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제대한 20~40대 민간인 남성 셋이 말하는 세대별 짬밥의 추억
‘군데리아’ 샐러드 신세대 장병 인기
입맛 바뀌어도 허기는 여전
밥먹겠다고 나섰다가 얼차려 받았던 동료도 뽀글이. 파마머리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봉지라면을 뜯어 펄펄 끓는 물을 붓고 짧은 시간 익혀 먹는 라면요리다. 군대에서 완성된 요리법이다. 티브이엔(tvN)의 드라마 <푸른거탑>에서 김재우 병장이 천연덕스럽게 뽀글이를 제조하는 장면은 웃음과 추억을 부른다. 장병들의 먹을거리는 미군 원조식품에 의존했던 초창기와 달리 많은 변화를 겪었다. 세대별 급식의 내용과 먹거리 추억도 다르다. esc가 ‘짬밥토크’를 통해 변천사를 훑어보기로 했다. 짬밥은 ‘잔반’(殘飯. 먹고 남은 밥)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한데, 일반적으로 군대에서 먹는 밥을 이른다. 조양현(25.2008년 6월~2010년 4월 육군 52사단 복무)씨, 김민주(가명·36. 1998년 10월~2000년 12월 해병대 1사단과 제주방어사령부 복무)씨, 류명한(가명·41. 1993년 7월~1995년 9월 육군 9사단 복무)씨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기자: 군인 하면 초코파이잖아요. 왜 그렇게 좋아해요?
조양현 (이하 조): 훈련병 때 단게 없어요. 식사는 맛이 밍밍하고. 저는 예외일 수 있겠는데, 안 좋아했어요. 살 빼려고요. 군대에서 뜻밖에 저처럼 다이어트하는 친구들 많아요.
류명한(이하 류): 군대 다이어트구나. 세대차이 느껴지네요.
조: 훈련소와 자대 밥은 다릅니다. 훈련소는 맛이 없어요. 멸치, 김, 두부조림, 콩나물무침, 국은 항상 된장을 푼 ‘똥국’이 나왔어요. 입대 전에 많이 들어서 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대부분의 친구들은 잘 안 먹었죠.
김민주(이하 김), 류: 똥국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군요.
김: 색도 그렇고 맛도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군대 가면 모든 언어가 비하가 되죠. 배 안 고팠어요? 군대에서 엄청 고픈데.
조: 고팠지만 전략을 세웠어요. 물 많이 마시면 살찐다고 해서 국도 잘 안 먹고, 반찬만 먹었죠. ‘군데리아’를 좋아했어요. 빵과 샐러드가 나오는 햄버거 아시죠?
류, 김: (놀란 표정으로) 샐러드요! 우리 때는 없었는데.
조: 양배추와 마카로니, 마요네즈를 버무린 것, 삶은 계란 한 쪽, 수프와 빵 두 쪽, 치즈가 나와요. 비리다고 안 먹는 친구들도 있었죠. 달걀도 잘 조리 된 거 같지 않고, 샐러드도 위생적으로 안 보인다면서요. 저는 다이어트하려고 많이 먹었어요.
류: 우리 때 신생 메뉴가 그 햄버거였어요. 정말 싫어했죠. 지금 마흔 초반인 이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에요. 우유도 같이 안 먹었어요. 먹고 나면 화장실 갔어요. 패티도 좋은 게 아닌 거 같고.
김: 모닝빵처럼 생겼는데, 야들야들하지 않고 딱딱해요. 찐 거예요. 군대는 뭐든지 찌죠. 치즈는 정말 맛있어요. 고기는 여러 낭설이 있었고, 딸기잼 발라 먹었죠.
조: ‘건플레이크’란 게 있어요. 콘플레이크와 비슷한데, 건빵을 부숴서 우유와 섞어 먹는 거죠. 그냥 먹으면 밍밍하니깐 별사탕을 넣었어요.
류: 철책근무 할 때 먹은 기억 있네요. 별사탕은 안 넣었지요. 군대 들어가기 전에 정력감퇴제라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철책근무 시절에 잠시 취사병을 했는데 건빵을 튀겨 설탕 뿌려 주면 장병들이 좋아해요. 이게 요즘 호프집 안주로 나오더라고요.
