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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번 배워볼까? 드로잉…

등록 2012-08-29 18:39수정 2012-09-01 10:20

(※클릭하면 이미지가 확대됩니다.) 1. 건축가이자 여행작가인 오기사 작품.(예담 제공) 2. 케이티 올레 엘티이 워프 광고.(케이티 제공) 3. 드로잉작가 오은정씨 작품. ‘담벼락’(안그라픽스 제공) 4. 상상마당 드로잉강좌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수강생 강정진씨 작품. 5, 7. 오은정씨 작품.(안그라픽스 제공) 6, 8. 미술교육자이자 드로잉작가인 김충원씨 작품.(진선출판사 제공)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관심 늘고 있는 드로잉…도구 간단하고 배우기 쉬워 인기

‘장범준’은 가수일까, 그림쟁이일까? 올해 상반기 대박을 친 케이티 올레 엘티이 워프(KT olleh LTE WARP) 광고에는 버스커 버스커의 보컬 장범준의 손그림이 등장한다.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정겨운 드로잉이 경쾌한 가락과 합쳐져 인기다. 장범준은 ‘드로잉도 하는 가수’다. 드로잉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선을 이용해 어떤 이미지를 그려내는 기술 혹은 작품이다. 가장 앞서가는 디지털서비스 홍보에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그림이 사용되었다. 세상이 온통 디지털 기술로 둘러싸일수록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커진다. ‘밤과 음악 사이’ 같은 복고풍 주점의 인기나 빈티지풍 가구와 패션의 유행도 아날로그 감성에 닿아 있다. 손만 사용해 완성하는 드로잉은 대표적인 아날로그다.

상상마당 드로잉 강좌
직장인들에게 인기
육아일기 등 활용도 다양

8월25일 낮 2시 인천국제공항. 드륵드륵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고 다니는 이들로 북적인다. 온갖 설렘이 공항청사를 메운다. 여행객들 사이로 20~30대 청년 7명이 나타났다. 이들 손에는 여행가방이 없다. 대신 A4 크기의 스케치북과 연필 몇 자루만 있다. “자, 3시간 뒤 에이치(H), 이 장소에 모여요. 그때 리뷰합니다.” 드로잉화가 오은정(33)씨가 말한다. 이들은 상상마당의 드로잉 강좌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의 수강생들이다. 오씨가 강사다. 2년 된 이 강좌는 정원 20명이 늘 초과다. 10명까지 받는 대기자도 꽉 찬다.

오씨는 30분 정도 지나자 수강생들을 찾아다닌다. 사막에서 바늘 찾는 기분이 들 만도 한데 “어디 있느냐” 문자도 안 남긴다. 집중해서 그릴 때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오후 5시가 넘어가자 하나둘씩 모인다. 드로잉을 펼쳐 보인다. “중국인 소녀 그리는데 중국인 20명이 막 몰려드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데, 완전 웃겼어요.” 대학생 김재윤씨 말이다.

이 강좌를 듣는 이들의 직업과 사연은 제각각이다. 권승민(36)씨는 인천공항 엔지니어다. “예전에 연애를 낙서로 했어요. 제가 그린 낙서를 카톡으로 여친에게 보내고, 여친 그림 받고 했어요.”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수강신청을 했다. 이미 퇴직연금을 준비한 그는 “은퇴 후에 할 것, 평생 할 수 있는 것, 정신적인 것”을 찾다가 드로잉을 발견했다. 언젠가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있다. 그는 이 강좌에서 드로잉 기술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업무 스트레스 많을 때 그려요. 마음이 바로 가라앉죠.” 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이면지에 그린 드로잉 작품과 연필이 항상 있다. 수학 교사 윤예지(27)씨는 스케치북이 무서웠다. “멋있게 그려야만 하는 공간”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드로잉은 누구나 쉽게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그릴 수 있는, 말하는 것과 노래하는 것과 같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스케치북을 꺼낸다. 선은 진해지고 비명을 지르듯 날카롭게 뻗는다.

