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인 배추를 다듬는 방송인 최유라(사진 왼쪽 셋째)씨와 그의 어머니 공연숙(왼쪽 넷째)씨. 최씨의 동생 선애씨의 친구들이 돕고 있다.
[매거진 esc] 요리
직접 키운 배추 600포기로 품앗이 문화 이어가는 공연숙과 방송인 최유라 모녀의 김장 담그던 날
직접 키운 배추 600포기로 품앗이 문화 이어가는 공연숙과 방송인 최유라 모녀의 김장 담그던 날
배추야말로 계절을 알리는 채소다. 가격 동향이 언론에 보도되면 바야흐로 김장철이 임박했음을 직감한다. 올해는 직접 김장을 담그는 가정이 늘 거라고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는 손수 김장을 할 가정은 59.2%로 지난해에 비해 5.6%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원평리의 한 아담한 양옥집. 뒤뜰에는 배추밭이 있다. 며칠 전 탱탱한 배추를 김장용으로 모두 수확해버려 밭에는 쓸모없는 이파리들만 뒹군다. 시인 기형도가 그린 적막한 포도밭보다 더 쓸쓸하고 적적하다. 갑자기 귀청을 망치로 두드리는 듯, 요란한 소리가 밭에 울린다. 개 짖는 소리다. 이 집에는 20여마리의 개가 산다. 개 전문 사육장이나 훈련장인가 싶을 정도다. “찾아오는 애(개)들을 어떻게 하겠어요. 키워야지요.” 집주인 공연숙(69)씨의 설명이다. 개들은 모두 유기견이다. 그는 몇년 전부터 버려진 개를 못 본 척할 수 없어 한두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게 소문이 나자 아예 사람들은 대문 밖에 개를 두고 가버렸다. 공씨네 거주견들은 늘기만 했다. 절뚝거리고 좀처럼 사람에게 안기지도 못했던 상처 입은 개들을 공씨가 치료했다. “안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치료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김장행사에서 별미는 새참이다
고등어조림, 쇠고기고추전,
뭇국, 명이나물, 굴무침 등
20인분의 새참을 비닐하우스로 나른다
제주도산 흑돼지 수육도 올라왔다 다시 배추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7년 전부터 991㎡(300평) 되는 텃밭에 배추와 무, 파, 오이 등을 직접 재배한다. “내 먹을 것 내가 키워야지요.” 11월 중순이면 큰 잔치가 열린다. 500~600포기 정도의 김치를 담그는 일이다. 지난 10일에도 어김없이 김장행사가 열렸다. “굴을 섞어 무침 만들 거야.” 공씨가 배춧속으로 버무린 무채 일부를 빼놓는다. “올해는 좀 짜네.” 이웃 주민 서영옥(71)씨가 양념 맛을 평가하자 “김장인데 이 정도는 돼야지”라고 다른 이웃인 이정희(71)씨가 말을 받는다. 집주인 공씨가 새참 준비에 열중하는 동안 이웃 6명이 ‘정교한 김치 제작’에 몰입한다. 김장 품앗이는 오래전 사라진 풍경이다. 서너달씩 이어지는 긴 겨울을 버텨 낼 반찬으로 김치밖에 없던 시절, 주부들은 적게는 100포기에서 1천포기 이상 담갔다. 주부 혼자 해내기에는 벅찬 양이라 자연스럽게 품앗이가 생겼다. 공씨네는 올해 600포기를 담갔다. “(공씨의) 다리가 아픈 것을 보고 줄이라고 했는데 안 해. 오는 사람, 어려운 사람 주고 하더라.” 서씨의 말이다. 김장 터인 비닐하우스 에서는 얘기꽃이 한창이다. 지난해부터 둘째 딸 최선애(45)씨의 대학 친구인 장안대 사회복지과의 학생들도 와 거든다. 최씨는 보육교사로 24년간 활동하다가 뒤늦게 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 비닐하우스 밖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 수육과 곰탕이 차가운 가을을 데우고 있다. “건더기 지금 넣을 거야.” 어째 곰탕 냄비에 주걱을 푹 넣는 이의 목소리가 익숙하다. 낯도 익다. 방송인 최유라(46)씨다. 여기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 방송 현장이 아니다. “우리 엄마는 좋은 재료로 맛을 살리자 주의자예요. 멸치액젓도 (부산) 기장멸치를 산지에서 사와 직접 삭혀요. 생새우도 외포리 겁니다.” 집주인 공씨는 최유라씨의 친정어머니다. 