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소 마니아 장현규(오른쪽), 이승현씨.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곤충세계에서
일가 이룬 마니아들
전국 누비며 신종 발견해
학계 보고하기도 하늘소 마니아 장현규(28), 이승현(25)씨. 하늘소가 뭐가 좋아서 빠져들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난감해했다. “하늘소는 사슴벌레, 장수풍뎅이처럼 모양이 매력적이거나 나비처럼 색깔이 아름답지 않아요. 과수원 나무를 고사시키는 해충으로 방제 대상이기도 하고요. 굳이 말한다면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랄까요?” 5년 전 장수하늘소닷컴 정모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죽이 맞아 전국 팔도를 누볐다. 국내에 서식한다고 알려진 하늘소 300종 가운데 250여종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미기록종도 20여종에 이른다. 최근에는 신종으로 추정되는 4종을 발견했다. 대부분 중부 이북에서 발견한 이것들은 소형인데다 생태가 특이해 그동안 연구자들 사이에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장씨는 생물학과는 무관한 새내기 직장인, 이씨는 대학원 진학을 앞둔 영어·경영 전공자. “답답하죠. 하늘소 연구는 일본의 1970년대보다 못한 느낌입니다. 전문서적도 1983년 <천우지>(이승모)가 고작이죠. 우리처럼 하늘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전국에 10명 미만입니다.” 이들은 한국의 곤충 연구는 일본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아마추어들이 부담없이 관심 분야에 빠져들고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씨와 이씨처럼 남이 알아주든 말든 곤충세계에 빠져 일가를 이룬 고수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것도 인기 없는 하늘소, 잠자리, 메뚜기 등이며 끝 간 데 없는 표본수집 쪽이다. 장씨와 이씨는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든 늪의 무서움을 모르는 새내기들. 곤충을 좋아해 한번쯤 방안에 사육상자를 두었던 수많은 어린이 가운데 호기심과 열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성장한 10% 안팎의 희귀한 존재다. 엄청나게 뿌려진 알 가운데서 부화해 여러 차례 허물을 벗고 탈바꿈(변태) 과정을 거쳐 극소수만이 성충이 되는 곤충의 세계와 정말 흡사하다.
섬유업체인 케이비앤텍스 정광수 이사는 잠자리 마니아.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실력이 인정된 아마추어다. 11년 전 5월 어느 날 떼지어 있는 실잠자리 사진을 찍은 것을 계기로 잠자리 세계에 탐닉했다. 그동안 두점배좀잠자리, 왕등줄실잠자리, 남색이마잠자리 등 3종의 미기록종을 발견했으며 재작년에는 신종을 발견해 ‘한국개미허리왕잠자리’로 이름지었다. 학명에는 ‘잠자리’를 발음 그대로 넣었다. 실잠자리가 몸을 그대로 둔 채 날개를 뒤집어 후진하는 장면을 처음으로 포착해 학계에 보고하기도 했다.
유충의 생김새에서 잠자리의 종을 구분하는 지표를 발견한 것도 큰 성과. 그동안 수염의 개수, 길이 등 전문가가 확대경으로 보아야 구분하던 것을 유충 턱의 길이 등 누구나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는 차이를 발견했다.
그러한 성과를 거두기까지 그는 주말마다 채집을 다녔고, 그동안 표본으로 만든 게 100여상자다. 집에서 넘쳐나 별도 컨테이너박스를 마련해 보관해야 할 정도다. 2007년에는 한국잠자리연구회를 꾸려 연구인력을 묶어내 공동연구의 기틀을 다졌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의 잠자리 생태도감>(2007), <한국 곤충 총목록>(공저, 2010), <한국 잠자리 유충>(2011), <한국의 잠자리 가이드도감>(2012)이 있다. 첫 책인 <한국의 잠자리 생태도감>이 나온 뒤로 ‘주말마다 나가면 어쩌느냐’는 아내의 지청구가 그쳤다고 했다.
“잠자리는 환경지표 구실을 합니다. 유충으로 1~3년 동안 물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서식지 분포를 보고 환경오염 정도를 알 수 있지요. 예컨대 대모잠자리는 작은 웅덩이인 둠벙에 사는데 도시가 팽창하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노란잔산잠자리 유충은 하천 모래톱에 사는데 4대강 사업을 하면서 개체수 변화를 보이고 있어요.”
