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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된 기계가 빻은 고소한 우리 밀 맛보세요

등록 2013-10-09 20:40수정 2013-10-10 11:46

1 앉은뱅이밀 종자 지킴이 백관실씨. 수확한 앉은뱅이밀을 안고 있다. 2 약 100년 된 금곡정미소의 기계. 3 앉은뱅이밀로 만든 빵.
1 앉은뱅이밀 종자 지킴이 백관실씨. 수확한 앉은뱅이밀을 안고 있다. 2 약 100년 된 금곡정미소의 기계. 3 앉은뱅이밀로 만든 빵.
[esc] 요리
사라질 위기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앉은뱅이밀 종자 지킴이 백관실씨의 우리 밀 이야기
경남 진주시 금곡면, 누렇게 익은 벼들 사이로 아담한 정미소가 보인다. ‘금곡정미소’.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정미소를 감싸고 있다. 지난 3일 정미소 주인 백관실(63·금곡정미소 대표, 금곡우리밀작목반 회장)씨가 송아지 같은 미소로 반겼다. 그의 안내로 들어간 정미소 안에는 낡은 기계가 눈에 띈다. 그가 대뜸 “몇년 된 기계 같아요?” 묻는다. 나무처럼 나이테가 있으면 좋으련만, 가늠하기가 어렵다. “대충 100년 됐어요. 100년. 할아버지가 만드셨지요. 아직도 이걸로 밀을 빻아요. 잘 돌아가요.”(웃음) 백씨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98년 된 기계예요.” 1917년 백씨의 조부 백용안(1994년 작고)씨는 경남 고성군에 금곡정미소를 열었다. 딸이 5명, 아들이 7명이었다.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정미소를 열기 전에 이미 남다른 재주를 그는 드러냈다. 발동기를 직접 제작한 것이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기계제작 기술을 배우긴 했지만 그가 만든 기계가 월등히 좋았다. 당시로는 놀라운 일이었다. 밀을 빻는 용도부터 양수기, 타작기 등 활용도가 높았다. “할아버지는 계속 만들진 않으셨어요. 자유당 시절(1950년대) 기계 한 대를 만들면 세금이 제작비보다 더 나왔다고 해요. 그래서 정미소 일에만 전념하셨어요.”

할아버지의 정미소는 아버지 정유씨를 거쳐 현재 관실씨가 운영한다. “정미소에서 일한 지 48년 됐어요. 장손이라고 할아버지는 (저에게) 공부를 안 시키셨어요. 집안을 지키라고 하셨죠.” 그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정미소 일을 거들었다.

이 집에는 약 100년 된 기계 말고도 다른 이야깃거리가 있다. 3대는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건강한 우리 먹을거리를 지켰다. 그들이 지켜낸 것은 수입 밀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우리 토종밀 종자, ‘앉은뱅이밀’이다. 앉은뱅이밀은 키가 다른 밀보다 작다. 약 50~80㎝ 정도다. 일반 밀에 비해 색이 붉고, 낱알이 작다. 병충해에 강해 농약을 칠 필요가 없다. 다른 밀에 비해 밀 껍질이 얇고 제분하면 가루가 매우 부드러우며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글루텐 함량도 일반 밀에 비해 적다. “할아버지는 앉은뱅이밀로 만든 음식을 아주 즐기셨어요.” 끼니마다 빠지는 날이 없었다. 가족들도 덩달아 앉은뱅이밀로 만든 수제비나 칼국수를 즐겼다.

4 앉은뱅이밀 알갱이.
4 앉은뱅이밀 알갱이.

“70년대만 해도 앉은뱅이밀로 농사짓는 데가 동네에 많았어요. 1984년 정부가 밀 수매를 중단하니깐 밀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었죠. 벼농사에 비해 돈벌이가 안 되니깐요.” 그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앉은뱅이밀 종자를 지켜낸 이다. 양봉을 하고 돼지를 키워 그 수익으로 집안 살림을 꾸려갔다. “이리 맛이 좋은데 사람들은 왜 선호하지 않을까 참 많이 답답했어요.” 부산 등 인근에 입소문이 나 직접 구매하러 오는 이가 있는 정도였다. 1990년대까지 풍경이다. 택배가 보급이 되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한번 맛본 이들은 다시 찾았다. 주로 대구, 부산 등지로 팔렸다.

앉은뱅이밀은 껍질이 얇고
가루가 매우 부드러우며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글루텐 함량도 일반 밀에 비해 적다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의 소원대로 앉은뱅이밀이 전국구로 떴다. 지난달 국제슬로푸드 생명다양성재단은 한국의 토종 종자 5가지를 ‘맛의 방주’ 목록에 넣었다. 앉은뱅이밀도 포함됐다. ‘맛의 방주’는 멸종위기에 처한 종자나 음식 등을 찾아 기록하고, 목록을 만들어 널리 알리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다. 각종 티브이 프로그램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다. 곧 ‘종자전쟁’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할 예정이다. ‘2013 서울 농부의 시장’에도 초청받았다.

“작년부터 엄청 떴어요. 전화가 엄청나게 많이 와요.” 그는 ‘토종의 대부’라 불리는 한국생물다양성위원회 위원장 안완식 박사가 감사하다. 지난해 안 박사가 찾아오면서 학계와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앉은뱅이밀을 생산하는 농가도 늘고 있다. 고성, 함안, 사천, 남해 등지로 퍼져나가고 있다. 종자는 물론 그가 내준 것이다. 현재 금곡면에서는 우리밀작목반이 구성돼 있다. 2012년에 120t 정도를 생산했다.

앉은뱅이밀 종자가 이 땅에 사라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백씨는 지금도 가슴이 서늘하다. “계묘년(1963년)에는 한달 내내 비가 왔다고 해요. 종자가 다 썩을 판이었죠.” 백씨의 어머니가 방에 불을 때서 두말 정도를 말려 겨우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금곡정미소는 벼, 보리, 밀도 빻지만 국수나 떡도 뽑는다. 6대의 제분기가 있고 그중 한 대가 100년쯤 된 것이다. 금곡정미소의 제분 방식은 독특하다. 맷돌식이다. “앉은뱅이밀에 딱 맞는 방법입니다.” 제분기의 핵심 부품인 맷돌은 옛날 백씨의 조부가 고안한 방식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국산 누룩을 제조하는 진주곡자공업연구소는 앉은뱅이밀로 만든 누룩을 생산한다. 이진형 대표는 “앉은뱅이밀로 만든 누룩은 향이 그윽하고 질이 우수하다”며 “그 누룩을 넣어 만든 술은 일품”이라고 말했다.

백씨는 3일에 걸쳐 2t 정도의 국수도 만든다고 한다. “국수는 숙성시키는 데 하루 반 걸려요.” 5950㎡(1800평)의 정미소는 그의 땀방울로 늘 분주하다. “앉은뱅이밀은 진짜 건강한 먹을거리입니다. 농약이나 방부제 안 쓰고 약품처리 하는 것도 없어요.” 금곡정미소는 백씨의 아들 창헌(36)씨가 다음 대를 이을 생각이다. 우리도 백년 명가의 탄생이 멀지 않았다.

진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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