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공연 연습장에 번개로 모인 이호재와 빨간소주.
[매거진 esc] 라이프
“어떤 부부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어. 그런데 호텔에서 아내가 죽었다네. 현지에서 화장하면 5만달러, 한국으로 가면 200만달러라는 거야. 남편 말이 데려가겠다는 거야. 웬만하면 거기서 끝낼 터인데…, 부부애가 대단하구나, 사람들은 감동했지. 그런데, 남편 왈. ‘이곳은 예수가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한 땅이다. 어떻게 이런 나라에서 장례를 치르겠나’라는 거야. 하하.”
연극배우 이호재팬클럽 빨간소주
연극인들 주도해 2000년 결성 연극인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원로 연극배우 이호재(72)씨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합석한 의상디자이너 이승무(63)씨가 이어달렸다. “2층에 부부가 살았는데, 와이프가 죽었대요. 그냥 집에서 장례를 하기로 하고 입관했지요. 발인하는 날,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운구를 해야 하는데, 남편이 관이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더래요. 사람들은 얼마나 와이프를 사랑하면 죽어서도 그러냐, 감동 먹었지요. 근데, 알고 보니 행여 깨어나면 어쩌나 걱정 때문이었다나요.” 그는 말끝에 “선생님의 말씀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워낙 박식하셔서 으레 진짜라고 생각하지만 문장 중에 숫자가 나오면 안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승무씨는 이호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빨간소주’ 회장이다. 빨간소주는 굳이 말하면 이호재 팬클럽이고, 두 사람은 스타와 팬 관계일 터인데, 주거니 받거니 오가는 말이 수상쩍을 정도로 이물없다. 애초 이름부터 이상하거니와 젊고, 탱탱하고, 팔팔한 아이돌도 아니고 늙은이들 사이에 웬 팬클럽이란 말인가. 빨간소주는 2000년 이호재가 출연한 <불 좀 꺼주세요>(이만희 작, 황인뢰 연출) 공연을 계기로 결성됐다. <불 좀 꺼주세요>를 기획한 정혜영씨가 주축이 되어 공연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 10여명으로 출발했다. 13년이 지난 현재 회원은 18명에 명예회원 8명을 합치면 26명에 이른다.
수가 많기론 단연 배우들. 김재건, 장연익, 전진기, 강신구, 김연재, 장설하, 장혁진, 김바다, 김성민, 김대령(이상 회원), 윤소정, 송도순, 이명호, 정원중(이상 명예회원). 배우 외에 의상디자이너(이승무), 프로듀서(황인뢰, 최영화, 권은아, 이희경, 오호진, 김옥진, 김승미), 기획(정혜영), 조명(신호), 번역(성수정), 교사(김수희), 사진작가(이도희)를 아우르며 30대에서 70대까지 걸쳐 있어, 극단을 꾸려도 손색이 없다.
사실은, 진짜로 극단을 꾸리고 있다. ‘컬티즌’(대표 정혜영)이 그것인데, 빨간소주 출범 3년째인 2003년 결성됐다. 10명의 극단 멤버는 빨간소주와 100% 겹친다. 빨간소주를 둘러치면 컬티즌, 컬티즌을 메치면 빨간소주다. 대학로 ‘학전블루’ 2층에 자리잡은 극단 사무실은 빨간소주 간판도 함께 달았다. 컬티즌은 해마다 거르지 않고 이호재를 위한 연극 한편씩을 상연해왔는데,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졸업>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 <넘버> <언덕을 넘어서 가자> <쿠크 박사의 정원> <뱃사람> <그대를 속일지라도> <응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등 10편이 그것이다. 올해는 <채권자들>을 준비하고 있다. 멤버들은 이호재와 함께 무대에 선다면 단역도 마다않고, 거기에 자기 몫이 돌아오지 않으면 표를 팔고, 프로그램을 돌리는 허드렛일도 기꺼워한다.
연극계에 전무송(불자, 다도인), 박정자(꽃봉지), 유인촌(디딤돌) 등 나이든 배우를 위한 팬클럽이 있다. 빨간소주가 7080스러운 점에서 이들 클럽과 비슷하지만 일반인이 아닌 연극계 사람들로만 이뤄진 점에서 크게 다르다. 빨간소주가 스타 이호재의 생일에 촛불을 불어 끄고 박수 치는 행사에 그치지 않고 해마다 머리를 맞대어 이호재에게 맞춤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그래서 가능하다. 공연은 일종의 축제. 낮 공연이 끝나고 저녁에 벌어지는 술자리는 2부 축제가 된다.
빨간소주 이름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호재는 빨간 뚜껑의, 25도짜리 소주를 즐겨 마셨고, 당연히 클럽 모임에서는 빨간 소주를 각 한병씩 돌렸던 것. 그러니까 빨간 소주는 이호재와 이호재를 사랑하는 사람들, 나아가 연극인과 동격이다. 한병이면 적당히 취할 수 있어 가난한 연극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10년이 흐르면서 소주는 젊은이를 겨냥해 돌려 따기 19~20도짜리 술을 내놓았고, 뚜껑을 딸 때 뻥 소리가 나는, 25도 소주는 단종돼 골동품이 됐다. 몇 해 전 어떤 회원은 지방을 다니다 동네 슈퍼에서 빨간 소주를 만나, 웬일이니, 거둬들여 진상한 일이 있다고 한다. 빨간소주 역시 연극계에 이례적으로 존재하는 골동품이 됐다. 비유하면 빨간소주는 연극이라는 기초, 이호재라는 기둥, 개별 벽돌을 이어붙이는 모르타르(술)까지 갖춘 건축물이랄까.
