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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발 오렌지빛, 세계 여성들의 얼굴 물들이다

등록 2013-05-29 20:00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매장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변명숙 수석 아티스트. 명랑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내내 촬영장 분위기를 밝혔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매장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변명숙 수석 아티스트. 명랑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내내 촬영장 분위기를 밝혔다.
[esc]스타일
비비크림·블러셔 등 국내 트렌드를 글로벌 히트 상품으로 만든 맥코리아 변명숙 수석아티스트

코리안 뷰티의 핵심은 ‘피부’예요
세계 4대 패션위크 백스테이지에서
키 아티스트들이 모델 피부를
‘코리안 스킨처럼 해달라’고 하죠

오렌지 색깔의 향연이었다. 이달 초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맥(MAC)은 ‘올 어바웃 오렌지 컬렉션’을 선보였다. 한국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제안을 미국 본사가 전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세계 모든 매장에 봄/여름을 겨냥한 상품으로 선보인 것이다.

이런 기획을 진두지휘한 변명숙(41·맥 코리아 아티스트리 부문 수장) 수석 아티스트를 24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매장에서 만났다. 그는 “지사의 제안을 본사가 채택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한국 쪽 제안이 송두리째 ‘컬렉션’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이 이렇게 커졌나 싶어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맥은 1985년 설립 뒤 세계 75개 지역 1700여개 매장을 갖고 있는 글로벌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다. 세계 4대 패션위크(뉴욕·런던·밀라노·파리)에서 250여개나 되는 브랜드의 백 스테이지 화장을 책임지는 만큼, 다음 시즌 화장 유행을 선도하는 브랜드로서 자부심이 크다. 이처럼 콧대 높은 글로벌 브랜드 본사가 한 지역의 제안으로 제품을 세계 시장에 내놓는 일은 흔치 않다. 한 나라의 유행에 국한된 제품을 전세계에 내놓는다는 건 매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렌지 컬렉션’은 7가지 다양한 오렌지빛 립스틱을 비롯해 블러셔, 네일 제품까지 완벽한 한 세트를 이뤘다. 모두가 한국인들이 유독 좋아하는 제품들로 일부 색상은 출시된 지 얼마 안 돼 매진 사태를 기록했다. 변 수석은 “한국인들은 눈꺼풀에 바르는 섀도를 생략하더라도 입술과 뺨을 물들이는 화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품 출시 바탕엔 외국과 한국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변 수석의 활약이 있었다. 그는 2002년 영국 패션학교 ‘유니버시티 오브 아트 런던’을 졸업하고 맥 잉글랜드에 입사한 뒤 런던 매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실력있는 아티스트로 정평이 나면서 이듬해엔 밀라노 컬렉션 백스테이지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지금까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매번 4대 컬렉션에 참여하는 사람은 국내에서 변 수석이 유일하다.

“컬렉션 백스테이지에서 활동한다는 건 아티스트로서 정말 인정받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전 누구도 부럽지 않아요. 저의 작업이 세계 트렌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특별한 거죠.”

제품사진 제공 맥
제품사진 제공 맥

2006년 맥 코리아의 수석 아티스트가 되자마자 맥 외국 지사와 본사에서 ‘코리안 뷰티가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시안 뷰티’는 긴 눈매를 가진 중국 여성들의 외모를 가리켰다. 아시아 시장 제품으로는 일본 화장품의 영향력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한국 여배우들의 화장법이 세계 시장 전체에서 인기를 얻게 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중국, 대만뿐만 아니라 뉴욕 본사에서도 그에게 ‘한류 프레젠테이션’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코리안 뷰티의 핵심은 ‘피부’예요. 우리나라 여성들의 피부 표현은 매우 정교하고 완벽해요. 잡티를 가리고 피부톤을 보정하고, 수정화장까지 풀 메이크업으로 할 건 다 하지만 결국은 화장을 안 한 것처럼 하는 거예요. 화장한 티를 내면 절대 안 돼요. ‘생얼’로 보여야 하죠. 눈화장도 빈 곳을 메꾸면서 꼼꼼히 해주지만 실제 자연스럽게 자기 얼굴인 것처럼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피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꼭 한국만의 경향은 아니어서, 뉴욕 여성들 또한 건강한 피부의 상징인 ‘구릿빛’(브론징)으로 만드는 데 열을 올린다. 피부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화장술은 한국인들만의 뜬금없는 소망이 아니었고, 세계 여성들 다수가 꿈꾸는 미적 기준과 부합했기 때문에 더욱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밀라노·파리·뉴욕·런던의 세계 4대 패션위크 컬렉션의 백스테이지에서 쇼 메이크업의 콘셉트를 잡으며 영향력이 막강한 키 아티스트(세계에서 가장 이름이 높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모델의 피부를 ‘코리안 스킨처럼 해달라’고들 얘기해요. 한국 여성들의 피부 표현이 그렇게 유명해지면서 컬렉션 백스테이지에서도 비비크림을 쓰게 됐어요.”

