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 돌풍으로 바라본 싱글 여성들의 ‘연애책’ 트렌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 돌풍으로 바라본 싱글 여성들의 ‘연애책’ 트렌드
최근 온라인서점 예스24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문학’ 부문은 에세이에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설파하는 스님의 책과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며 멘토를 자처하는 교수의 책이 1, 2위를 사이좋게 나눠 갖고, 4위가 되어야 더글러스 케네디의 <빅 픽처>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5위 <사랑을 배우다>는 작가 이름이 낯설다. 무무. 중국 작가의 필명이다. 오로지 글로만 독자들과 교감한다는 이 작가의 책은 제목 그대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 모음이다. 유명한 작가들이 쓴 사랑과 관련된 구절을 인용하고 실재했던 기묘한 사랑 이야기를 그에 엮어 소개한다. 그로부터 순위가 열 계단 정도 내려가면 이엘(E. L.) 제임스의 도발적인 연애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시작하는 ‘그림자’ 3부작은 11월12일까지 종이책 30만부, 전자책 8만8000부 판매 기록을 세웠다. 시공사의 조용호 마케터는 “이북(e-book)의 경우 종이책보다 부수로는 덜 팔렸지만 판매세 자체는 꾸준한 편이다. 이북 쪽 한국 기록은 전부 깼다. 소설 분야에서는 압도적으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종이책 30만부
이북 8만8000부 팔려 그런데 <그레이…>의 인기에는 여느 베스트셀러와 다른 지점이 있다. 출판가에서 보통 한권의 ‘메가히트’는 유사한 책들의 양산으로 이어지는 데 비해 <그레이…>는 출간 이후 비슷한 재미를 주는 경쟁자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출판 편집자들의 딜레마는 여기서 출발한다. 대형출판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는 편집자 이현민(가명)씨는 영미권 소설의 판매가 부진한 상황에서 기획에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레이…>는 잘됐다. 그런데 이런 책을 내면 그 책도 잘될 수 있을까? <트와일라잇> 시리즈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경우, 그 소설들은 잘됐지만 유사한 기획들 중에 성공작이 많지 않다. <그레이…>도 엄밀히 말하면 미국에서 잘돼서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 아닌가. 내용으로만 따지면 십대 때 읽던 로맨스소설인데 섹스신 수위가 더 높은 차이뿐이다.” 판매량이 꾸준한 것으로 따지면 모호하지만 ‘사랑’ 이야기로, 주요 독자층이 20~30대 독신여성인 소프트한 책들이다. 1990년대 <국화꽃 향기>의 김하인과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생각을 해>의 원태연이 갖고 있던 대중적인 연애소설, 연애시 시장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과 가타야마 교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같은 일본의 연애소설들, 특히 쿨하고 도시적인 사랑 이야기를 설파하는 작품들 쪽으로 기울었다. 여기에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비롯한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에세이들이 더해졌다. 9월 말에 출간된 <사랑을 배우다>는 온·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한달이 안 되는 시간 동안 2만부가 넘게 팔렸다. 편집자인 조안나씨 역시 ‘쉽게 읽을 수 있음’이라는 면이 연애 에세이가 잘 팔리는 이유라고 말한다. “지하철에서 출퇴근할 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예쁜 책이라서 인기가 좋은 것 같다.” <사랑을 배우다>를 출간한 출판사 책읽는 수요일에서는 사랑에 대한 에세이성 인문서로 분류하는 <올 어바웃 러브>와 <예술가들의 사랑>을 겨울을 겨냥해 출간했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선물용 책, 가벼운 책, 연인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책이 더 집중적으로 기획된다”는 설명이다.