요즘 그의 관심사는 수서곤충으로 옮겨갔다. 잠자리 유충을 연구하면서 같은 서식지에서 발견되는 또다른 곤충의 존재에 눈을 뜬 것. 물에서 유충기를 거치는 하루살이 성충은 수명이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성충 상태에서 연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메뚜기 박사 김태우씨는 정씨와 조금 다른 경우. 정식으로 과정을 밟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풍뎅이를 전공하는 대학원 지도교수가 딱정벌레를 연구 주제로 삼으라는 것을 고민하다가 남들이 하지 않은 메뚜기를 최종 선택했다. 국내에는 150종이 있는데, 그 가운데 145종을 육안으로 확인했으며 고산지대 산여치, 제주청날개애메뚜기, 한라산 숨은날개털귀뚜라미 등 3가지 신종을 발견했다. 그동안의 성과를 묶어 올 상반기에 메뚜기 도감을 펴낼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국내 일인자가 된 것이다. 메뚜기가 많이 번식하는 해면 어김없이 방송사에서 불러내 코멘트를 요청할 정도다.
회사 다니며
잠자리 연구하는 정광수씨
인쇄소 운영하며
곤충박물관 연 김태완씨
국내외에서 전문가 인정 그는 풀벌레소리도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채집과 표본, 사진 촬영으로 종을 구분하고 생태를 연구하는 그동안 곤충 연구 방식과 달리 소리를 녹음하여 주파수 차이로 발음기관의 상이점을 분별해 종을 구분하는 방식. 산 채로 잡아 사육하면서 음향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외국에서는 오래전 ‘음향분류학’으로 정립되었으나 국내에선 김 박사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메뚜기는 사실 표본으로 만들기가 힘들어요. 껍질이 말랑말랑하고 내장이 많아 자칫 부패해 형태와 색깔이 변하기 쉽거든요. 굳이 그러지 않고도 사육하면서 소리를 중심으로 연구할 수 있어요. 메뚜기를 통해 표본 마니아 위주로 형성된 곤충 연구 풍토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중국에서는 최근 전국적인 메뚜기 분포도를 만드는 등 국가 차원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국내 메뚜기 연구 인력이 10여명에 불과한 현실을 아쉬워했다. 곤충숍을 운영하는 김태완씨는 그의 꿈으로 상호를 지었다. 만천곤충박물관. 인쇄소 운영이 본업인 그는 표본 수집을 위해 곤충숍을 열었다. 14년 동안 외국 곤충표본을 국내에 공급하면서 앞으로 지을 박물관에 전시할 것을 따로 빼두고 있다. “국내 곤충인구는 끽해야 개·고양이 등 애완동물의 5%에 불과해요. 함평 나비축제, 예천 곤충엑스포 등 행사는 보름간 반짝할 뿐이죠. 지속적으로 하는 데는 서울숲, 서울대공원 생태관 정도입니다. 영월 등 몇 군데 민간박물관은 예산이 부족해 내용이 빈약해요.” 국내 채집여행은 주마다 평일 한두 차례, 4~9월 6개월에 걸쳐 전국을 속속들이 체크해가며 훑는다. 그의 내공은 환경부에서도 인정해 조사용역을 맡길 정도. 지난해는 창언조롱박딱정벌레를 보호종으로 지정하는 작업에 참여해 지리산에서 조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국외 채집도 그의 몫인데, 타이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인도를 더텄다. 물론 자비 출장이다. 작년에는 미얀마 직항 첫 비행기를 타고 양곤에 다녀왔다. 시기를 제대로 못 맞춰 허탕을 친 탓에 올해는 다시 미얀마와 필리핀을 갈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열대지방에 비해 곤충 종류가 적어요. 국내종만으로는 박물관을 채울 순 없죠. 전세계에 퍼져 있는 100만종을 모두 수집하려면 3초에 한개씩 모아도 평생이 걸려요.”
정부에서도 늦게나마 곤충에 눈을 뜨고 있다. 고수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이뤄지는 곤충 연구를 묶어내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 2009년 1570억원이던 곤충시장이 2015년에는 2980억원으로 급증할 거라는 예측에서다. 곤충시장의 분야는 학습·애완뿐 아니라 화분매개, 천적 활용 등 다양하다.
2014년까지 경북, 경기, 경남지역 등 세곳에 각각 100억원(국고 50억원, 지방 50억원)을 들여 ‘지역곤충사업화지원센터’를 설립하기로 한 것. 화분매개, 천적, 사료·의약용 곤충 등 세 분야로 특화해 인프라 구축을 지원한다.
