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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막걸리, 값어치는 글쎄…

등록 2012-08-23 14:16수정 2012-09-04 10:07

느린마을양조장 술펍
느린마을양조장 술펍
박미향 기자의 ‘맛 대 맛’
⑥ 술 전문가 정헌배 교수와 함께 간 요즘 인기 막걸리바 월향·느린마을양조장 술펍·셰막
일본 진출한 월향
단맛이 너무 강해
셰막 술맛보다
안주 맛이 더 낫네

창가에 빗방울이 들이칠 때면 따끈한 파전 한장과 걸쭉한 막걸리 한잔이 간절하다. 막걸리는 이제 어르신들만 마시는 술이 아니라 세련된 옷을 걸친 젊은이들까지 즐기는 술이 되었다. 카페를 연상시키는 고급 막걸리바도 많이 생겼다. 〈esc〉가 최근 몇 년 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막걸리바를 찾아 나섰다. ‘월향’(서울 마포구 서교동)은 2010년 문을 열어 최근 2호점을 내고 일본에도 진출했다. 배상면주가가 운영하는 ‘느린마을양조장 술펍’(서울 서초구 양재동)은 매장에 양조장이 있어 막걸리 애호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서울 강남권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셰막’(강남구 신사동)은 충남 당진에서 3대째 이어오는 신평양조장이 문을 연 곳이다. 최근 2호점을 열었다. 모두 양조장을 가지고 있는 집들이다. 맛 탐방에 중앙대 경영학과 정헌배(57) 교수가 동행했다. 정 교수는 프랑스에서 술 마케팅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정헌배 교수의 술나라 이야기>를 저술하고 직접 양조를 하는 술 전문가다.

지난 20일 오후 6시가 넘어가자 월향에 손님들이 들이닥친다.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도 많다. 차림표에는 ‘월향 쌀막걸리’ 1ℓ가 1만원, 500㎖가 6000원이라고 적혀 있다. 술은 페트병째 나오지 않고 유리병에 담아져 나온다.

정헌배(이하 정) 병째 팔아야죠. 못 믿는 게 아니라 예의죠. 외국도 고객이 보는 데서 병을 가져와 따주잖아요.

정 교수의 고집에 종업원이 750㎖ 한 병을 7500원에 판다.

(병의 성분표를 보고) 감미를 많이 했어요. 이소말토올리고당 8% 들어갔네요. 많아요. 탄산도 많이 느껴지네요. 밀키스 같지 않아요?

기자 달아요. 보통 첫맛이 달면 맛있는 거라고 착각하잖아요. 예전 누룩의 함량이 많은 막걸리 마신 적 있는데 단맛은 거의 없었어요.

술의 고유한 맛이 없어요. ‘송명섭 막걸리’ 마시면 차이 느낄 텐데.

셰막
셰막
기자 술의 고유한 맛이란 무엇이죠?

쌀의 맛이죠. 원료의 맛이 느껴지지 않아요. 단맛이 8% 섞여서 원료의 고유한 맛을 찾기 힘들어요. 술은 3가지가 중요합니다. 원료의 맛 살렸느냐, 자연공법 사용해 제조했느냐, 가공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술맛이 달라요. 자연공법일수록 술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기자 유기농 현미 50% 넣어 만들었다고 해요.

장점이죠. 희소성이 있는, 가치 있는 원료를 사용했다는 건데 그 맛은 안 느껴져요. 이 정도 비싼 가격이면 우리에게 주는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없어요. 고급화는 마케팅이라는 생각 듭니다. 유기농이 아닌 것 50%에 유기농 50% 섞으면 그것은 유기농일까요, 아닐까요?

기자 첫눈에 ‘유기농 50%’만 들어왔어요.

‘유기농’이라고 붙이려면 100%로 해야죠. 시중의 2000~3000원 하는 막걸리와 별반 차이가 없어요.

느린마을양조장 술펍
숙성 정도로
제품 분류 인상적

기자 안주는 이 집에서 가장 인기있는 ‘백김치두부롤’로 할게요. 1만9000원이네요. 너무 비싸요. 양념이 강해 다른 맛을 희석시켜요. 막걸리에 어울리는 안주가 있나요?

막걸리는 예전에 한번에 여러 가지를 해결해준 술이었죠. 술지게미는 식사 대용. 수분이 많으니깐 목마름을 해결해주고 알코올은 노동의 고통도 잠재워주고. 어울리는 음식은 동네마다 달랐을 겁니다. 굳이 찾자면 같은 발효식품인 김치나 두부가 어울리겠죠.

