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맛있는 이야기 폴폴 풍기는 도시 장터

등록 2012-11-21 18:06수정 2012-11-22 14:10

11월 초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앞에서 열린 ‘마르쉐@혜화’ 장터.
11월 초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앞에서 열린 ‘마르쉐@혜화’ 장터.
[매거진 esc] 스타일
디자인적 감각과 생태적 가치가 결합한 ‘마르쉐@혜화’…도시의 새로운 장터 풍경 흥미진진
은행잎이 비처럼 흩날리던 11월 초 청명한 가을 아침,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앞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 장터가 한창이었다. 직접 기른 농산물들과 올바른 방식으로 요리한 다양한 음식들이 도시인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바로 마르쉐@혜화의 두번째 장터가 열리던 날. 하늘을 가르며 세워진 노란색과 파란색의 가림막들은 마르쉐@혜화를 상징하는 또다른 로고이기도 했다.

마르쉐@혜화는 건강한 먹을거리, 소규모 직접생산을 통해 자립의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응원하는 도시 장터이다. 시장, 장터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marche’에 장소 앞에 붙는 전치사 at(@)을 사용하여, 어디든 장터를 열고 만들 수 있다는 뜻으로 마르쉐@○○○로 불린다. 지금은 혜화동에서 열리고 있어 ‘마르쉐@혜화’이지만 이후 어디든 뒷자리를 바꿔가며 도시 장터를 열 수 있게 진화할 예정이다.

장터에 나온 유기농 채소.
장터에 나온 유기농 채소.
소규모 직접생산 통해
자립의 삶 꿈꾸는
젊은이들 응원하는 장터

처음 이 장터를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인생사용법’ 전시에서였다. 첫번째 전시공간에 마련된 <우연한 공동체> 파트에는 김수향, 길종상가, 노네임노샵, 더북소사이어티 등이 참여하여 소규모 단위의 공동체 활동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가닉 카페 수카라 대표이자 세계 로컬시장 마니아인 김수향씨의 <나의 시장 만들기>였다.

그가 직접 일본어로 녹음한 내레이션과 함께 한 짧은 영상 안에는 원전 사고 이후의 두려움(원전 사고 당시 그는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가치를 찾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내가 구입하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의 생산, 유통 과정을 알고 소비하고 싶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이후 그녀는 십년후연구소 대표인 송성희씨, 문래·홍대옥상텃밭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보은씨와 함께 마르쉐를 기획하게 된다. 손님의 눈으로 보고 자신이 기르고 만든 제품을 당당하게 건넬 수 있는 도시 장터. 그것이 마르쉐의 시작점이었다.

전시에서는 도시농부와 핸드메이드 작가들, 올바르고 투명하게 재배된 농작물과 음식, 그리고 사람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공동체 ‘마르쉐’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만난 공동체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의미도 좋았지만, 함께 전시되어 있던 각양각색의 병절임 채소들, 도시농부들의 재미있는 프로필 소개에 한참이나 시선을 빼앗겼던 기억이 있다.

서교동 누군가의 옥상에서 채소들이 자라고 부암동 어귀에서 벼가 자라난다. 소박하지만 정직하게 자라난 채소들이 마르쉐@혜화라는 작은 시장을 통해 서울의 시민과 공유되고 있다. 두번째 열렸던 11월의 마르쉐@혜화에서는 홍대텃밭다리와 문래도시텃밭, 암사동, 성북동과 부암동, 노원, 노들섬의 도시농부들이 생산한 각종 채소를 비롯하여 광명, 김포, 과천, 용인, 일산 등 수도권 지역에서 생산된 계절 채소와 유정란, 텃밭 채소 등 각종 먹을거리가 서울 로컬푸드의 맛을 전했다. 농부와 요리사 파트 외에도 직접 바느질하고 핸드메이드로 완성된 공예품들을 만날 수 있는 아티스트 파트가 함께한다. 재미있는 것은 장터에 참여하는 농부, 요리사들의 대부분이 디자인이나 예술 등의 장르에 배경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디자인적인 감각과 생태적 가치의 중요성이 결합해 삶의 또다른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초콜릿잼이 장터를 찾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초콜릿잼이 장터를 찾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조립식 판매대 키트
일회용품 안쓰는 음식 등
진화하는 장마당 눈길

참여한 팀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파릇한절믄이’(나혜란)에서는 파절이 고구마로 만든 파블리크빵을, ‘암사동짚달걀’(김의숙)에서는 짚달걀, 마늘고추장, 말린 나물, 푸성귀, 비즈 액세서리 등을 판매했으며 ‘레슈바빈’(박미진&시릴)에서는 발라 먹는 초콜릿, 유럽 채소 병절임, 브라우니와 사과케이크, 바질주스, 유럽 채소 등을 선보였다. ‘다정한 영자씨의 무우’(김성은)에서는 배추, 무, 3년 묵은 된장과 국간장 등을 팔았으며, 얼마 전 디자인 칼럼에 소개했던 ‘파머스파티’ 사과도 많은 사람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ㅂㅂㄹㄷ’(하미현)에서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찰음식 핑거푸드를 내놓아 인기를 얻었고 ‘Dancing Drops’(전은하&Frantisek)에서는 발효음료와 헝가리 음식인 굴라시(구야시: 수프)를 내놓아 뜨끈한 행복을 전했다.

