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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는 곳이 아니므니다?

등록 2013-02-27 17:13수정 2013-02-28 08:24

표지디자인 이정희 기자 <A href="mailto:bbool@hani.co.kr">bbool@hani.co.kr</A>
표지디자인 이정희 기자 bbool@hani.co.kr
[매거진 esc] 싸는 곳이 아닙니다 사는 곳입니다
하루에도 여러번
들락날락하면서도
무관심한 공간 화장실

냄새 줄이는 연구
화장실문화 개선 위한
세계화장실협회도 있어

안녕하세요. 저는 화장실입니다. 코부터 막고 계신가요? 제가 이렇게 나선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없어서는 안 될 곳이라고 여기면서도 저를 입에 올리기는 거북해하시는, 바로 당신들 때문이지요. 찡그린 얼굴로 저를 찾았다가, 상쾌한 얼굴로 떠나는 당신들은 뒤를 잘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 발길을 막을 이유는 없지만, 항상 무엇인가에 쫓긴 듯 발길을 옮기는 당신들을 보면 쓸쓸한 마음이 드는 저이지요. 하지만 제가 항상 그런 취급만 받는 것은 아니에요. 화장실이 있어서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세계여행을 즐기는 이혜미(33)씨에게 저는 “여행 필수 코스”랍니다. 여행을 하면서 한번도 저를 찾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여행 코스로 여기는 별난 사람은 드물죠. 혜미씨가 저를 여행 필수 코스로 삼기 시작한 데는 한번의 충격적인 사건 때문이었죠. 중국을 여행할 때였다고 해요. “재래식도, 수세식도 아닌 화장실이었어요. 도로를 달리다 휴게실에서 들른 화장실이었는데….”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어른 허벅지 높이 정도의 벽만 있고, 다른 것은 모두다 ‘열린’ 화장실이었죠. 들어서자마자 되돌아 나왔어요. 하지만 화장실을 꼭 가야겠는 상황이어서 다시 들어갔죠. 일을 보면서 주변을 둘러봤어요. 얼굴을 찌푸린 사람은 저밖에 없더라고요. 처음인 저와 일상인 현지인과는 화장실의 필수조건에 대한 기준이 달랐겠죠.” 혜미씨는 다시 차에 올라타 ‘내가 하고 싶은 여행’에 대해 생각해 봤다고 해요. 좋은 식당과 음식, 멋진 경치, 깨끗한 숙소. 혜미씨가 여행 중 바란 것이었죠. “그런데 정작 그 지역과 현지인에 대해서는 선을 그어 놓았더라고요.” 그의 고해성사입니다. 그 뒤 여행길에서 공중화장실, 숙소 화장실 가리지 않고 둘러보기를 겁내지 않는 여행자가 되었죠. “화장실에 전통문화가 남아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이제 드물어요. 어떤 오지를 가도 여행자들을 위한 수세식 화장실은 보편화하고 있으니까요. 화장실 여행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죠.”

디큐브 백화점에 설치된 가족 화장실.
디큐브 백화점에 설치된 가족 화장실.
저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아시나요? 당신이 하루에도 여러번 드나드는 사이, 저의 곳곳을 이용하죠. 변기, 세면기, 샤워기 등등. 이게 없다면 당신들은 저를 찾을 이유도 없죠. 아마 저를 가장 반기는 이유는 변기가 있기 때문일 거예요. 저의 존재이유인 변기. 역시 당신들은 일을 보고 난 뒤에는 가장 멀리하고 싶어하죠. 하지만 여기 “변기는 ‘과학’입니다”라며 변기 연구에 수년을 쏟아오신 분들이 있지요. 유광태 씨엠테크 이사는 2005년 변기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데 연구냐고요? 아닙니다. 냄새를 빨아들이는 변기를 연구한 거죠. 저에게서 냄새난다고, 방향제 많이 갖다 두시죠? 때로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냄새보다 방향제 냄새에 더 숨이 막힌다니까요. 이사님은 방향제가 필요없는 저를 만들기 위해 8년 동안 연구해오셨어요. 전기도, 방향제도 없이 탈취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셨죠. “빠른 속도로 액체를 분사하면 그 주변의 압력이 떨어지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죠. 그러면 변기 악취가 기압 차이에 따라 흡입구로 빨려들어가게 된다”고 이사님은 설명하십니다. 물리학 수업 같은 내용에 잠시 졸 뻔했지만, 냄새나지 않는 저를 위한 변기가 곧 세상에 나온다니 따뜻해지는 날씨가 두렵지 않네요.

씨엠테크의 냄새 없는 좌변기.
씨엠테크의 냄새 없는 좌변기.
연구자, 여행자뿐 아니라 우리들의 협회가 있다는 건 아시나요? 이름하여 세계화장실협회! 2007년 만들어진 단체예요. 깨끗한 공중화장실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나 캠페인 등을 진행하죠. 세계 60여개 나라의 회원국이 가입해 있다죠. 그런데 이 협회는 한국에서 만들어졌답니다. 초대 회장도 한국 사람이었고, 현재 회장도 염태영 수원시장이 맡고 있죠. 앞서 2001년에는 세계화장실기구가 출범하기도 했어요. 저희들의 협회니 기구니 하는 것을 상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하지만 저를 가장 반기는 사람은 따로 있더라고요. 특히 겨울이 되면 바깥에 있는 저를 생존을 위한 터전으로 여기는 분들이 계시죠. 노숙인들이에요. 동파가 되지 않도록 난방을 해놓은 저는 그들에게 한겨울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곤 해요. 하지만 이런 곳은 많지 않죠. 그것도 지난겨울처럼 한파가 극성을 부릴 때는 소용없는 일이지만요. 2호선의 한 역사에서 노숙인들은 막차가 끊기기 전 저를 마지막으로 찾아요.

저를 찾는 사람들은 아마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삶이 편리해지고 변화한다고 해도 인간의 배변활동이 멈춰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 인간들이 저를 평생 찌푸린 얼굴로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화장실 문간에 쓰인 낙서는 짧은 웃음을 줄 수도 있고, 풀리지 않았던 고민이 ‘유레카!’ 외치며 해결될 수도 있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순간을 선물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무슨 그런 대접까지 바라냐고요?

저는 외칩니다. 화장실은 단지 ‘싸는 곳’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요. 싸야지 오롯이 인간답게 살 수 있으니까요. 감정의 배설도 마찬가지예요. 남과 함께할 수 없는 기쁨이나 슬픔을 오롯이 표현하고자 할 때 저를 찾으신 적, 있을 겁니다. 자, 이제 당신에게 다시 묻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장소협찬 디큐브 백화점·모델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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