매년 ‘어머니의 김장 날’은 그가 꼭 챙기는 소중한 날이다. “저도 집에서 어머니 따라 양념 많이 안 씁니다. 그렇게 배웠어요.” 공씨는 함경도 덕원이 고향이다. 성베네딕도 왜관수도회의 전신인 덕원수도회가 있었던 곳이다. 덕원수도회가 운영한 덕원신학교는 지학순, 김남수 주교 등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1·4 후퇴 때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피난왔다. 그의 아버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서울 남대문에서 채소상회를 해서 번 돈을 다 털어 자유당(1951년 창당해 약 10년간 유지된 보수정당) 시절 강원도 고성군으로 이주해 공소(본당보다 작은 단위의 천주교 교회.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지역 신자들의 모임)를 지었다. 인근에 사는 외국인 신부들과 선교활동을 했다. 2년 전 작고한 약사였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박애를 중시하는 종교적 문화 속에서 살았다. 공씨는 “연애편지도 아버지께 검사 맡고 보내곤 했어요.” 지난날이 흐릿하게 지나간다. 한참을 옛이야기 보따리를 풀다가 벌건 김치 양념을 맨손으로 버무리기 시작한다. “친정어머니는 장갑 끼고 음식하지 마라 가르치셨어요. 맛은 손에서 나온다 하셨죠.”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진 손맛은 다시 그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진다. 유라씨는 “우리 엄마 음식은 이북식이에요. 예전에는 생태를 김치포기 사이로 켜켜이 넣었는데, 요새는 그렇게 안 해요. 오징어는 들어가죠. 젓갈은 별로 안 써요.” 공씨는 설탕이나 인공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는다. 함경도 김치는 맵지만 소금 간을 많이 하지 않아 짜지 않은 편이다. 젓갈을 잘 안 넣고 생태나 생가자미를 김칫소로 쓰는 게 특징이다. 전라도나 경상도 등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높아지는 기온 때문에 소금과 젓갈을 많이 쓴다.
김장행사에서 별미는 무어라 해도 새참이다. 고된 노동 끝에 맛보는 음식이야말로 최고 중의 최고다. 공씨가 두부조림, 고등어조림, 쇠고기고추전, 오징어북어전, 뭇국, 명이나물, 굴무침 등 20인분의 새참을 양옥집 부엌에서 비닐하우스로 나른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제주도산 흑돼지 수육도 식탁을 빛냈다. 최유라씨가 출연하는 홈쇼핑 프로그램 <최유라쇼>의 스태프까지 찾아와 공씨 집은 시끌벅적하다.
저녁나절이 되자 김장의 순서는 끝을 향해 간다. “봉지 가져와라, 통에 담아야 하니.” 공씨가 사람 수만큼 김치를 싸기 바쁘다. 20여명의 손에는 아삭한 김치가 담긴 커다란 봉지가 하나씩 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하렵니다. 다들 함께하니 좋고 내가 농사지은 걸로 하니 더 좋아요.” 그는 뿌듯하다. 우리 김장 문화에는 나눔의 미덕이 있다. 마을 주민 김선배(72)씨는 “시골은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같이 김장해요. 커피도 마시고 얘기도 하니 좋아요.”라고 한다.
우리 김장문화와 김치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유력해지고 있는 가운데 아직 남아 있는 품앗이 문화는 귀중한 자산이다. 보김치, 석류김치, 비늘김치, 미나리김치, 호박김치, 유채김치, 동아김치, 돌산갓김치 등 김치는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동치미, 오이소박이, 더덕소박이, 오이송송이, 깻잎김치, 풋마늘김치 등처럼 봄과 여름에 담가 먹는 김치도 있었으니 그 다채로운 요리법은 놀라울 뿐이다.
화성/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이틀에 걸쳐 만든 김장 김치.