이외에 ‘cafe EAT’(이지희, 이인숙)에서는 애플사이다, 뿌리채소 병절임, 장아찌, 생강시럽 병절임, 단호박수프&치아바타(차바타), 파운드케이크를, ‘굿핸즈굿마인드’(조남룡)에서는 나무소품, 치즈도마, 나무접시 등을 판매하며 마르쉐 장터에 활기를 더했다.

도시형 장터는 서울에서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마르쉐 이외에도 달시장, 서울 농부의 시장 등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접 만나는 장터는 점차 확장되고 있다. 사회적 기업과 함께하는 영등포구의 ‘달시장’(dalsijang.kr)은 유기농 농산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품들까지 파는 아트마켓, 벼룩시장 등으로 진행된다.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리는 서울 농부의 시장(seoulfarmersmarket.com)은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으로 도시농부들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마르쉐에는 다른 장터와 차별화되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첫번째는 조립식 형태로 장을 열 수 있게 제작된 ‘마르쉐@ 키트’다. 재능기부로 참여한 디자인그룹 노네임노샵은 전통시장에서 모티브를 얻어 판매대, 불자리, 물자리 등을 디자인했다.

빈티지풍의 찻잔을 가지고 나온 이들도 있다.
빈티지풍의 찻잔을 가지고 나온 이들도 있다.
특히 크기가 제각각인 채반으로 도시텃밭 작물 매대를 만들어 리드미컬한 공간의 흐름을 만들었다. 받침대의 높이도 다 달라 입점자의 의도에 맞게 매대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아직 두번째 장터라 마르쉐 키트는 계속 조금씩 보완될 예정이다. 재래시장만의 특징을 반영해 좌식의 매대를 함께 사용해보는 것 등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1톤트럭 안에 키트가 조립되어 들어가 이동이 편리하고 어디서든 손쉽게 장터를 열 수 있다는 점이다. 향후에는 누구나, 어디서든 장터를 열 수 있도록 키트를 대여할 방침이다.

두번째 특징은 일회용 제품이 없다는 점이다. 직접 재배한 농산물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난 재료를 이용해 건강하고 소박하게 차려낸 요리사들의 음식이 마르쉐 장터의 매력 중 하나. 이들의 요리를 주문하면 그릇과 젓가락에 대한 보증금을 내고 음식을 받게 된다. 이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형식이다. 일회용품이 없기 때문에 수돗가가 아닌 곳에서도 설거지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개수대가 마련되어 있다.

세번째 특징은 마르쉐를 기획하는 세명이 입점할 농부, 요리사, 아티스트들을 일일이 만나본다는 점이다. 단순히 사고파는 마켓의 플랫폼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입점자들이 얼마만큼 진정성을 가졌는지를 사전에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입점자 수도 제한하고 있다. 상품의 질이나 진정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몸집만 비대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이 세명에게 마르쉐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마르쉐 안에서 판매되는 채소들처럼 느리지만 정직하게,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그렇게 마르쉐는 성장하고 있다.

네번째 마르쉐 장터의 특징은 다양한 부대행사들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의 속성 외에도 싱어송라이터의 공연, 농부, 요리사들과 함께 나누는 ‘맛있는 토크’ 등이 마르쉐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또한 판매자들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대화들이 오간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 재료가 어떤 과정과 정성을 거쳐 생산되었는지 설명해주는 농부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 속에서 소비자는 건강한 식재료와 함께 대형마트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신뢰와 투명성을 함께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다가오는 12월8일에는 세번째 마르쉐@혜화가 열린다. 이번에는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내 필룩스 스페이스 공간과 테라스에서 장터가 열릴 예정이다. 날씨가 쌀쌀해짐에 따라 내년 4월까지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실내공간에서 열리게 된다고. 맛있는 이야기가 폴폴 풍기는 도시 장터를 거닐다 보면 왠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누리집(www.marcheat.net)을 통해 판매자들을 살펴보고 미리 구매 리스트를 정하는 것이 좋을 듯. 튼실해 보이는 싱싱한 채소들과 달걀, 고춧가루마저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마르쉐에서는 충동구매의 지름신이 강림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 일회용품 없는 마르쉐의 콘셉트에 동참하는 의미로 미리 장바구니를 챙겨가는 것도 좋겠다. 도시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가는 도시 장터 마르쉐. 마르쉐@서교, 마르쉐@성북, 마르쉐@삼성이 열리는 그날까지, 이 따뜻하고 감각적인 장터가 계속 진화하기를 바란다.

글 김선미 디자인 칼럼니스트·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문재인-안철수 TV토론 누가 이겼나 보니…
파워트위터가 본 문·안 토론 “이렇게 점잖은 토론은 처음 본다”
문·안 ‘단일화 TV토론’ 못봤다면…토론 전문보면 되고
‘천사의 탈’ 쓰고…장애인 학대에 후원금 횡령까지
‘직원 성추행’ 부장판사 사직
큰스님도 카사노바도 즐기던 ‘통영의 맛’
[화보]안후보님, 뭐라고요? 궁금한 표정 문재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