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크레인 미국 예일대 산림·환경학 대학 학장이 영국 큐 왕립식물원의 은행나무 노거수 아래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나무는 그가 이 식물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아끼던 나무의 하나였다. 은행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나무에 속하지만 가장 신비스런 선사시대 식물이기도 하다. A. 맥롭, 큐 왕립식물원 제공
[물바람 숲] 진화생물학 석학 피터 크레인 인터뷰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가로수로 가장 많이 심은 나무의 하나이고 서울을 비롯한 72개 자치단체의 상징 나무이기도 하다. 수백년 된 노거수도 즐비하다. 이렇게 흔하고 사랑받는 나무이지만 그 자연사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과연 야생 은행나무가 있는지, 2억년 넘게 살아남은 비결은 뭔지, 또 은행 열매는 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지 등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로 영국 큐 왕립식물원 원장을 오래 역임하고 현재 예일대 산림·환경학 대학 학장인 피터 크레인 경이 최근 ‘은행나무의 자서전’ 격인 <은행나무─시간이 망각한 나무>(예일대 출판부)를 펴냈다. 그와 전자우편 인터뷰를 통해 은행나무에 얽힌 궁금증을 풀어봤다.
─책 서문을 보면, 2009~2011년 동안 한국연구재단이 해외 유명 석학 자격으로 초빙해 이화여대에서 머물면서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집필했다고 했는데요. 한국의 은행나무와 한국인이 은행나무를 대하는 태도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한국에는 정말 은행나무가 많더군요. 그 가운데 일부는 참으로 오래된 나무였고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커다란 나무를 숭배하는 일반인의 태도와 그들을 정성껏 돌보는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의 하나이고 수많은 민속과 전설이 살아있는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정문에 학교 상징물인 은행잎이 걸려 있는 성균관대 서울 캠퍼스의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인이 은행나무를 세심하게 돌본다는 것도 잊을 수 없는데요. 예를 들어 용문사 은행나무 옆에는 벼락에 대비한 피뢰침이 있고, 서울에 가로수로 심은 어린 은행나무들에 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비닐 주머니가 달린 것을 보았습니다. 이 두 가지 예는 내가 은행나무에 관한 강의를 할 때 소개하곤 하는데, 청중들이 큰 감명을 받습니다.”
─은행나무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신 걸로 아는데요. 이 나무는 어떤 점에서 특별합니까?
“식물학을 처음 공부할 때 종자식물에는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고 배우는데, 그 한 가지가 은행나무입니다. 식물에 관심이 있다면 피해 갈 수 없는 존재이죠. 은행나무는 부채모양의 잎이 워낙 독특해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나무인데, 단 한 종밖에 없습니다. 꽃이 피는 식물은 세계에 35만종이 있는데, 진화적으로 볼 때 은행나무 한 종이 그것 모두와 맞먹는 셈입니다.”
─은행나무는 2억년 이상 현재의 모습을 간직해 온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더군요.
“이렇게 오래 멸종하지 않고 버틴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은행나무는 공룡이 번성하던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전성기를 맞아 전세계에 분포했고 중생대가 저물면서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공룡 시대에 번성했다면, 냄새가 고약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은행 열매를 공룡이 먹었을까요?
“그랬을 겁니다. 지금은 멸종한 다른 동물이 먹었을 수도 있고요. 과육을 먹어 씨앗을 퍼뜨리던 동물이 멸종해 사라진 것은 은행나무에는 기후변화와 더불어 커다란 타격이었을 겁니다. 물론 현재에도 썩은 고기 냄새를 풍기는 은행 열매를 삵, 오소리 등이 먹는다는 보고가 중국과 일본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은행 열매 먹던 공룡 멸종하자
쇠퇴 일로에 접어든 은행나무
사람이 증식시켜 명맥 이어줘 ‘은행나무’ 책, 서울에서 집필
한국은 은행나무 자생지 아냐
야생 산지는 중국의 두 곳뿐 ─책을 보면, 기후변화와 씨앗을 퍼뜨려 주는 동물을 잃은 은행나무가 차츰 쇠퇴했지만 마지막 피난처에서 이들의 명맥을 이은 것은 사람이었더군요. “은행나무는 수천만년 동안 지금은 멸종해 볼 수 없는 동식물과 함께 살았고 포유류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해 진화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러나 신생대 들어 은행나무는 쇠퇴하기 시작해 마지막 빙하기 때 중국 일부에만 살아남았습니다. 5만년 전 사람이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은행나무는 이미 몇몇 피난처에 간신히 살아남은 멸종위기종이었습니다.” ─한국은 중국, 일본과 함께 세계적으로 오랜 은행나무가 많은 곳이고 하도 흔해서 자생식물로 아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책에서는 한국의 은행나무가 자생인지 여부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지 않더군요. “최근의 연구 결과 야생 은행나무 집단은 중국 동부 저장성의 톈무산과 서남부 충칭시 진포산 등 2곳 정도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에 있는 어떤 은행나무도 자생 집단으로 보기 힘듭니다. 