성인을 위한 할리퀸 로맨스
비판에도 불구하고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주의
좋아하는 독자층 사로잡아 흥미로운 점은 대담하고 노골적인 성애를 묘사하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육체성과는 다소 떨어져 보이면서 섬세한 감성에 호소하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이 같은 독자층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책 내용으로만 따지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어디까지나 로맨스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 시장은 서점보다 책대여점을 중심으로 한 한국 로맨스소설들이 선점해왔다. 대여점에서 빌려 읽는 로맨스소설의 독자가 아닌, 베스트셀러 목록과 자신의 독서목록의 태반이 겹치는 독자들에게 신기한 책으로 다가간 셈이다.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독립을 통한 자아실현으로 대변되는 ‘언니’들의 맹렬한 30대론, 40대론 자기계발서와 비교했을 때 퇴행적으로까지 보이는 사랑의 담론은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성 독자들에게, 결혼을 고민하는 삼십대 ‘그녀’들에게 보기 좋고 먹기 좋은 당의정이자 남에게 보여주기는 쑥스럽지만 호기심을 감출 수 없는 길티 플레저다. ‘여성을 위한 포르노’라고 일컬어질 만큼 원색적이면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판타지에 대한 솔직한 궁금증. 그리고 140자로 퍼나르기 적당한 아포리즘과 포토샵한 사진처럼 일상을 수정할 수 있는 감성주의. 극과 극으로 보이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공유하는 감성은 무엇일까. 당신은 어떤 때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를 읽으십니까? 그 질문을, 물어야 할 때가 됐다. 글 이다혜 <씨네21>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일러스트레이션 박혜림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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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30만부
이북 8만8000부 팔려 그런데 <그레이…>의 인기에는 여느 베스트셀러와 다른 지점이 있다. 출판가에서 보통 한권의 ‘메가히트’는 유사한 책들의 양산으로 이어지는 데 비해 <그레이…>는 출간 이후 비슷한 재미를 주는 경쟁자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출판 편집자들의 딜레마는 여기서 출발한다. 대형출판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는 편집자 이현민(가명)씨는 영미권 소설의 판매가 부진한 상황에서 기획에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레이…>는 잘됐다. 그런데 이런 책을 내면 그 책도 잘될 수 있을까? <트와일라잇> 시리즈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경우, 그 소설들은 잘됐지만 유사한 기획들 중에 성공작이 많지 않다. <그레이…>도 엄밀히 말하면 미국에서 잘돼서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 아닌가. 내용으로만 따지면 십대 때 읽던 로맨스소설인데 섹스신 수위가 더 높은 차이뿐이다.” 판매량이 꾸준한 것으로 따지면 모호하지만 ‘사랑’ 이야기로, 주요 독자층이 20~30대 독신여성인 소프트한 책들이다. 1990년대 <국화꽃 향기>의 김하인과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생각을 해>의 원태연이 갖고 있던 대중적인 연애소설, 연애시 시장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과 가타야마 교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같은 일본의 연애소설들, 특히 쿨하고 도시적인 사랑 이야기를 설파하는 작품들 쪽으로 기울었다. 여기에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비롯한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에세이들이 더해졌다. 9월 말에 출간된 <사랑을 배우다>는 온·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한달이 안 되는 시간 동안 2만부가 넘게 팔렸다. 편집자인 조안나씨 역시 ‘쉽게 읽을 수 있음’이라는 면이 연애 에세이가 잘 팔리는 이유라고 말한다. “지하철에서 출퇴근할 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예쁜 책이라서 인기가 좋은 것 같다.” <사랑을 배우다>를 출간한 출판사 책읽는 수요일에서는 사랑에 대한 에세이성 인문서로 분류하는 <올 어바웃 러브>와 <예술가들의 사랑>을 겨울을 겨냥해 출간했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선물용 책, 가벼운 책, 연인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책이 더 집중적으로 기획된다”는 설명이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주의
좋아하는 독자층 사로잡아 흥미로운 점은 대담하고 노골적인 성애를 묘사하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육체성과는 다소 떨어져 보이면서 섬세한 감성에 호소하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이 같은 독자층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책 내용으로만 따지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어디까지나 로맨스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 시장은 서점보다 책대여점을 중심으로 한 한국 로맨스소설들이 선점해왔다. 대여점에서 빌려 읽는 로맨스소설의 독자가 아닌, 베스트셀러 목록과 자신의 독서목록의 태반이 겹치는 독자들에게 신기한 책으로 다가간 셈이다.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독립을 통한 자아실현으로 대변되는 ‘언니’들의 맹렬한 30대론, 40대론 자기계발서와 비교했을 때 퇴행적으로까지 보이는 사랑의 담론은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성 독자들에게, 결혼을 고민하는 삼십대 ‘그녀’들에게 보기 좋고 먹기 좋은 당의정이자 남에게 보여주기는 쑥스럽지만 호기심을 감출 수 없는 길티 플레저다. ‘여성을 위한 포르노’라고 일컬어질 만큼 원색적이면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판타지에 대한 솔직한 궁금증. 그리고 140자로 퍼나르기 적당한 아포리즘과 포토샵한 사진처럼 일상을 수정할 수 있는 감성주의. 극과 극으로 보이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공유하는 감성은 무엇일까. 당신은 어떤 때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를 읽으십니까? 그 질문을, 물어야 할 때가 됐다. 글 이다혜 <씨네21>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일러스트레이션 박혜림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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