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달려봐 오솔길 사이로

등록 2012-10-10 14:26수정 2012-10-10 15:08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오름 정상.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오름 정상.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산과 들판 등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트레일 러닝의 세계
등산 인구 늘어나면서
숲과 들판, 바다 등 자연속에서
달리는 트레일 러너도 증가

11월 제주에서 트레일 런 대회
자연을 즐기면서
한계에 도전하는 모험

‘우리는 달리도록 태어났다. 달리기 때문에 태어났다. 우리는 모두 달리는 사람들이었다.’(크리스토퍼 맥두걸 <본투런>(Born to Run) 가운데)

그러나 우리 모두가 달리지 않는다. 현대인의 모습이다. 달리지 않아도 대신 달려주는 발명품들이 많아지면서다. 달리기는 일상과 멀어져 가면서, 스포츠나 레저, 취미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것도 태초의 달리는 인간이 밟았을 맨땅이 아닌, 딱딱한 아스팔트 도로에서 뛰고 또 뛴다.

“도대체 뭐하러 산길을 뛰느냐고 해요. 그런데 산속 바람을 가르는 느낌을 느껴본 사람은 알 거예요. 빠져들 수밖에 없다니까요.” 지난 9월26일 서울 청계산에서 만난 정혜숙(32)씨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그는 한가한 평일 오후 청계산에 뛰어오른다. 한번 출발해 정상에서 잠깐 쉴 때까지 뛰는 시간은 40여분. 다른 등산객들처럼 큰 배낭은 메지 않았고, 생수 한 병이 든 가방을 허리께 둘러맸다. 정씨처럼 도로를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트레일 러닝은 ‘비포장인 오솔길(trail)을 달리는 것’을 뜻한다.

“원래 포장도로에서 하는 마라톤이나 러닝 대회에 도전하며 달리기에 입문했죠. 20대 중반부터였는데, 세해 정도 지나니, 매해 같은 도로 위를 달리는 게 조금씩 지루해지는 거에요. 처음 대회 나갈 땐 몰랐어요. 그때는 종점까지 가는 것만이 목적이었으니까요.” 그러던 정씨는 취미로 달리던 것을 그만뒀다. 달리기를 그만둔 지 3년이 지나자 몸에는 이상신호가 왔다. 그리고 산을 달리기 시작했다. “가끔 등산을 했어요. 이곳 청계산을 다녔는데, 어떤 사람이 청계산을 뛰어 올라가는 거예요. 몸은 저절로 움직였어요. 어느새 저도 뛰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1년 동안 그는 야트막한 서울 근교의 산들을 찾아 뛰었다.

따라비오름 전경.
따라비오름 전경.
무리를 지어 뛰어보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프로그래밍 연구실에 소속된 대학원생 17명은 오는 11월4일 제주로 떠난다. 제주에서 본격적인 트레일 러닝 축제가 열리는데, 거기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9월27일 만난 이들은 트레일 러닝에 갓 입문했다. 강동옥(23)씨는 최근 학교를 한 바퀴씩 뛰면서 훈련을 하고 있다. 말이 좋아 한 바퀴이지, 오르막이 많은 캠퍼스는 만만치 않은 훈련코스이다. “처음에는 제주에서 하는 트레일러닝 대회도 그렇게 힘이 많이 안 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르막길이 있는 곳에서 훈련을 해보니 그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분명히 평지 12킬로미터와는 다를 거예요.” 강씨는 조금 걱정이 되는 눈치이다.

조성근(30)씨와 허기홍(26)씨는 주중에는 헬스장에서, 주말에는 서울 시내나 가까운 교외에서 훈련을 한다. 조성근씨는 “몇주 전에 수원 화성에서 훈련을 했어요. 꽤 긴 시간이었는데 지루하지가 않더라고요. 내내 볼거리가 많았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뛴 허기홍씨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런 그는 “저는 운동을 제일 싫어했어요”라고 고백했다. “보통 남성들은 축구나 야구 같은 운동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 경쟁을 하는 종목은 안 좋아했거든요. 헬스장에서 뛰기 시작한 건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체력을 기르기 위한 목적에서였어요.” 그랬던 그는 헬스장을 벗어나 밖에서 달리는 재미에 이제 푹 빠졌다. “한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연구실에서 씨름하던 문제를 생각하다가도 곧 잊게 돼요. 그런 면에서 자연 속에서 달리는 것은 저에겐 작은 일탈이에요.”

2009년에 열린 20여개국 500여명이 참가한 ‘트랜스 알파인 런’ 대회.
2009년에 열린 20여개국 500여명이 참가한 ‘트랜스 알파인 런’ 대회.
국외 곳곳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트레일 러닝을 하기에 천혜의 환경을 갖춘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 대학원 학생 무리가 출전한다는 트레일 런 대회, 2012 트레일 런 제주(Trail run Jeju)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안병식씨이다. 그는 이미 사막과 북극과 남극 등 극한 환경의 오지 마라톤에 여러번 참가해 이름을 알렸다.

뛰던 그는 고향인 제주에서 다른 사람들이 뛸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만들고 있다. “외국에 가면 로드 러너냐 트레일 러너냐고 물어요. 국외에서는 그렇게 구분하더라고요.” 그조차 트레일 러닝이라는 개념을 몰랐지만, 아는 순간 매료됐다. 그리고 떠올렸다. 제주를. “제주의 오름은 정말 올레길 못지않게 보물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전세계 트레일 러너들이 오름이 있는 코스를 알게 되면 매력적으로 여길 것이라고 봐요. 알프스, 히말라야 등 많은 곳을 가봤지만, 이렇게 산과 바다와 오름이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요. 매일 다른 환경의 자연을 달리면 지루할 틈이 없어요.”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표선해변.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표선해변.
안병식씨가 트레일 러닝의 매력으로 꼽는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즐기는 달리기 문화’이다. “국내 마라톤 인구가 120만명이 넘는다고 해요. 그런데 그 문화는 여전히 후진적인 상황이에요. 대회를 연다고 하니까 가장 많이 문의하는 게 뭔 줄 아세요? 사은품이 뭐냐는 거예요. 결국 달리는 것을 즐기는 문화는 뒷전인 거죠. 저희는 3일 동안 대회를 열면서 자연을 즐기면서 나의 한계에 도전하고, 또 같은 가치와 취미를 누리는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도 쌓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진짜로 즐기면서 달리는 문화가 자리잡길 바라는 거죠.” 2012 트레일 런 제주(trjeju.com)는 11월2일부터 4일까지 100킬로미터와 40, 12킬로미터 코스로 나뉘어 진행한다. 100킬로미터 대회는 3일 동안 이어진다. 참가 신청은 15일까지이다.

국내 트레일 러닝 마니아들의 목소리는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다. ‘자연이 주는 힘’이다. 그 자연 속에서 뛰든 걷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포장도로라는, 이제는 의지 없이는 거부하기 힘든 그 길을 벗어나 보는 것이다. 작은 일탈은 그렇게 시작된다.

제주=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정규직 일자리 사라져간 20년, 강원대생들에 무슨 일이…
‘안철수 사찰 발뺌’ 치안감의 희한한 해명
넥센 히어로즈, 차기 사령탑에 염경엽
‘전국 최고 땅값 상승’ 거제도서 고층아파트 경쟁
‘도사’들이 조선건국 일등공신?
연평 꽃게의 국적은 3개
[화보] 박근혜와 안철수가 만났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