고등어조림, 쇠고기고추전,
뭇국, 명이나물, 굴무침 등
20인분의 새참을 비닐하우스로 나른다
제주도산 흑돼지 수육도 올라왔다 다시 배추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7년 전부터 991㎡(300평) 되는 텃밭에 배추와 무, 파, 오이 등을 직접 재배한다. “내 먹을 것 내가 키워야지요.” 11월 중순이면 큰 잔치가 열린다. 500~600포기 정도의 김치를 담그는 일이다. 지난 10일에도 어김없이 김장행사가 열렸다. “굴을 섞어 무침 만들 거야.” 공씨가 배춧속으로 버무린 무채 일부를 빼놓는다. “올해는 좀 짜네.” 이웃 주민 서영옥(71)씨가 양념 맛을 평가하자 “김장인데 이 정도는 돼야지”라고 다른 이웃인 이정희(71)씨가 말을 받는다. 집주인 공씨가 새참 준비에 열중하는 동안 이웃 6명이 ‘정교한 김치 제작’에 몰입한다. 김장 품앗이는 오래전 사라진 풍경이다. 서너달씩 이어지는 긴 겨울을 버텨 낼 반찬으로 김치밖에 없던 시절, 주부들은 적게는 100포기에서 1천포기 이상 담갔다. 주부 혼자 해내기에는 벅찬 양이라 자연스럽게 품앗이가 생겼다. 공씨네는 올해 600포기를 담갔다. “(공씨의) 다리가 아픈 것을 보고 줄이라고 했는데 안 해. 오는 사람, 어려운 사람 주고 하더라.” 서씨의 말이다. 김장 터인 비닐하우스 에서는 얘기꽃이 한창이다. 지난해부터 둘째 딸 최선애(45)씨의 대학 친구인 장안대 사회복지과의 학생들도 와 거든다. 최씨는 보육교사로 24년간 활동하다가 뒤늦게 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 비닐하우스 밖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 수육과 곰탕이 차가운 가을을 데우고 있다. “건더기 지금 넣을 거야.” 어째 곰탕 냄비에 주걱을 푹 넣는 이의 목소리가 익숙하다. 낯도 익다. 방송인 최유라(46)씨다. 여기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 방송 현장이 아니다. “우리 엄마는 좋은 재료로 맛을 살리자 주의자예요. 멸치액젓도 (부산) 기장멸치를 산지에서 사와 직접 삭혀요. 생새우도 외포리 겁니다.” 집주인 공씨는 최유라씨의 친정어머니다. 매년 ‘어머니의 김장 날’은 그가 꼭 챙기는 소중한 날이다. “저도 집에서 어머니 따라 양념 많이 안 씁니다. 그렇게 배웠어요.” 공씨는 함경도 덕원이 고향이다. 성베네딕도 왜관수도회의 전신인 덕원수도회가 있었던 곳이다. 덕원수도회가 운영한 덕원신학교는 지학순, 김남수 주교 등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1·4 후퇴 때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피난왔다. 그의 아버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서울 남대문에서 채소상회를 해서 번 돈을 다 털어 자유당(1951년 창당해 약 10년간 유지된 보수정당) 시절 강원도 고성군으로 이주해 공소(본당보다 작은 단위의 천주교 교회.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지역 신자들의 모임)를 지었다. 인근에 사는 외국인 신부들과 선교활동을 했다. 2년 전 작고한 약사였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박애를 중시하는 종교적 문화 속에서 살았다. 공씨는 “연애편지도 아버지께 검사 맡고 보내곤 했어요.” 지난날이 흐릿하게 지나간다. 한참을 옛이야기 보따리를 풀다가 벌건 김치 양념을 맨손으로 버무리기 시작한다. “친정어머니는 장갑 끼고 음식하지 마라 가르치셨어요. 맛은 손에서 나온다 하셨죠.”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진 손맛은 다시 그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진다. 유라씨는 “우리 엄마 음식은 이북식이에요. 예전에는 생태를 김치포기 사이로 켜켜이 넣었는데, 요새는 그렇게 안 해요. 오징어는 들어가죠. 젓갈은 별로 안 써요.” 공씨는 설탕이나 인공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는다. 함경도 김치는 맵지만 소금 간을 많이 하지 않아 짜지 않은 편이다. 젓갈을 잘 안 넣고 생태나 생가자미를 김칫소로 쓰는 게 특징이다. 전라도나 경상도 등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높아지는 기온 때문에 소금과 젓갈을 많이 쓴다.
20여명의 일손을 위해 푸짐한 새참상이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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