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매거진]
청담동에 설렁탕집
차린 의사 윤두화씨
조리사자격증 딴 뒤
유기농 재료 고집해 조리
청담동에 설렁탕집
차린 의사 윤두화씨
조리사자격증 딴 뒤
유기농 재료 고집해 조리
2011년 다큐멘터리 작품 <트루맛쇼>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맛집 방송 프로그램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 작품이다. 사람들은 소위 ‘맛집’이란 곳에 의심에 찬 눈초리를 던지기 시작했다. ‘건강’을 강조하는 곳조차 인공조미료를 지나치게 사용했을까 염려하게 됐다. 이런 걱정은 붙들어 매라면서 맛집 세계에 도전장을 내민 이들이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상가의 지하. 황소처럼 누런 간판이 높게 걸려 있다. ‘오나가나설렁탕’이다. 단조로운 식탁은 흔한 설렁탕집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다. 심드렁한 시선이 벽에 꽂힌다. ‘닥터 윤’(Dr. Yoon)이란 글자 아래 둥그런 소와 만화 주인공 같은 이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의 ‘닥터 윤’은 소의 둥근 배에 청진기를 대고 있다. 소와 닥터 윤은 무슨 관계? “우리 사장님이에요. 의사 선생님이죠.” 서찬민 매니저가 씩 웃는다. ‘닥터 윤’은 ‘더 편한 몸 의원’에서 일하는 의료인 윤두화(59)씨다. 그의 일상은 설렁탕집과 병원을 ‘오나가나’ 한다.
“병이란 갑자기 오지 않아요. 건강하다가도 피로가 쌓이면 질병이 와요.” 병원에서 만난 윤씨는 곱다. 우리 몸의 단면도부터 서둘러 꺼내 들어 단단하게 붙잡고 장기를 콕콕 집어 설명한다. “심장이 보이시죠. 피를 짜서 돌리잖아요. 내가 먹고 마신 게 피가 돼 도는 거예요.” 그의 손가락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로 향했다가 십이지장과 대장을 향해 달린다.
그는 숱한 이들을 검진했다. 결과를 놓고 환자와 긴 대화도 했다. 병의 원인은 잘못된 일상생활에 있었다. 먹는 것과 생활패턴은 병을 부르기도 하고 쫓아내기도 한다. 건강한 생활 교육은 그의 진료 중 하나다. 환자에게 우리 몸의 원리를 알려주고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교육했다. “세포가 건강해야 그게 모여 건강한 조직을 만들고, 그게 모여 장기를 만들죠.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들어요.” 우리 미각은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하기만 한 것들에 길들여져 있는지 모른다. 신선한 식재료는 그것 자체가 왕후장상의 밥상보다 맛나기 마련이다. 그는 2009년 8월 “실제 좋은 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예 건강식을 세상에 선보였다. 오나가나설렁탕의 탄생이다. 국민음식 설렁탕을 선택했다.
그는 조리사자격증부터 땄다. 재료는 항생제, 성장촉진제 등을 전혀 먹이지 않고, 제초제 등을 뿌리지 않은 사료만 먹은 유기농 소로 정했다. 남편 권오광(59) 박사의 도움이 컸다. 권씨는 유기농축산 전문가다. 남편의 추천으로 한 목장과 계약하고 소를 공급받았다. 지금은 제주도, 경남 산청 일대의 소를 쓴다. 요리사가 아닌 그가 맛을 내긴 쉽지 않았다. 레시피가 만들 때마다 달라졌다.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베야 할 텐데 덜컹 후회도 밀려왔다.
최근에야 정교한 레시피가 완성되고 자신감도 붙었다. 밥도 유기농 쌀로, 김치도 유기농 배추와 무로 만들었다. 전남 신안군 도초면에서 생산되는 ‘나귀소금’이 식탁에 나온다. 윤씨의 요즘 고민은 가격이다. 포장판매는 고민 속에 나온 아이디어다. 포장판매의 경우 2000원이 싼 1만원이다. 양은 600㏄. 두 사람이 족히 먹고도 남을 양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는 게 의사라고 생각해요. 설렁탕집이 안정되면 다른 음식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의 설렁탕은 소금을 뿌려도 싱거운 듯 담백하다. 이 맛에 빠진 이들은 진한 사랑에 푹 빠진다.
양의만 건강식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약다방 봄동’은 봄볕을 온몸에 받기 좋다. 창은 넓고 2층까지 이어진 계단은 어린 시절 숨바꼭질하던 집이 생각난다. 하루 종일 연인의 집인 양 놀아도 지겹지 않다. 차림표에 있는 ‘무디다’를 주문하자 생일부터 묻는다. 사주를 보는 카페라 생각하면 오해다.
“태어난 계절에 따라 마시는 약차가 약간 달라요.” 같은 ‘무디다’를 주문해도 4월에 태어난 이와 9월생인 이가 마시는 약차는 다르다고 한다. 한의사 이상엽씨의 말이다. 약다방 봄동은 이상엽씨를 비롯한 20대부터 40대 초까지의 한의사 16명이 지난해 9월에 뭉쳐 만든 약차 카페다. 이들이 출범시킨 기업 ‘에고 앤 에코’의 첫번째 프로젝트다.