원래 문신이나 화상으로 인한 흉터자국 등을 가리기 위한 전문가용 제품이던 비비크림이 한국에서 널리 쓰이면서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게 된 건 주지의 사실. 외국의 전문가들은 육안으로 볼 때 콘크리트 색깔처럼 칙칙하지만 피부에 바르면 뽀얗게 변하는 한국산 비비크림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다. 맥이 2011년 내놓은 뷰티 밤(비비) 크림이나 콤팩트 또한 한국형 화장법인 ‘미니멀 스킨’을 연출하는 데 적합한 제품으로 개발됐다. 한국인들의 ‘콤팩트 사랑’에 힘입어 거울 달린 패키지가 채택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미국 본사는 처음으로 한국 지사에 립스틱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각 나라 매장에서 ‘한국에서 많이 쓰는 색깔을 달라’는 요청을 쏟아냈던 것이다. 그렇게 6명의 한국인 아티스트들이 수많은 색을 섞어 6가지 제품 샘플을 만들어 보냈고, 결국 3가지 제품이 선택됐다. ‘코리안 캔디(오렌지 레드)·해피 히비스커스(화이트 핑크)·시어 만다린(옐로 오렌지)’ 립스틱이 그렇게 탄생했고, 세가지 제품 모두 아시아 시장에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2012년 4월 출시한 연분홍과 밝은 복숭아색 파우더 블러시도 한국 아티스트들이 개발해 ‘코리아 블러시’란 별명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또한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볼색깔을 연출하는 데 방점을 뒀다.

“지금 세계 화장법 트렌드는 한마디로 ‘미니멀 뷰티’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죠. 피부를 자연스럽게 만들면서 자신의 개성이나 발랄함까지 표현할 수 있는 ‘포인트 메이크업’을 하는 겁니다. 앞으로도 이같은 경향이 계속될 거예요. 단, 너무 완벽한 게 아니라 입술을 얼룩지게 바르는 등 자연스러운 실수마저 관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각이 형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변명숙 맥 수석 아티스트
변명숙 맥 수석 아티스트
아시아에 4명뿐인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 오르기까지

변명숙 맥 수석 아티스트는 아시아 지역에서 단 4명만 존재하는 수석 아티스트 가운데 한명이다. 한국 무용을 전공하다가 “무슨 일을 하든 1등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1996년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전향했다.

국내에서 김청경 원장에게 배우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이름을 얻었다. 작은 오피스텔을 차려놓고 학생들의 개인 레슨과 잡지 화보 메이크업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시장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아 외국의 패션잡지를 따라하는 수준에 그쳤던 때였다. ‘외국 화보와 똑같이 해달라’는 잡지사 기자들의 요구에 지쳐 1998년 영국으로 떠났다. 다음해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1파운드가 3000원을 웃돌았고 경제적 상황도 좋지 않았다. 가까스로 학교에 들어가 맥의 ‘글로벌 트레이너’였던 스승을 만나 “매 수업 깨지고 매번 학교 가는 게 너무 무서울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2002년 그토록 꿈꾸던 맥 잉글랜드에 입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매출 1등인 런던 백화점 매장에서 일하게 됐다.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한 그곳에서 120명의 아티스트 가운데 한명으로 “너무나 열심히” 일을 했다. 풀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자격도 시험을 통해 따로 줄 정도로 전문가로서 성장하기에 절차가 복잡한 브랜드였지만 곧 인정을 받았다. 세계적인 패션쇼 백스테이지에서 일한 지 올해가 꼭 10년이다.

“세계에서 가장 힘든 매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고생해왔기에 ‘코리안 뷰티’의 성공이 남달리 뿌듯합니다. 세계적 브랜드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는 건 기가 막힌 일이에요.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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