아마도 사람이 심은 것이겠지요. 물론 그 시기는 수백년 전 일이지만요.” ─책에서는 또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서 저절로 자란 어린 은행나무 사진을 특별히 소개하고 있는데요. 혹시 이 사진이 한국에서 은행나무가 자생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건 아닌지요. “은행나무가 저절로 번식한다고 그 지역에 자생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진포산에는 어린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어 수많은 세대에 걸쳐 번식해 온 자생지 숲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 은행나무 숲이 진짜 야생 집단이라는 더 강력한 증거는 유전 정보입니다. 예일대에도 은행나무가 저절로 번식했지만 씨앗을 전파하는 동물이 없어 어미 나무 밑에서 자원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확산 동물이 없어도 씨앗이 중력에 의해 길을 따라 흩어져 어미 나무와 떨어졌고, 그 덕분에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은행나무가 중국에서 온 것이라면 중국 동부의 자생지인 톈무산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나요?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발로 사라져 버린 다른 자생 집단에서 나온 씨앗의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작은 집단은 자연재해와 다른 많은 예측 불가능한 요인에 취약하니까요. 은행나무에 관한 믿을 만한 가장 초기의 중국 기록은 980년의 것이고 10세기의 것이 뒤따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은행나무를 심었던 거죠. 은행나무는 중국의 해안 무역로를 따라 북상해 한국으로 확산했고, 16세기 말 이전에 황해를 건넌 것 같습니다. 한국의 거대 은행나무들은 아마도 500살은 될 것이지만 그보다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은행나무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이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인간은 생물다양성의 수호자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사람이 구해낸 종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이 책이 주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식물 종을 보전하려면 갈 길이 멀지만 희망의 근거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도쿄, 맨해튼 등 세계의 많은 대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가로수가 오늘날 존재할 수 있던 것은 사람의 오랜 관심과 보살핌 덕분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유럽과 미국 은행나무 한국에서 건너갔다
“은행나무는 지구상에서 가장 외로운 생물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의 말이다. 은행나무의 족보를 보면, 식물계, 겉씨식물문에 이어 강·목·과·속·종이 모두 은행나무 한 줄기로 이어진다. 친척이 모두 오래전에 멸종한 결과이다.
은행나무는 소나무나 소철처럼 씨앗이 밖에 드러난 겉씨식물이지만 침엽수도 아니고 소철과도 다르다. 꽃가루관 안에서 정자가 움직이는 등 고대 식물의 특징을 지녀, 다윈은 “식물의 오리너구리”라고 불렀다.
은행나무는 오래 사는 큰 나무여서 숭배의 대상이었고 목재와 열매가 유용해 오래전부터 재배의 대상이었다. 중국에서 1000년 전부터 사찰과 주변에 심었고 이후 한국과 일본으로 옮겨간 것으로 알려진다.
유럽에는 17세기 일본에서 전파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괴테 시절엔 은행나무를 동양의 상징으로 널리 심었고 북미로 퍼뜨렸다. 그 결과 은행나무는 100년 만에 수백만년 전의 상태로 분포지역을 넓혔다. 병충해와 대기오염에 잘 견디고 아름다워 특히 가로수로 인기가 높다.
은행나무가 처음 출현한 것은 2억8000만년 전인 고생대 페름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의 은행나무속이 나타난 것은 1억8000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이고 전성기는 1억2000만년 전으로 이때 극지방을 뺀 북반구 전역과 남반구 일부에 19종 이상의 은행나무가 분포했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씨앗을 퍼뜨리던 매개동물이 멸종하면서 유럽에선 170만~270만년 전, 북아메리카에선 700만~1000만년 전 모두 사라졌다. 이후 은행나무의 화석은 동아시아에서만 나온다. 김종헌 공주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한반도에서는 중생대 때 8종, 신생대 때 1종 등 모두 4속 9종이 살았으며, 백악기 때 은행나무는 요즘 것과 달리 잎이 가늘게 갈라진 것이 많았다.
야생의 은행나무 숲은 중국 동부와 남서부에 2곳이 알려져 있다. 중국 동부 저장성의 톈무산의 자생지는 삼나무, 비자나무 등 난·온대 숲 1018㏊에 167그루가 자라는데 17그루가 1000살 이상이고 평균 가슴높이 지름이 52㎝에 이른다. 가파른 바위, 절벽 끝 등에 분포하며 어린 은행나무는 없다. 톈무산에는 1500년 전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인간활동이 활발해 자생 여부는 오랜 논란거리였다.