동교동 약다방 봄동
한의사 16명이 의기투합
바디약차·브레인약차 개발
메뉴판에 반응 효과 등 설명 차림표는 허준의 숨겨놓은 비책처럼 신비롭다. 부채처럼 길게 늘어진 종이를 꼼꼼히 보는 데만 몇십분이 걸린다. 한 면에는 18가지 ‘바디약차’가, 다른 면에는 10가지 ‘브레인약차’가 적혀 있다. 고르는 법도 첫 장에 자세하다. 아무리 훑어봐도 커피는 없다. “약차를 커피 대신 마시자란 생각이죠. 카페문화 90%가 커피잖아요.” 한방차는 오미자차처럼 단맛이 강한 차만 떠올리기 쉽다. 차림표를 살피다 보면 다양한 약차에 눈을 뜬다. 7~16가지의 약재를 섞어 차를 만들고 한의사들이 여러번 시음해 정했다. “약차를 마셨을 때 몸에 어느 정도 반응이 오는지를 테스트했어요.” 메뉴 구성만 2년 걸렸다. 바디약차에는 ‘나른하다’ ‘피곤하다’ ‘불쾌하다’ ‘우울하다’ ‘심란하다’ 등이 있다. 이름마다 증상도 적혀 있다. 이씨는 “신체의 구체적인 자각증세가 있을 때 마시는 겁니다. ‘우울하다’는 표현이 다를 뿐 신체적인 증상일 수 있어요. 감기에 걸려 몸이 안 좋으면 우울한 감정이 생기죠.” 바디약차는 흔히 ‘달인다’고 표현하는 전통방식으로 만든다. 사극에서 도련님 탕약을 생각하면 맞다.
브레인약차는 ‘집중’ ‘몰입’ ‘고찰’ ‘인내’ ‘수용’ 등이 있다. “자각증세 없이 특정 에너지를 원할 때 마시는 차죠.” 약재들의 줄기, 잎, 뿌리 등을 급속 건조시킨 뒤에 마치 커피 내리듯 드립방식으로 만든다. 복령, 작약, 인삼 등 국산 약재가 재료다.
약차 한 모금에 배가 고프면 호박인절미가 기다린다. 평소 발효음식, 전통음식을 배워둔 한의사 김은영씨의 솜씨다. “처음에는 커피가 없다고 나간 분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없어요. 20~40대 여성이나 50대 남성까지 다양한 이들이 와요.” 이상엽 원장은 상견례 장소로 이곳을 찾은 손님을 잊을 수 없다.
“대안의료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우리는 운동 기업이라고 불러요. 새로운 의료문화를 제시해서 의료 환경을 바꿔보자는 생각입니다.” 이들은 ‘치질과 금융자본’ ‘육식주의자의 보행습관’ ‘변비와 시각적 취향’ 등 재미있는 강의 워크숍 ‘활사개공’(活私開公)도 연다. 브레인약차는 향긋한 향이 일품이다. 연하다. 술술 들어간다. 바디약차는 차와 탕약 중간 정도 맛. 진하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1. ‘오나가나설렁탕’의 실내 풍경. 내부 장식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2. ‘약다방 봄동’의 외관. 마치 일반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실내에는 족욕시설도 있다.
한의사 16명이 의기투합
바디약차·브레인약차 개발
메뉴판에 반응 효과 등 설명 차림표는 허준의 숨겨놓은 비책처럼 신비롭다. 부채처럼 길게 늘어진 종이를 꼼꼼히 보는 데만 몇십분이 걸린다. 한 면에는 18가지 ‘바디약차’가, 다른 면에는 10가지 ‘브레인약차’가 적혀 있다. 고르는 법도 첫 장에 자세하다. 아무리 훑어봐도 커피는 없다. “약차를 커피 대신 마시자란 생각이죠. 카페문화 90%가 커피잖아요.” 한방차는 오미자차처럼 단맛이 강한 차만 떠올리기 쉽다. 차림표를 살피다 보면 다양한 약차에 눈을 뜬다. 7~16가지의 약재를 섞어 차를 만들고 한의사들이 여러번 시음해 정했다. “약차를 마셨을 때 몸에 어느 정도 반응이 오는지를 테스트했어요.” 메뉴 구성만 2년 걸렸다. 바디약차에는 ‘나른하다’ ‘피곤하다’ ‘불쾌하다’ ‘우울하다’ ‘심란하다’ 등이 있다. 이름마다 증상도 적혀 있다. 이씨는 “신체의 구체적인 자각증세가 있을 때 마시는 겁니다. ‘우울하다’는 표현이 다를 뿐 신체적인 증상일 수 있어요. 감기에 걸려 몸이 안 좋으면 우울한 감정이 생기죠.” 바디약차는 흔히 ‘달인다’고 표현하는 전통방식으로 만든다. 사극에서 도련님 탕약을 생각하면 맞다.
3. ‘약다방 봄동’의 호박인절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