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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큐의 완성은 조급증 버리기

등록 2013-07-10 20:01수정 2013-07-11 11:21

잘 익은 립과 돼지 통삼겹살, 비어캔치킨. 닭의 엉덩이 부분의 껍질을 구멍 내 닭다리를 걸었다.
잘 익은 립과 돼지 통삼겹살, 비어캔치킨. 닭의 엉덩이 부분의 껍질을 구멍 내 닭다리를 걸었다.
[esc] 요리
캠핑장 운영하며 질좋은 바비큐 요리법 전수하는 ‘대가야미트캠프’ 이문기씨
사춘기 자녀들과 대화하려
시작한 것이 본업이 됐다
전통 바비큐는 ‘슬로푸드’
90~140도서 천천히 오래 익혀야
겉은 바삭하고 속살 부드러워

대가야미트캠프를 운영하는 이문기씨.
대가야미트캠프를 운영하는 이문기씨.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 1163번지. 화암분교의 주소다. 20여년 전에 폐교된 이 학교는 3년 전 ‘그’를 만나기 전에는 그저 외진 곳의 공터였다. 잡풀이 무성했던 곳이 ‘그’를 만나 다시 생기를 찾았다. 지난 4일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퍼붓는 장맛비는 ‘옳다구나’ 때를 만난 듯 맹공을 펼쳤다.

고령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로 약 5분 달리자 아늑한 화암분교가 나타났다. “아! 반갑습니다. ‘대가야미트캠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가 반갑게 맞는다. 태양에 잘 구워진 구릿빛 피부의 소유자인 이문기(52)씨다. 이씨는 3년 전 이 작은 폐교를 캠핑장으로 탈바꿈시켰다. 1만6000여명이 작년에 다녀갔다. 올해는 2만여명을 예상한다. 캠핑 마니아들 사이에서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캠핑장으로 소문이 났다. 하지만 명성에 비해 별다른 게 없어 보인다. 약 9917.3㎡(약 3000평) 정도의 총 면적은 캠핑장치고는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는다. 건물도 고작 한 동이다. 인기의 비결은 다른 데 있었다.

‘대가야미트캠프’에서는 수제 소시지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그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가공 소시지에 들어가는 인산염, 엠에스지(MSG), 발색제, 보존제 등을 전혀 넣지 않는 수제 소시지를 만들었다.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요. 부모와 함께 만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게 흡입력이 커요.” 그 건강한 맛에 반해 캠핑장을 다녀간 뒤에도 주문하는 이들이 있다. “인산염은 골다골증의 주범입니다. 뼈에서 칼슘을 내쫓는 역할을 하죠.” 그가 만든 바비큐 맛도 볼 수 있고, 바비큐 요리에 관한 이런저런 조언도 들을 수 있다. 그는 바비큐 요리 전문가다. 이 요리 콘텐츠들이 인기 비결이다.

그는 자녀 때문에 바비큐에 빠졌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1995년부터 학원 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에는 직접 학원을 운영해 수강생이 1000여명이 될 정도로 키웠다. “밤 2시에 들어가서 아침 10시에 일어나는 생활”은 ‘질풍노도’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다. 해결책이 급했다. 주말마다 아이들에게 바비큐 요리를 해줬다. “짜냐? 싱겁냐? 맛은 어때?”로 시작한 대화는 효과가 컸다. “처음 인터넷에서 양념 다 된 것을 샀는데, 포장지를 보니 험한 것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다 해야겠다 생각했죠.” 그때부터 ‘바비큐 클럽’ ‘바비큐 마니아’ 등 각종 온라인 카페에 들락거렸다. 2008년에는 아예 아웃도어 요리 카페(cafe.daum.net/cookout)지기로 나섰다. “(하지만) 매일 올라오는 요리가 통삼겹살이나 치킨뿐이었어요. 미국에서 온 요리이니 그네들은 뭘 해먹나 궁금해졌죠.” ‘아마존닷컴’ 등을 뒤져 원서를 사 읽고 과학적인 원리를 연구했다. 바비큐 마니아들 사이에서 그 실력이 소문이 나, 캠핑장을 열면서 시작한 3박4일 일정의 바비큐요리교실은 겨울에만 열리는데도 늘 수강생이 꽉 찼다. 때때로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도 방문한다. “지난주에 회사를 그만뒀죠. 천안에 바비큐 호프집 준비중이에요.” 서울에서 이씨를 찾아온 김성주씨는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인생 2모작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 때 산악부도 했고, 캠핑이나 아웃도어 요리도 좋아했어요. 아이들에게 요리를 해주기 시작하면서 그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 했죠. 마침 전 정권의 학원정책의 변화로 상황도 달라지고 있었죠.” 인생의 방향을 캠핑장 운영으로 바꾼 이유다. 하지만 캠핑장을 직접 짓는 일은 비용이 꽤 드는 일이었다. 그는 폐교로 눈을 돌렸다. 경상도 일대 폐교를 6개월 이상 답사하고, 온비드(www.onbid.co.kr,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공매시스템)를 통해 지금의 화암분교를 입찰받았다.

나비닭요리 과정.
나비닭요리 과정.
그는 “몸은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바비큐 전문가가 알려주는 요리 정보는 꼼꼼하다. 보통 바비큐는 그릴링(grilling·직화구이)과 바비큐잉(barbecuing·간접구이)으로 나뉘지만 이씨는 약 90~140도 정도에서 천천히 오래 익히는 후자를 전통 바비큐라고 말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살아있어 부드럽다. 캠핑 인구가 늘면서 소시지나 얇게 썬 삼겹살 등을 빨리 구워 먹는 직화구이보다 조금 더 난도가 높은 간접구이 바비큐 요리에 도전하는 이들이 많다.