천적을 개발하는 경기도에서는 시설원예 진딧물 퇴치용 꼬마남생이무당벌레, 채소·과수의 흰가루병 퇴치용 노랑무당벌레, 하늘소 퇴치용 개미침벌, 깍지벌레 퇴치용 어리풀잠자리 등 천적곤충을 발굴해 국제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이밖에 파주·연천지역 곤충 가운데 28종을 선별해 애완곤충으로 개발함으로써 농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 있다. 대벌레는 올해 안 농가에 분양하고 사육기술을 전수할 계획이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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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 이룬 마니아들
전국 누비며 신종 발견해
학계 보고하기도 하늘소 마니아 장현규(28), 이승현(25)씨. 하늘소가 뭐가 좋아서 빠져들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난감해했다. “하늘소는 사슴벌레, 장수풍뎅이처럼 모양이 매력적이거나 나비처럼 색깔이 아름답지 않아요. 과수원 나무를 고사시키는 해충으로 방제 대상이기도 하고요. 굳이 말한다면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랄까요?” 5년 전 장수하늘소닷컴 정모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죽이 맞아 전국 팔도를 누볐다. 국내에 서식한다고 알려진 하늘소 300종 가운데 250여종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미기록종도 20여종에 이른다. 최근에는 신종으로 추정되는 4종을 발견했다. 대부분 중부 이북에서 발견한 이것들은 소형인데다 생태가 특이해 그동안 연구자들 사이에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장씨는 생물학과는 무관한 새내기 직장인, 이씨는 대학원 진학을 앞둔 영어·경영 전공자. “답답하죠. 하늘소 연구는 일본의 1970년대보다 못한 느낌입니다. 전문서적도 1983년 <천우지>(이승모)가 고작이죠. 우리처럼 하늘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전국에 10명 미만입니다.” 이들은 한국의 곤충 연구는 일본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아마추어들이 부담없이 관심 분야에 빠져들고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잠자리 마니아 정광수씨 사진의 주인공은 늘 잠자리다. 정말 어쩌다 가족이 흐릿하게 잡혔다.
만천곤충박물관 김태완씨.
하늘소 애벌레와 성충.
잠자리 연구하는 정광수씨
인쇄소 운영하며
곤충박물관 연 김태완씨
국내외에서 전문가 인정 그는 풀벌레소리도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채집과 표본, 사진 촬영으로 종을 구분하고 생태를 연구하는 그동안 곤충 연구 방식과 달리 소리를 녹음하여 주파수 차이로 발음기관의 상이점을 분별해 종을 구분하는 방식. 산 채로 잡아 사육하면서 음향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외국에서는 오래전 ‘음향분류학’으로 정립되었으나 국내에선 김 박사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메뚜기는 사실 표본으로 만들기가 힘들어요. 껍질이 말랑말랑하고 내장이 많아 자칫 부패해 형태와 색깔이 변하기 쉽거든요. 굳이 그러지 않고도 사육하면서 소리를 중심으로 연구할 수 있어요. 메뚜기를 통해 표본 마니아 위주로 형성된 곤충 연구 풍토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중국에서는 최근 전국적인 메뚜기 분포도를 만드는 등 국가 차원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국내 메뚜기 연구 인력이 10여명에 불과한 현실을 아쉬워했다. 곤충숍을 운영하는 김태완씨는 그의 꿈으로 상호를 지었다. 만천곤충박물관. 인쇄소 운영이 본업인 그는 표본 수집을 위해 곤충숍을 열었다. 14년 동안 외국 곤충표본을 국내에 공급하면서 앞으로 지을 박물관에 전시할 것을 따로 빼두고 있다. “국내 곤충인구는 끽해야 개·고양이 등 애완동물의 5%에 불과해요. 함평 나비축제, 예천 곤충엑스포 등 행사는 보름간 반짝할 뿐이죠. 지속적으로 하는 데는 서울숲, 서울대공원 생태관 정도입니다. 영월 등 몇 군데 민간박물관은 예산이 부족해 내용이 빈약해요.” 국내 채집여행은 주마다 평일 한두 차례, 4~9월 6개월에 걸쳐 전국을 속속들이 체크해가며 훑는다. 그의 내공은 환경부에서도 인정해 조사용역을 맡길 정도. 지난해는 창언조롱박딱정벌레를 보호종으로 지정하는 작업에 참여해 지리산에서 조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국외 채집도 그의 몫인데, 타이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인도를 더텄다. 물론 자비 출장이다. 작년에는 미얀마 직항 첫 비행기를 타고 양곤에 다녀왔다. 시기를 제대로 못 맞춰 허탕을 친 탓에 올해는 다시 미얀마와 필리핀을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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