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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는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등록 2012-09-26 18:23

바위에 미친 사나이 ‘인텍’ 강재영 대표. 47년 동안 2400회 바위산을 올랐으며 그 가운데 90%가 선등이다.
바위에 미친 사나이 ‘인텍’ 강재영 대표. 47년 동안 2400회 바위산을 올랐으며 그 가운데 90%가 선등이다.
[매거진 esc] 47년 동안 2400회 암벽 오른 바위꾼 강재영씨
“평생을 바위와 살았어요
나의 삶이고
나 자신입니다”

“평생을 바위와 함께 살아왔어요. 저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나의 삶이고 나 자신입니다.”

중소 건설업체인 ‘인텍’ 강재영(62) 대표는 “만일 바위가 없었다면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에 정답을 내놓지 않았다. 비중이 때에 따라 조금씩 달랐을지언정 바위는 그를 단단히 옭아매 가정 자체가 성립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8일부터 시작된 한국산악회 29기 등산학교에 이름을 올려 3주째 교육을 받고 있다. 1974년 제1기 정규반을 수료한 지 40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됐다.

“등반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장비들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나이가 들수록 습관적으로 등반하게 되죠. 새로운 환경에 맞춰 적응하지 않으면 뒤떨어지게 됩니다.”

이번 등산학교 교육은 10월 중순부터 40일 동안 진행되는 프랑스 국립등산학교 입교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이 학교는 세계적인 스키등산 교육기관으로 최신 기술과 장비 사용법을 가르치고, 실습은 알프스 산군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아주 오래된 꿈이다. 환갑은 핑계이고, 마침 접어든 건설 비수기도 구실일 뿐이다.

“47년 바위를 하는 동안 한번도 사고가 없었어요. 암벽등반은 치밀한 계획과 준비, 원칙에 의거한 등반, 그리고 꼼꼼한 확인이 전부입니다. 이 세 가지만 지키면 절대 사고가 나지 않아요.”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조남복 산악연수원 부원장은 “강 대장과 함께 여러번 올랐을 때 하강완료 시각이 계획에서 30분 이상 오차가 난 적이 없었다”고 거들었다. 그날 날씨와 멤버 눈높이에 맞게 코스를 정하고 변하는 상황에 맞춰 등반 방식을 조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추락, 조난 등 등반 중 일어날 수 있는 우여곡절이나, 재밌는 사연을 들을 거라는 기대가 무너졌다.

22일 인수봉 반트길에서 등산학교 동기의 사진촬영을 도와주고 하강하고 있다.
22일 인수봉 반트길에서 등산학교 동기의 사진촬영을 도와주고 하강하고 있다.
그가 바위에 입문한 것은 1966년 중학교 2학년 때. 바위꾼인 형을 따라 도봉산 선인봉 표범길을 처음으로 올랐다. 당시 볼트가 박힌 바윗길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앵글하켄(바위틈에 박는 금속제 안전장비)을 크랙에 두들겨 박고, 미군 낙하산줄로 만든 로프인 ‘청짜’ 하나에 의지해 올라가는 거벽 등반 방식이었다. 당연히 캠이나 퀵드로와 같은 등반장비도 없었다. 카라비너 역시 무거운 쇠로 된 미제밖에 없었는데, 가장 많이 갖춘 산악회에서도 10개 안팎이 고작이었다.

첫 선등은 고1 때 오른 선인 남쪽길. 후등으로 여러 차례 오른데다, 형이 믿음직한 빌레이(확보)를 보면서 코치를 해줘 수월하게 올랐다. 그렇게 겁없이 바위와 인연을 맺은 청년은 북한산 인수봉, 도봉산 선인봉, 설악산 울산암과 토왕폭 등 국내는 물론, 알프스 마터호른·융프라우·몽블랑, 일본 북알프스, 러시아 엘브루스, 미국 요세미티 엘캐피탄·하프돔 등 국외 주요 거벽을 올랐다. 47년 동안 2400회, 그것도 90%가 선등이다. 선인봉 연대배첼로 길을 개척하고, 한국등산학교 대표강사 및 과정장을 거쳐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등반대장, 한국산악회 산악연수원 부원장으로 있다. 1기 수료생 33명 가운데 유일한 현역이다.

정말 추락이 한번도 없었을까. 재차 확인 들어가자 선인 표범길에서의 사건을 털어놨다. 2피치에서 트래버스하는 도중에 슬링에 발이 걸려서 미끄러졌다. 기껏 2미터 정도 떨어지는 곳으로 굳이 추락이랄 것도 없는 구간인데, 첫 피치 캠 치는 데까지 18미터나 떨어졌다. “후등자가 느슨하게 확보를 봤기 때문이죠. 제 실수라면 그 사람의 등반 실력을 사전에 확인하지 못한 거죠. 바위는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2400회 중 단 한번 추락. 그것도 후등자의 실수로 인한 것이다. 바위처럼 단단해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찌르기 나름. 주말마다 이뤄지는 입산이 그에게는 바위타기지만, 산 밖에 남은 가족한테는 실종일 터다. 가족에게 그는 ‘없는 셈 치는’ 아비와 지아비는 아닐까?

아내도 등산학교 졸업
남들 부러움 받는 부부등반
부부싸움으로 끝나기도

“아이들은 모두 등산에 무관심해요.” 그러면 그렇지. 여덟 명의 자녀들은 산에 미친 아버지와 함께 산을 돌려놓았을 터다. “그렇지만 아내는 산에 관심이 많을뿐더러 저를 이해하는 편입니다. 등산학교를 졸업해 함께 바위에 올랐으니까요.” 그가 선등하고 아내는 확보를 보며 인수 취나드 에이·비, 인수 에이·비, 신동엽길, 설악산 울산암 등을 올랐다. 동행한 리지(바윗길과 흙길이 섞인 구간)는 부지기수.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부등반은 등반 중 부부싸움으로 끝났다. 3년 전 취나드 에이길에서다. 그 길은 노가다길이라고 할 만큼 힘과 체력 소모가 많아 바위꾼들도 버거워한다. 여성한테는 더욱 힘들 수밖에. 난이도가 유독 높은 셋째 마디에서 아내가 버벅거렸다. 지체시간이 길어지면서 그의 잔소리도 길어졌다. 자존심 강한 아내는 앞으로 절대 안 따라온다면서 자기 자일을 자르듯이 바위에서 멀어졌다.

깐깐한 바위꾼은 하산해서도 원칙주의자다.

새벽 4시면 일어나 체육관에서 줄넘기를 하고 샌드백을 친다. 출근은 늘 직원들보다 한시간 먼저.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운다. 7시 조회에서 전날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날의 방향과 목표치를 제시한다. 직원들의 역량에 맞게 일을 조절하고 공과에 따라 칭찬과 질책을 한다. 일과가 끝나면 모두 형님 아우. 사고만 없으면 그날 일은 그날로 잊어버린다. 장기나 바둑 등은 성격에 안 맞아 못하고 사교를 위한 골프 외에 공으로 하는 종목은 젬병이다. 그럼 무슨 재민가?

“주말에 예정된 코스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렙니다. 기다림은 주중을 즐겁게 하고 금세 지나가게 만들죠.” 자신을 바위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 이해된다. 찬찬히 뜯어보니 그의 얼굴도 바위를 닮았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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