김: 해병대와는 다르네요. 건빵 부숴 먹진 않아요. 해안경계를 서는 장병이 실제로 잠수복 입고 바다 들어가 작살로 생선을 잡아 회를 떠 먹었어요. 일반인들 접근이 어렵고, 고기도 많다고 하더군요. 육군은 산나물 캐나요?(웃음)
류: 대민봉사하고 올 때 메뚜기가 널린 거예요. 잡아 튀겨 먹었죠. 객기에 뱀 잡아 껍질 벗겨 먹은 적도 있고요. 훈련소의 밥 색깔은 아주 강렬했어요. 거의 검정에 가까웠죠. 보리와 쌀이 약 6 대 4였던 거 같은데, 위에 덮인 보리가 충격이었어요. 철책근무 때는 부식이 잘 나오잖아요. 취사병 할 때 보리를 몰래 버리기도 했어요.
조: 메뚜기 그런 거 먹은 적 없고요. 쌀은 오래된 느낌은 있었지만 분식점보다 나았어요.
김: 한때 닭고기 많이 먹었네요. 한참 조류독감 얘기 나올 때죠. 거의 법칙 아닌가요. 남는 식량은 다 군대로. 전투식량도 그래요. 어느 날은 비빔밥 전투식량을 받았는데, 유통기간이 2개월 남은 거예요. 보존기간이 3년인데. 라면도 같아요. 면 자체가 눅눅해요.
조: 요즘 인터넷도 자유롭게 보니깐 조류독감 얘기 나오면 닭고기 많이 먹겠구나 생각해요. 우리 세대는 전투식량을 대개 좋아해요. 이벤트라 생각하죠. 초콜릿도 나오고 종류도 많고.
류: 군대 갔다 오면 싫어하는 음식이 생겨요. 보리도 그렇지만 양배추는 지금도 안 먹어요.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김치가 나왔거든요.
김: 우리 때는 배추김치 나왔는데… 배추값이 올랐을 때만 깍두기 먹었죠. 제일 싫어하는 음식은 ‘인절미’과자였어요. 인절미 가루 묻힌 과자인데 많이 딱딱해요. 해병대는 ‘악기바리’라는 게 있었어요. 군기가 들었나 보는 거죠. 봉지과자 다 뜯어서 박스에 부어요. 한꺼번에 두 손에 가득 담아 팍팍 먹어야 했어요. 선임이 먼저 시범을 보이죠. 입안이 다 까져요.
조: 자대 음식은 맛도 좋고 양도 많았어요. 1인당 2개 받는 돈가스를 4개 받기도 했죠. 돈가스 말고도 여러 히트상품(음식) 있었죠. 깐풍기, 닭볶음탕, 감자탕, 사골곰탕 같은 거요. 일주일에 한번은 나왔어요. 깐풍기는 고기는 적고 튀김옷은 두꺼웠지만 인기는 많았어요.
류: 깐풍기가 있어요? 우리 때 가장 고급스러운 음식이 닭튀김이었는데.
조: 그런 날은 피엑스(군대 매점)가 장사가 안 돼요. 지금은 충성마트라고 부르는데. 소시지나 햄, 족발 같은 고기류, 오징어, 견과류가 다 있고, 컵팥빙수도 있고, 민간인 사회 슈퍼와 거의 같아요.
류: 우리 때는 족발 없고, 닭발이 인기 최고였어요. 피엑스 이름이 촌스럽네요.
김: 저희 식당은 ‘왕자식당’이었는데요.(다 같이 웃음) 우리 때는 피엑스 마음대로 못 갔는데… 작대기 하나(이등병)가 초코바가 당긴다고 피엑스 간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상병쯤 돼야 마음대로 가요.
조: 맛스타는 다 아시죠? 그게 원래 ‘맛대령’이었는데 진급시키려고 맛스타가 됐다는 설이 있어요. 포도, 사과, 오렌지, 파인애플, 망고 맛이 있고요.
류: 큰 훈련 뛰고 나야 줬는데, 맛도 오렌지만 있었는데.
김: 자주 나왔어요.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망고는 없었는데. 비타민 공급이 목적이에요. 신선한 야채 먹기가 쉽지 않잖아요.
맛스타는 군인공제회에서 만든 음료 제품명이다. 군에서만 판다. 양은 250㎖. 100% 원액이다. 현재 ‘생생가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기자: 건빵이나 라면에 관한 추억 많죠?
류: 건빵도 싫어하는 음식이에요. 고참들이 괴롭힐 때 남은 건빵 먹게 하잖아요.
김: 자대배치 받고 나면 건빵 희소성이 확 떨어져요. 피엑스가 있으니깐. 훈련소 때는 맛나죠. 저를 포함한 세 사람한테 한 봉지를 준 적 있어요. 어떻게 나눌 것이냐,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죠. 싸움이 날까 싶어 결국 한 개씩, 한 개씩, 한 개씩 천천히 나눴어요.