극단 컬티즌도 결성
해마다 이호재 헌정공연도
술자리 함께하며
친구처럼 나이들어가 “이호재는 전무송과 함께 1960년대부터 연극계를 주름잡아온 전설입니다. 연극계 후배들은 전설 속 선배와 함께 공연하는 것은 물론 같은 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행복이죠. 술 한잔까지 같이 하면서 한마디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요.” 이승무 회장은 이호재가 출연하는 공연의 의상을 전담하고 있기도 하다. 정혜영 간사는 “처음에는 배우 이호재가 좋아서 만나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아버지와 아들딸처럼 무척 편한 관계가 되었다”고 했다. 회원 강신구(배우)씨는 “학생 때부터 선생님은 나의 꿈이었다”며 “지금도 무대에서 극중 인물에 완전히 빙의한 선생님을 보면서 늘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를 위해 <넘버> <뱃사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채권자들>을 번역한 성수정씨는 “좋은 새 작품을 보면 선생님이 떠오르고 이호재라면 어떻게 형상화할까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호재와 연극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걸까. “연극하는 사람은 잘 잊어야 해요. 비우면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거든요. 무슨 말인고 하니, 대본을 보면 각자의 버전이 생기죠. 하지만 각자 그것을 고집하면 충돌하지요. 싸워서 될 일도 아니고 절충할 것은 절충해야 하는데, 내 것을 잊어야 가능하지요. 취하면 잊는다는 점에서 술은 연극에 도움이 되지요.” 이호재의 독특한 음주론이다. 그의 이론에 동조하는 빨간소주는 번개를 자주 치고 대학로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나 어쩐다나.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사진제공 컬티즌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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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들 주도해 2000년 결성 연극인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원로 연극배우 이호재(72)씨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합석한 의상디자이너 이승무(63)씨가 이어달렸다. “2층에 부부가 살았는데, 와이프가 죽었대요. 그냥 집에서 장례를 하기로 하고 입관했지요. 발인하는 날,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운구를 해야 하는데, 남편이 관이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더래요. 사람들은 얼마나 와이프를 사랑하면 죽어서도 그러냐, 감동 먹었지요. 근데, 알고 보니 행여 깨어나면 어쩌나 걱정 때문이었다나요.” 그는 말끝에 “선생님의 말씀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워낙 박식하셔서 으레 진짜라고 생각하지만 문장 중에 숫자가 나오면 안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승무씨는 이호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빨간소주’ 회장이다. 빨간소주는 굳이 말하면 이호재 팬클럽이고, 두 사람은 스타와 팬 관계일 터인데, 주거니 받거니 오가는 말이 수상쩍을 정도로 이물없다. 애초 이름부터 이상하거니와 젊고, 탱탱하고, 팔팔한 아이돌도 아니고 늙은이들 사이에 웬 팬클럽이란 말인가. 빨간소주는 2000년 이호재가 출연한 <불 좀 꺼주세요>(이만희 작, 황인뢰 연출) 공연을 계기로 결성됐다. <불 좀 꺼주세요>를 기획한 정혜영씨가 주축이 되어 공연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 10여명으로 출발했다. 13년이 지난 현재 회원은 18명에 명예회원 8명을 합치면 26명에 이른다.
뒤풀이 주종은 소주다.
3. 2004년 빨간소주 사무실에서. 4. 2003년 컬티즌 창단 기념 <졸업> 공연 뒤.
해마다 이호재 헌정공연도
술자리 함께하며
친구처럼 나이들어가 “이호재는 전무송과 함께 1960년대부터 연극계를 주름잡아온 전설입니다. 연극계 후배들은 전설 속 선배와 함께 공연하는 것은 물론 같은 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행복이죠. 술 한잔까지 같이 하면서 한마디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요.” 이승무 회장은 이호재가 출연하는 공연의 의상을 전담하고 있기도 하다. 정혜영 간사는 “처음에는 배우 이호재가 좋아서 만나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아버지와 아들딸처럼 무척 편한 관계가 되었다”고 했다. 회원 강신구(배우)씨는 “학생 때부터 선생님은 나의 꿈이었다”며 “지금도 무대에서 극중 인물에 완전히 빙의한 선생님을 보면서 늘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를 위해 <넘버> <뱃사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채권자들>을 번역한 성수정씨는 “좋은 새 작품을 보면 선생님이 떠오르고 이호재라면 어떻게 형상화할까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호재와 연극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걸까. “연극하는 사람은 잘 잊어야 해요. 비우면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거든요. 무슨 말인고 하니, 대본을 보면 각자의 버전이 생기죠. 하지만 각자 그것을 고집하면 충돌하지요. 싸워서 될 일도 아니고 절충할 것은 절충해야 하는데, 내 것을 잊어야 가능하지요. 취하면 잊는다는 점에서 술은 연극에 도움이 되지요.” 이호재의 독특한 음주론이다. 그의 이론에 동조하는 빨간소주는 번개를 자주 치고 대학로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나 어쩐다나.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사진제공 컬티즌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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