서 우리는 면의 다채로움을 느꼈다. 탕탕 때리는 소리에 이미 침을 줄줄 흘렸다. ‘파블로프’적 반응이었다. 수타면의 장점은 쫄깃하다는 것이다. 다 먹을 때까지 점도가 살아 있다. 국수가 입에서 혼자 논다. 면이라면 과연 이 정도는 되어야 면이라고 하겠다. 쫄깃한 면은 글루텐에서 온다. 밀가루를 치대면 글루텐이 발달한다. 면은 물론 빵도 쫄깃해진다. 더 강력한 쫄깃함을 얻으려고 소다를 섞는 경우가 많다. 면(麵)소다, 식소다라고 부른다. 식소다는 먹을 수 있는 소다를 부르는 시중의 말이다. 예전에 공업용이니 뭐니 하면서 소다에 대한 의심이 널리 퍼졌다. 예전 신문에는 공업용 소다를 넣은 면을 먹고 중독을 일으켰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식(食)소다다. 먹는 소다, 즉 안전한 소다라는 뜻이다. 마트에서 파는 냉면에도 보통 이 소다(탄산나트륨)가 들어 있다. 라면의 쫄깃한 맛도 이 소다와 탄산칼륨에 많이 의지한다. 라면 색깔이 노란 것도 달걀을 넣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성분 때문이다. 원래 일본 라멘에는 간스이를 넣는다. 알칼리 성분인데, 면의 탄력을 좋게 한다. 물론 이들 첨가물은 합법적이며 정해진 용법을 지키면 건강에 무해하다.

중국이 수타면으로 유명하다면, 일본에는 족타(?)면이 있다. 온몸을 실어 반죽하므로 ‘체중면’이라고 불러야 더 맞겠다. 사누키(일본 남부 시코쿠 지방의 옛 지명) 우동이 바로 그렇게 만든다. 사누키의 본고장인 다카마쓰에 갔더니 우동집에서 반죽을 그렇게 밟고 있었다. 물론 두꺼운 비닐과 천을 깔고 밟는다. 족타 우동을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다. ‘우동카덴’(사진·02-6463-6362)에서 육중한 체중의 요리사가 누르고 있는 장면을 보고 침이 흘렀다. ‘파블로프’적 반응이었다. 이렇게 만든 면은 아주 단단하고 쫄깃한 식감을 보인다. 소다와 간스이가 화학이라면 이번에는 물리인 것이다.

이탈리아 면은 간스이도 탄산나트륨도 넣지 않지만, 쫄깃한 것이 생명이다. 그래서 설 삶아서 그 탄력을 유지한다. 바로 ‘알 덴테’(al dente)다. ‘알’(al)이란 전치사로, ‘앳’(at)이나 ‘비트윈’(between) 정도의 뜻이고, ‘덴테’(dente)는 치아란 뜻. 그러니까 치아 사이가 딱딱 부딪치게 삶는다는 말이다. 스파게티는 단단하게 반죽하고, 삶을 때는 푹 삶기 전에 꺼내서 탱탱한 면을 만든다. 파스타 요리사가 면을 벽에 던져서 삶은 정도를 알아낸다고 하는데, 이건 와전된 것이다. 바쁜 주방에서 그렇게 한가하게 할 여유가 없고, 오히려 푹 삶아지면 벽에 더 잘 달라붙는다. 알 덴테는 이탈리아인에게는 자존심과 같다. 한때 강남에서 의욕적으로 문 연 이탈리아식당이 있었다. 이탈리아인 요리사를 초빙했다. 그가 화를 내고 식당을 때려치웠다. 우리 손님들이 알 덴테로 삶은 파스타를 퇴짜 놓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삶아주세요!” 십여년 전의 일이다. 알 덴테로 삶은 면은 잘라보면 하얗게 심이 보인다. 한국의 이탈리아식당이나 파스타집에서는 대개 면을 미리 삶아둔다. 아무래도 알 덴테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라멘에도 알 덴테가 있다. 네 가지 또는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면 주문을 받는다. 푹 삶은 ‘야와’부터 후쓰우, 가타, 바리카타 같은 용어가 쓰인다. 바리카타는 살짝 삶아 달라는 뜻. 아예 생면에 가깝게 끓는 물에 담갔다 꺼내다시피 하는 고나오토시란 용어도 있다. 한국에서도 돈코쓰라멘이라고, 돼지뼈를 곤 국물에 면을 말아 내는 라멘집에서 종종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건대 앞의 ‘우마이도라멘’(02-467-8788)의 면발이 직수굿하게 씹히는 게 아주 통쾌하다. 역시 국수는 목 넘김의 미학(?)에 쫄깃한 씹힘이 더해져서 즐겁다. 그래서 나는 국수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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