중국 남서부 은행나무는 유전다양성이 다른 어느 곳보다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야생 은행나무가 분포지를 넓혀가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공웨이 중국 저장대 교수 등은 연구논문을 통해 “사람이 퍼뜨리지 않는다면 은행나무는 몇백만년 안에 멸종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르쿠스 코흐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교수 등 국제연구진은 한·중·일의 지름 2m 이상 은행나무 노거수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분석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다. 유럽과 미국의 은행나무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 퍼진 것이란 이제까지의 믿음과 달리 유전자 형태 면에서 한국의 은행나무와 가장 가까웠다.
은행나무는 사람이 번식시키고 전파한 오랜 역사가 있어 정확한 이동경로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분명한 건 한국과 일본의 은행나무 모두 디엔에이의 변이가 중국보다 적어 중국에서 건너갔음을 보여주며, 일본의 은행나무는 한국에서 건너가거나 중국에서 직접 옮겨오는 등 복잡한 경로를 거쳤다는 사실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경기도 양평 용문사의 거대한 은행나무. 크레인 교수는 이 나무를 세계에서 살아있는 가장 크고 위엄 있는 은행나무의 하나로 꼽는다. 피터 크레인 제공
쇠퇴 일로에 접어든 은행나무
사람이 증식시켜 명맥 이어줘 ‘은행나무’ 책, 서울에서 집필
한국은 은행나무 자생지 아냐
야생 산지는 중국의 두 곳뿐 ─책을 보면, 기후변화와 씨앗을 퍼뜨려 주는 동물을 잃은 은행나무가 차츰 쇠퇴했지만 마지막 피난처에서 이들의 명맥을 이은 것은 사람이었더군요. “은행나무는 수천만년 동안 지금은 멸종해 볼 수 없는 동식물과 함께 살았고 포유류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해 진화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러나 신생대 들어 은행나무는 쇠퇴하기 시작해 마지막 빙하기 때 중국 일부에만 살아남았습니다. 5만년 전 사람이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은행나무는 이미 몇몇 피난처에 간신히 살아남은 멸종위기종이었습니다.” ─한국은 중국, 일본과 함께 세계적으로 오랜 은행나무가 많은 곳이고 하도 흔해서 자생식물로 아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책에서는 한국의 은행나무가 자생인지 여부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지 않더군요. “최근의 연구 결과 야생 은행나무 집단은 중국 동부 저장성의 톈무산과 서남부 충칭시 진포산 등 2곳 정도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에 있는 어떤 은행나무도 자생 집단으로 보기 힘듭니다. 아마도 사람이 심은 것이겠지요. 물론 그 시기는 수백년 전 일이지만요.” ─책에서는 또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서 저절로 자란 어린 은행나무 사진을 특별히 소개하고 있는데요. 혹시 이 사진이 한국에서 은행나무가 자생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건 아닌지요. “은행나무가 저절로 번식한다고 그 지역에 자생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진포산에는 어린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어 수많은 세대에 걸쳐 번식해 온 자생지 숲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 은행나무 숲이 진짜 야생 집단이라는 더 강력한 증거는 유전 정보입니다. 예일대에도 은행나무가 저절로 번식했지만 씨앗을 전파하는 동물이 없어 어미 나무 밑에서 자원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확산 동물이 없어도 씨앗이 중력에 의해 길을 따라 흩어져 어미 나무와 떨어졌고, 그 덕분에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은행나무가 중국에서 온 것이라면 중국 동부의 자생지인 톈무산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나요?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발로 사라져 버린 다른 자생 집단에서 나온 씨앗의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작은 집단은 자연재해와 다른 많은 예측 불가능한 요인에 취약하니까요. 은행나무에 관한 믿을 만한 가장 초기의 중국 기록은 980년의 것이고 10세기의 것이 뒤따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은행나무를 심었던 거죠. 은행나무는 중국의 해안 무역로를 따라 북상해 한국으로 확산했고, 16세기 말 이전에 황해를 건넌 것 같습니다. 한국의 거대 은행나무들은 아마도 500살은 될 것이지만 그보다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은행나무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이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인간은 생물다양성의 수호자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사람이 구해낸 종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이 책이 주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식물 종을 보전하려면 갈 길이 멀지만 희망의 근거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도쿄, 맨해튼 등 세계의 많은 대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가로수가 오늘날 존재할 수 있던 것은 사람의 오랜 관심과 보살핌 덕분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피터 크레인은
피터 크레인(60)은 영국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로 1999~2006년 영국의 세계적인 식물원인 큐 왕립식물원 원장을 지냈다. 2004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이 대학 자연사박물관 과학프로그램 책임자를 거쳐 2006년부터 미국 예일대 산림·환경학 대학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유명한 은행나무 연구자로, 멸종한 은행나무의 한 종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해외 유명 석학을 초빙하는 사업의 하나로 2009~2011년 동안 이화여대에서 강의와 연구를 했다.
강원도 홍천의 은행나무 숲. 은행나무는 공해와 병충해에 강하고 단풍이 아름다워 세계 곳곳에서 가로수와 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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