그저 “기록하고 싶은” 생각에 수강한 문진희(27)씨의 일상도 달라졌다. 이 강좌를 듣고 난 다음부터 회사 동료들에게 “활기차졌다, 좋아 보인다”는 칭찬을 듣는다. 주말에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나갈 때면 가방에는 스케치북과 연필이 있다. 카페에서도 냅킨 조각에 드로잉을 한다.

9. 3·5호선 지하철 종로3가역 풍경과 그것을 그린 강정진씨 작품. 10. 전업주부 문명예씨가 딸 유진이를 그렸다.
9. 3·5호선 지하철 종로3가역 풍경과 그것을 그린 강정진씨 작품. 10. 전업주부 문명예씨가 딸 유진이를 그렸다.

나를 표현하는 매력적 수단
좋은 드로잉은 기술보다
나의 내면을 응시해야

수강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게 된 것보다 삶 자체가 달라졌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오씨는 “드로잉은 기술이 아닙니다. ‘나 아파, 너 보고 싶어’처럼 그냥 표현입니다.” 그는 최소한의 연습방법과, 강좌를 마친 뒤에도 계속 그릴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수업방식은 독특하다. 게임개발자인 김승복(29)씨는 “초반에 당황했죠. 4주가 지나는데도 그림은 안 가르치는 거예요.” 오씨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무서워하는 것’, ‘나는 누구인가’를 발표하게 한다. 숙제는 쉽지 않다. 시든 노래든 퍼포먼스 등 자기만의 방식을 동원해야 한다. “어떤 수강생은 유치원 때부터 30대까지 찍은 명함사진을 음악과 함께 보여줬는데 모두 감동했죠.” 막상 망설이던 이들도 한 사람이 마음을 활짝 열어 고백하듯 자신을 드러내면 용기를 낸다.

“좋은 드로잉을 그리려면 자기와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수강생들은 “자신이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연필을 들기 시작한다. 드로잉은 시각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자기와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스케치북에 컵이 그려져 있든 누이가 있든 야구공이 있든, 출발선은 언제나 자신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 내 삶을 음미하고 생각하는 법을 드로잉을 통해 알게 되죠.” 오씨의 말이다. 그림은 쉽게 타인의 공감도 얻어낸다. 김승복씨는 “예전에 뻔했던 것들, 지나쳤던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릴 게 김씨의 눈에는 넘쳤다. 사람도 다르게 보였다. 자세히 관찰을 하다 보니 몰랐던 ‘그 사람’이 보였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에 대응 방식도 달라졌어요.” 그런 자신이 앞으로 기대된다고 말한다.

드로잉작가이자 미술교육자인 김충원 명지전문대학 교수는 말한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신을 평가하게 되고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행복하게 사는 데 자존감은 매우 중요하죠. 나를 표현할수록 자존감은 높아집니다.” 드로잉은 비용도 거의 안 드는 치유 방법이다.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된다. “자화상 드로잉이 특히 좋아요. 내가 나를 보는 것이죠. 거울에 비친 나를 유성 펜으로 따라 그려도 돼요.”

드로잉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 불안에 싸여 있는 현대인이 선택할 수 있는 쉬운 치유 방법이다. 용인정신병원 정신과 전문의이자 동국대 예술치료학과 겸임교수인 신동근씨는 “드로잉을 포함한 창작활동은 내면을 탐색해 자신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고” 현실에 맞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유, 경험의 확대를 선사해” 마음의 갈등을 해소해준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인격적인 성장을 합니다.”

마음을 꼿꼿하게 담은 드로잉은 활용도도 높다. 전업주부인 문명예(39)씨는 세살 된 딸 유진이의 육아일기를 드로잉으로 쓴다. 브랜드기획자 오준호(33)씨는 자신이 만든 친환경 티셔츠에 오은정 작가의 강아지 드로잉을 프린트해 편집매장에서 유통한다. 판매금은 유기견 보호에 쓴다. 상상마당 2기생들은 1년간 꾸준히 그린 드로잉 작품을 11월 한 갤러리카페에서 전시한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그림 이신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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