조: 건빵을 싫어하지는 않아요. 기호품으로 접근하니깐 휴가 때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김: 뽀글이는 기본이죠. 내무반에 냉온수기가 있어서 숨겨둔 커피포트 꺼내 썼죠. 순검(점호)하고 먹었어요.
조: 쌀국수도 먹고, 짜파게티 먹다가 다른 면과 섞기도 하고, 뽀글이에 햄도 넣고, 짬뽕면에 소시지를 찍어도 먹습니다. 다양한 조합으로 먹는 거죠.
류: 왕고참이 밤에 몰래 화장실에서 버너에 끓여 먹는 거, 본 적은 있는데 내무반에서 먹은 기억은 없네요. 앞 세대는 철모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던데.
김: 라면 이야기는 아닌데 45㎞ 행군하고 먹은 꽁치찌개와 공수훈련 뒤에 철모에 부어 마신 막걸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233m 상공에서 3번 뛰어내리는 훈련입니다. 너무 맛있어요. 성취감이 컸어요. 제주도에서는 군무원 아줌마가 해준 제육볶음도 잊을 수 없어요. 육지에서 식량공급하면 유통비가 더 발생해 섬에서 공급받았어요. 더 신선했죠.
조: 행정병을 하다가 통신병도 했는데 한번은 안테나 들고 서울 강서구에 있는 우장산에 올라갔어요. 밥이 저녁 6시가 되어도 안 오는 거예요. 날은 춥지, 무전기에다 밥 언제 오냐고 계속 물었습니다. 껌을 꺼내 동료랑 나눠 먹고 있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저녁 먹고 어슬렁어슬렁 운동하러 온 거예요. 그네 타고 그러시는데, 배가 너무 고파 아줌마에게 돈을 빌릴까 한 적 있어요.
류: 훈련 갔다 텐트 안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먹은 라면은 절대 못 잊어요. 날은 춥고 대남선전방송은 막 나오고.(웃음)
김: 훈련병 때 정말 배고프잖아요. 토요일엔 짜장면을 주는데, 낙엽 쓸고 왔더니 쪼그만 요구르트만 주는 거 있죠. 교관이 꼭 밥 먹어야 하는 사람 나와라 하는데 제 친구가 ‘먹어야겠습니다’ 나갔다가 엄청 맞았어요.
류: 배식문화는 바뀔 필요가 있어요. ‘처분에 맡기겠습니다’란 자세로 식판을 내밀죠. ‘준 만큼 받아먹어라’인 건데, 맛난 것을 공평하게 나누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겠죠. 하지만 장병들이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만들면 되는 게 아닌가요.
김: 음식보다 군대 문화 자체가 충격이었죠. 불합리한 위계질서 같은 것들이요.
류: 그런 게 음식하고도 결합되어 있죠. 신참은 선임의 식판도 타주고, 빨리 먹어야 하고 맛있는 것은 선임들이 먼저 가서 먹고.
조: 생활은 힘들었지만 밥은 잘 먹은 거 같아요. 뭘 못 먹어서 고생한 적은 없어요, 자취하는데 군대 밥이 그리울 때도 많아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죠.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국방부, 국군복지단 제공
입맛 바뀌어도 허기는 여전
밥먹겠다고 나섰다가 얼차려 받았던 동료도 뽀글이. 파마머리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봉지라면을 뜯어 펄펄 끓는 물을 붓고 짧은 시간 익혀 먹는 라면요리다. 군대에서 완성된 요리법이다. 티브이엔(tvN)의 드라마 <푸른거탑>에서 김재우 병장이 천연덕스럽게 뽀글이를 제조하는 장면은 웃음과 추억을 부른다. 장병들의 먹을거리는 미군 원조식품에 의존했던 초창기와 달리 많은 변화를 겪었다. 세대별 급식의 내용과 먹거리 추억도 다르다. esc가 ‘짬밥토크’를 통해 변천사를 훑어보기로 했다. 짬밥은 ‘잔반’(殘飯. 먹고 남은 밥)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한데, 일반적으로 군대에서 먹는 밥을 이른다. 조양현(25.2008년 6월~2010년 4월 육군 52사단 복무)씨, 김민주(가명·36. 1998년 10월~2000년 12월 해병대 1사단과 제주방어사령부 복무)씨, 류명한(가명·41. 1993년 7월~1995년 9월 육군 9사단 복무)씨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군은 주식량 감소에 따라 부식의 영양소를 높이고, 후식 비중을 강화한 균형 잡힌 식단 운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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