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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의 최전선, 30·40대의 놀이터에 가다

등록 2012-12-05 18:39수정 2012-12-08 13:30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40대 기자 요즘 가장 ‘핫’한 라운지 클럽 이태원 ‘글램라운지’에 가봤더니
“우리 글램 가볼까? 요새 글램이 젤 잘나간다는데.” 몇달 전 또래 여성 취재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누군가 이태원 ‘글램’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최고의 ‘핫 플레이스’라는 라운지 클럽이란다. 제일 잘나가는 곳인데 주 고객층은 20대가 아니라 30~40대 직장인들이란다. 아는 척하느라 이렇게 대꾸했다. “밤과음악사이 같은 곳인가?” ‘이 언니 왜 이래?’라는 반응이 느껴졌다. 물론 그날 우리는 글램에 가지 않았다. 예약을 안 하면 못 간다는 현실적 장벽 외에 복장 등 준비 부족을 내세우는, 사실은 괜스레 바짝 긴장한 반대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디스트릭트라고 부르는 글램(2층) 외부건물 전경. 글램라운지 제공
디스트릭트라고 부르는 글램(2층) 외부건물 전경. 글램라운지 제공
8시 넘으면 꽉 차는 테이블
12월 예약 이미 끝나
양복 입은 30~40대가 주류

그러고 몇주 전. 장안의 잘나간다는 클럽을 꽉 꿰고 있는 이정연 기자가 곁으로 와서 넌지시 말 걸었다. “선배, 글램 가실래요? 40대 기자의 체험기로 기사 한번 써보시죠.” 흥, 자기도 이제 30대인 주제에~ “언제, 언제?” 순전히 기자의 호기심인 거다. 생활섹션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이 정도 트렌드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겠음? 반짝이 드레스라도 준비해야 하는 건가? 디데이 전날 대학생 조카의 미니드레스를 입어보고는 거울 앞에서 세월의 상흔만을 확인했다는 사실은 패스. 최대한 ‘묻히는’ 블랙 톤으로 착장한 채 11월29일 저녁 ‘글램’으로 향했다. 옆에는 이 기자와 나름 선별해 섭외한 30대 후반의 남자 동료 2명을 대동했다.

8:30 PM 오며 가며 ‘이건 뭐?’ 궁금증을 자아냈던 해밀턴호텔 뒤편, 벽돌로 외관을 장식한 웅장한 건물에 당도했다. 1층은 술과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프로스트’가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글램과 본격적인 클럽인 ‘뮤트’의 입구가 마주 보고 있다. 글램의 정식명칭은 글램라운지. 일종의 고급스러운 술집으로 세련된 분위기에 대체로 어색해하다가 기죽어 나온다는, 요즘 유행하는 라운지 바다. 입구에 민소매나 슬리퍼류의 복장 제한 문구가 있긴 하지만 우려했던 것처럼 ‘물관리’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7시로 예약을 했다가 우리밖에 없으면 어쩌나 시간을 미뤘는데 웬걸. 자리의 80%는 차 있다. 길고 널찍한 공간 양쪽은 소파나 스툴이 있는 테이블이 채우고, 가운데는 널찍한 사각의 바가 있다. 바와 한쪽 테이블 사이에는 서서 마실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일렬로 서 있다.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예약제인데 이미 12월 예약이 다 끝났단다. 앤티크 스타일의 조명과 철제 장식으로 채운 높은 천장이 화려하면서도 과한 느낌은 아니다.

자리를 잡은 다음 술잔을 든 채 투어에 나섰다. 이미 거의 찬 테이블에는 양복을 갖춰입거나 살짝 넥타이를 푼 30~40대 남성들이 많이 눈에 띈다. 어?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같은 부서 후배가 넥타이 맨 친구들과 앉아 있다. “오~ 이런 데서 놀고 다니는구나?” 아는 체를 했더니 친구 따라 처음 와봤다는데 평소와 다르게 아주 얼굴이 폈구나, 폈어.

10:00 PM 테이블은 찼건만 들어오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아졌다. 반짝이 드레스도 종종 눈에 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렉트로닉 라운지 음악에 비트가 더해진다. 점잖던 사람들의 표정도 느슨하게 흐트러진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꽉 찬 바와 테이블 옆 통로에 자리를 잡는다. 말이 통로지, 이곳의 통로는 테이블보다 더 흥겨운 ‘메인 테이블’이다. 통로 옆에는 술잔을 올릴 수 있는 거치대가 놓여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바에 가서 칵테일이나 맥주를 주문해 통로에 서서 마신다.

