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
펀 마케팅 일환으로
쏘맥자격증 부여
자타공인 애주가들에게 제공
자격증 취득하면
다양한 제조잔 제공
술자리에서 꺼내면 웃음 터지는
어른들의 장난감 출판편집인이자 미술평론가인 손철주씨는 애주가다. 그는 술자리가 어색해지면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처방전이다.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 내민다. 납작한 물건이다. 한손에 쏙 들어온다. 가볍다. 언뜻 보면 속으로 ‘왜 주민등록증을 꺼내는 거지, 운전면허증인가, 신용카드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재질은 플라스틱, 길이는 가로 8.5㎝, 세로 5.5㎝ 인 카드다. 뒷장에는 ‘쏘맥제조 시 본 자격증을 휴대하여야 하며, 금주 시 반납하여야 함’을 포함한 5가지 유의사항이 있다. 이름하여 ‘쏘맥자격증’.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평범한 술인 ‘소맥폭탄주’에 무슨 자격증? 마치 주민등록증처럼 사진이 있고, 발행기관, 발행일자, ‘쏘맥자격증을 취득하였음을 증명함’이란 글귀가 있는 이 자격증의 위력은 세다. 술자리는 금세 박장대소가 터지고 “자격증 가진 사람이 한번 타봐라, 맛이 어떤지 좀 보자” 소리가 이어진다. 유쾌한 술자리가 된다. ‘소맥 외길’을 살아온 술꾼들이 만세 삼창할 자격증의 탄생이다.
쏘맥자격증은 지난해 초 하이트진로가 마케팅의 일환으로 만들었다. 소주와 맥주 모두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라 가능했다. 하이트진로 신은주 마케팅 상무는 “술을 많이 마시자는 게 아니다. 즐겁게 마시는 문화를 만들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우리네 폭탄주 문화에 ‘펀(fun) 문화’를 도입한 것이다. 자고로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는 뒷담화, 애정사 다음으로 술이다. ‘쏘맥자격증’은 갈비뼈 사이로 허무와 개그가 교차하는 얘깃거리를 제공한다.
자격증을 만들 정도로 지독하게 폭탄주를 사랑하는 우리, 하지만 우리가 처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음식평론가 김학민씨의 <태초의 술에 있었네>에서 그 유래를 추측할 수 있다. 폭탄주는 20세기 초 가난한 미국의 부두노동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빨리 취하기 위해 싼 위스키와 맥주를 섞었다는 설과 러시아 벌목공들이 시베리아 추위를 이기기 위해 보드카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는 설, 2가지란다. 여기에다 미국의 한 술집 주인이 손님이 남긴 위스키와 맥주가 아까워서 마셨다는 설까지 보태면 3가지다.
1970~80년대 우리 폭탄주도 양주와 맥주가 재료였다. 주로 검찰, 경찰, 정치인, 기자 등이 애용하다가 기업 간부, 관료 등도 마시게 됐다. 점차 폭탄주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양주 대신 소주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김학민씨는 그의 저서에서 군인들이나 정치인들이 폭탄주로 벌인 크고 작은 사고를 목도한 이들이 슬그머니 폭탄주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요즘 20~30대 젊은 애주가들의 이유는 다르다. 15년 음주 경력의 한 30대 대기업 부장은 “요즘 기업들은 회식을 길게 안 해요. 1차에 끝나는 경우가 많죠. 빨리 취하고 가자는 건데, 폭탄주가 적당해요”라고 말한다. 그는 맛도 한 이유라고 꼽는다. “소주는 너무 독하고 맥주는 ‘원 샷’ 하려면 탄산이 걸려요. (소맥은) 목 넘김이 좋고 부드러워요.” 우리네 안주 문화와 연결 지어 이유를 찾는 이도 있다. 하이트진로 주류개발1팀 명기현 팀장은 “미국이나 유럽은 안주를 안 먹고 술 자체의 풍미를 즐기기에 도수가 높은 편이고, 우리는 안주를 즐겨 도수가 낮은 술을 찾죠”라고 말한다.