이씨가 돼지고기와 소 등갈비(립), 생닭을 꺼내 손질부터 시범을 보인다. “돼지고기는 굳이 비싼 생삼겹살을 쓰지 않고 조금 더 저렴한 냉동 삼겹살을 해동해 사용해도 좋아요. 어느 정도 수분이 빠져나간 상태라서 적당한 수준의 탄력을 유지하죠.” 그
닭의 등뼈를 잘라내고 있다. 나비닭요리를 만드는 과정.
닭의 등뼈를 잘라내고 있다. 나비닭요리를 만드는 과정.
가 두툼한 해동된 통삼겹살 덩어리를 9등분하고 럽(rub)을 문질렀다. 럽은 누린내를 없애고 맛과 풍미를 내는 일종의 양념이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사람의 취향마다 다르다. 보통 드라이 럽(dry rub)과 웨트 럽(wet rub)이 있다. 이씨는 자신이 만든 기본 럽을 공개한다. 파프리카 가루 4큰술, 황설탕 4큰술, 소금 3큰술, 허브후추 3큰술, 양파 가루 2큰술, 마늘 가루 1큰술, 청양고춧가루 1작은술을 섞어 만들었다. “숙성을 위해 1시간 정도 둡니다.” 그가 립 손질에 나선다. “바비큐의 꽃이죠. 근막을 제거하고 피 뽑는 게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누린내가 나요.” 살에 붙은 얇은 근막을 쭉쭉 뜯어내고 손가락으로 뼈와 뼈 사이를 눌러 피를 뽑는다. “립은 아무리 테크닉이 훌륭해도 재료의 의존도가 높아요. 국산은 누린내가 적고 미국산은 많이 나는 편입니다.” 그가 4% 소금물에 립을 담갔다. 염지(curing, 鹽漬)다. 염지를 하면 익히는 동안 열 때문에 사라지는 수분의 양을 늘일 수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고기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염지용으로는 정제염이 좋아요. 미네랄 등의 금속이온 성분이 많은 천일염은 오히려 돼지고기를 익힐 때 나쁜 냄새를 더 나게 할 수 있어요.” 나쁜 냄새를 막는 방법에는 훈연과 세이지 같은 향이 강한 식물을 양념으로 쓰는 것이다. 닭은 1시간 40분, 립은 1시간 10분 염지를 한다. 나비닭요리에서는 “배를 쪼개지 말고 등뼈를 통으로 잘라내야” 한다고 알려준다. 모양이 마치 나비 같아 붙여진 바비큐 닭요리다. 닭에 바르는 럽은 돼지고기와 다르다. 스위트파프리카 4큰술, 칠리 파우더 2큰술, 커민 가루 2큰술, 흑설탕 2큰술, 소금 2큰술, 말린 오레가노 1큰술, 설탕 1큰술, 간 흑후추 1큰술, 간 백후추 1큰술, 카옌고춧가루 1~2작은술을 섞어 만든 드라이 럽을 바른다.

립의 핏물 빼는 법.
립의 핏물 빼는 법.
이제 그가 너른 운동장에 바비큐 전용 그릴에 고기를 얹고 익히기 시작한다. 립은 그릴 안 내부 온도가 130도에서 3시간 반, 140도에서 3시간, 150도에서 2시간 반 걸린다. 돼지고기는 내부 온도 140~150도에서 1시간 반 걸린다. “심부 온도(고기 살 온도)는 돼지고기는 74도, 닭은 83도, 소고기는 72도가 적당하죠.” 그릴 내부 온도를 재는 온도계와 고기 살에 박아 심부 온도를 재는 온도계가 필요하다. 그가 그릴 안에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 고기 온도가 30~40도 정도 높아지자 훈연 톱밥 가루를 싼 포일을 구멍 내 그릴 안에 넣는다. 숯은 차콜, 브리켓, 차콜 바스켓 등 다양하다.

훈연 재료인 톱밥을 포일에 싸고 있다. 포일은 구멍을 내 그릴 안의 숯 위에 올린다.
훈연 재료인 톱밥을 포일에 싸고 있다. 포일은 구멍을 내 그릴 안의 숯 위에 올린다.
그는 익히는 내내 온 신경을 쓴다. 숯이 다 타서 갈아야 하는지, 온도는 계속 유지되는지 확인하는 데 여념이 없다. “바비큐는 슬로푸드입니다. 초보자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급하게 결과를 보려고 해서죠. 요즘 양지고기로 7~8시간 걸려 바비큐 하는 것도 있죠.” 그가 마지막으로 레스팅(resting)을 한다. 조리가 끝난 뒤 포일에 고기를 싸 한동안 실온에 두는 것이다. 육즙이 골고루 퍼진다. 완성된 바비큐의 맛은 저절로 눈을 감고 ‘으흠’ 외마디 소리를 지르게 한다. 바삭한 껍질과 비단 솜털처럼 보드라운 속살의 조화가 그야말로 짜릿하다.

요즘 그의 폐교를 활용한 캠핑장 성공이 소문이 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문의를 하거나 자문위원단 등의 방문이 많다. 그의 소망은 수제 소시지 개발이나 각종 콘텐츠를 널리 알려 우리 농가를 살리는 것이다.

고령/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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