다시 투어에 나섰다. 비좁아진 통로를 지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옆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히고 가벼운 인사는 가벼운 대화로 이어진다. 테이블들에는 보드카와 샴페인 병이 주로 눈에 띈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니 꿀벌과 나비들의 작업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삼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넷이 앉아 있던 테이블에서 한명이 일어나더니 바 쪽으로 가서 여자에게 말을 건다. 작업멘트가 뭐였을까? 여성 셋이 테이블로 가서 합석을 한다. 누군가 “저는 인턴이구요, 이 친구들은” 소개를 하는데 음악에 말소리가 묻힌다. 여성들끼리 모여 있는 한쪽 테이블에서도 “샴페인 한병 하실래요?” 하며 슬쩍 자리에 앉는 남자들이 보인다. 그래, 다리가 아플 때도 됐지. 40대 남녀 직장인들이 회식을 온 것처럼 보이는 앞쪽 브이아이피석 테이블에는 내기에서 졌는지 한 여성이 의자에 올라가 쑥스러운 듯 몸을 흔든다.

다양한 종류의 칵테일은 글램의 인기메뉴다.
다양한 종류의 칵테일은 글램의 인기메뉴다.
“호텔이나 강남 클럽보다
저렴하면서 호텔 같은 분위기
세련되고 자유로워서 좋아요”

12:00 AM 글램의 피크 타임. 통로 쪽은 움직일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꽉 찼다. 쿵쿵 음악소리는 피부가 살짝 떨릴 정도로 울리고 적당히 흔들던 사람들의 어깻짓도 커졌다. 여기저기서 흥을 돋우는 “꺄아~” 소리도 들린다. 남녀의 비율은 얼추 7 대 3 정도. 시간이 지날수록 외국인도 많아지고, 다른 곳에서 이미 1차나 2차를 하고 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늘었다. 외국 여행자들에게도 유명한지 일본어를 하는 중년 여성들도 눈에 띈다. 분위기로 봐서는 디제이가 지금쯤 ‘강남스타일’을 외칠 만도 한데 말이지….

다시 한번 술잔을 들고 나갔다. 어깨를 부딪히며 모두가 ‘위 아더 월드’를 외치는 분위기라는데 나만 공주처럼 테이블에 앉아 있을 수는 없잖은가. 긴 생머리 휘날리는 이정연 기자를 바람막이 삼았다. 드디어! 나에게도(사실은 이 기자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한국에 여행온 뉴요커 셰프 친구와 놀러왔다는 직장인. 그런데 소개를 하다보니 동종업계였다. 내 참, 서로에게 미안한 이 느낌은 뭐지?

후배를 이곳에 안내했다는, 글램을 좋아한다는 후배 친구에게 물었다. 올해 서른아홉의 직장인이 글램을 찾는 이유는 이랬다. “강남의 클럽이나 호텔보다는 술값이 싸고, 분위기는 호텔처럼 고급스러워요. 좀 자유롭고 가끔 합석을 해도 룸처럼 닫힌 공간이 아니니까 편하게 이야기하고,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남자 다섯명이 어울린 이날 그들은 진 한병과 와인 두병, 안주 두개를 시켜 30만원대의 비용을 나눠 계산했다.

01:40 AM 불타는 글램의 목요일 밤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평소 4시까지 영업을 하는데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가 정점이란다. 사람들의 표정은 더 느슨해지고 비트는 여전히 쿵쿵 울리지만 마흔살의 기력은 급강하하기 시작한다. 이 순간 울리는 전화. 화장실로 황급히 달려갔다. 홍대 앞 클럽과 달리 이 시간에도 반질반질 쾌적한 화장실이 경제력 있는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려준다. “여보세요?” “미친 거니? 어디니? 애 걱정은 안드로메다에 날려버린 거냐?” 그래, 아줌마 퇴청시간 넘었다. 사실 완전히 빠져들 만큼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웠고 나름 뿌듯하기까지 했다. 40대로서 40대가 유행의 첨단에 선다는 건 어쨌든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매력적인 현상임에는 틀림없으므로.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글램라운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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