실제 폭탄주는 고속철도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를 빠르게 알코올의 몽환의 세계에 빠지게 한다. 다사랑중앙병원 정용준 원장은 “맥주의 탄산가스가 체내 알코올 흡수를 촉진시킵니다. 체내 알코올 흡수에 적당한 도수는 보통 10~14도이죠. 폭탄주가 그 범위에 있어요. 천천히 급하지 않게 마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쏘맥자격증’이 만든 에피소드는 다채롭다. 한 대기업 임원은 외국인 바이어 앞에서 이 자격증을 내밀자 마치 저명한 와인 소믈리에를 만난 것처럼 존경의 눈빛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정성스럽게 맥주와 소주의 양을 조절해 타 주자 두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마시더란다. 마치 와인 시음회를 하는 것처럼.
발급 날짜를 가지고 다투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발급 날짜가 더 이전인 이가 농담 삼아 “나는 시험 쳐서 받았어”라고 툭 던지면서 술자리를 휘어잡았다. “어른들의 장난감”인 셈이다. 이용철 야구해설위원도 맥주 반잔에 소주잔의 4분의 1 양의 소주를 타고 얼음을 넣어 젓는 방법을 주력 20년 경력의 신은주 상무에게 보여줬다가 쏘맥자격증을 받았다. “술자리에서 공인자격증 있다고 하니 바로 병권(소맥 제조 권한)을 주더이다.”
쏘맥자격증을 타려면 몇 가지 소양이 필요하다. 신은주 상무는 “주량은 한자리에서 소주 2병, 맥주 5병은 마시는가, 1주일에 1~2번 정도 음주 자리가 있는가, 본인이 음주 문화를 유쾌하게 주도하는가”가 기준이라고 말한다. 초창기에는 자사 페이스북의 퀴즈를 푼 이들과 소맥레시피 공모전에 당선된 이들, 주류 파워블로거들, 연예인들, 직원들이 인정한 유쾌한 술꾼들, 판매실적이 우수한 지방의 점주들 등에게 발급했다. 현재 3만5000장이 발급된 상태. 지난해 하반기 디자인에 펄이 들어가고 은색 글자가 반짝거리는 플래티넘 카드와 기존에 발급했던 일반 카드, 2종류로 나눴다. 플래티넘 카드는 약 1000장 발급됐다. 일반 신용카드가 한장당 재료비가 약 1000원인데 쏘맥자격증은 약 3000원이 든다. 소량주문생산이기 때문이다.
쏘맥자격증을 받는 이들은 카드와 함께 전용 잔을 받는다. 총 4종류의 잔이 든 상자에는 ‘가훈 쏘맥은 쏘맥잔에’,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아껴둔 쏘맥잔을 꺼낼만하지 아니한가’, ‘뼈대있는 우리집은 아무잔에나 쏘맥을 말지 않나니…’ 등의 재치있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전용 잔은 총 6가지. 취기를 따져 ‘거의 사람이주’, ‘아직은 사람이주’, ‘사람이 아니주’ 등의 글자를 넣은 ‘진화론’ 잔과 직급에 따라 소주와 맥주의 양을 달리한 잔, 배율에 따라 다른 도수를 표시한 잔 등이다. 도수는 하이트진로연구소에서 실험을 통해 도출했다. 6.2~14.1도까지 총 5가지. 하이트진로 주류개발2팀 정성훈 차장은 “일반인과 연구원들 조사에 기초해 맛있는 총량을 167㎖로 정했죠. 배율을 소주 20, 40, 60, 85, 110㎖에 맥주를 147, 127, 107, 82, 57㎖로 해서 알코올 도수를 뽑았습니다”라고 한다. 40:127(소주:맥주) 배율이 맛이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술의 양과 도수만 알면 내가 마시는 폭탄주의 도수를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4.5도인 맥주가 147㎖, 19도인 소주가 20㎖일 때, 147×0.045(도수×100)와 20×0.19를 더한 뒤에 전체 양인 167로 나눈다. 그 수치에 100을 곱하면 바로 알코올 도수 6.2도가 나온다.
신 상무는 “술도 음식이라는 생각에 양을 조절해서 새로운 맛을 창조하자”는 생각에 소맥 전용 잔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근 가수 싸이는 발급받은 쏘맥자격증을 미투데이에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윤경민 마케팅팀파트장은 ″곧 일반인 대상 이벤트를 열 계획인데 응모하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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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주식회사에서 만든 소맥전용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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