기자 느린마을양조장 술펍으로 가볼까요?
월향
월향

느린마을 생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6도에, 1000㎖를 6000원에 판다. 비가 쏟아지는 월요일, 1층과 지하매장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막걸리는 ‘봄’(완성된 지 1~2일차), ‘여름’(완성된 지 3~5일차), ‘가을’(완성된 지 6~10일차) 세 종류다. 이곳도 병째 팔지 않는다.

기자 월향보다 훨씬 덜 달아요. 다른 곳에서 만들어 오는 페트병 막걸리나 여기 양조장에서 만든 술이나 같은 맛이라고 하네요.

하루 정도 걸릴 텐데, 가져오는 것과 바로 만들어 먹는 것과는 맛이 다르죠. 유리병에 담겨 나오는 술은 정보가 없어요. (병을 주문해 정보를 확인하고) 국내 쌀 100%에 아스파탐 무첨가네요. ‘봄’은 발효가 짧아 바디감이 약하고 ‘여름’은 잘 걸렀어요. 탄산미가 있네요. 비교해보세요.

기자 ‘여름’의 색이 조금 짙어요. 가루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봄’보다는 ‘여름’, ‘여름’보다는 ‘가을’ 마시는 게 좋겠어요.

발효할 때 입자 결정체가 생겨요. 부풀어서 그래요. 월향과는 차원이 다르죠. 거기가 아마추어라면 여기는 프로죠. 모두 6도라는데 ‘여름’은 알코올이 조금 더 올라갔어요.

기자 1층 양조장에는 독이 3개 있어요. 매장 판매 술을 다 감당할 수 없어 일부는 포천 등지에서 만들어 가져온다고 합니다.

모토가 현장에서 만든 막걸리를 생맥주처럼 즐긴다인데 안 맞죠. 여기서 만든 것과 공장에서 가져오는 게 맛이 같다면 여기 독은 전시용일 거구요. 가격은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기자 안주로 나온 파전은 너무 얇고 밀가루 맛도 너무 강하구요. 셰막으로 가볼까요?

밤 9시가 넘은 셰막은 앉을 자리가 없다. 유행하는 옷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많다. 2가지 생막걸리가 있다. ‘하얀연꽃 백련막걸리 미스티(프리미엄)’ 알코올 7도에 쌀 100%다. 유리병째 판다. 500㎖ 8000원, 1000㎖가 1만5000원이다. ‘하얀연꽃 백련막걸리 스노’는 6도, 750㎖ 7000원이다. 페트병째 판다.

기자 스노는 그럭저럭 넘어가는데 미스티는 너무 써요. 1도 차이가 이렇게 클까요?

쓴맛 강하고, 물과 원료의 조화가 없어요. 쓴맛, 단맛, 신맛 등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월향보다는 자기 색깔이 있지만 맛을 못 잡아 아스파탐을 넣은 것 같네요. 스노는 어리고 미스트는 조금 더 연구해 만들어야 합니다.

기자 어리다는 말씀은?

물은 물대로 알코올은 알코올대로 따로 노는 거죠. 알코올 맛도 아니고 물맛도 아니고. 이 미스티의 병입은 8월16일이지만 탱크에 좀 오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자 음식의 맛은 앞서 두 집보다 나은데요.

펍이나 퓨전식당 느낌이네요. 느린마을이 술 쪽에 더 가 있다면 이곳은 음식에, 월향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아요. 일반 막걸리와 그다지 차이를 못 느끼겠는데 가격이 1만5000원이라니 비싸네요. 아스파탐 등의 첨가물도 들어갔는데.

기자 총평해 주신다면?

홍대 먹자골목이나 강남 등 서울 도심에서 젊은이들이 막걸리를 마신다는 게 감격스럽습니다. 2~3년 전에는 생각도 못했지요. 이런 문화가 오래가려면 이런 매장을 만드는 이들이 제조와 막걸리의 의미 등에 더 신경 쓰고 정직하게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세 집 중에서는 느린마을이 낫군요.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위 기사에 대한 (주)월향 이여영 대표의 반론을 싣습니다. 이 대표의 반론은 9월4일치 <한겨레> 29면 왜냐면에도 실렸습니다.

막걸리, 전통도 모르면서 전통만 고집해야 할까?

막걸리라면 이래야 한다는 한가지 향이나 맛, 재료가 있을까? 막걸리 애호가들에게 물으면 답은 각양각색이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막걸리의 원형을 찾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막걸리의 유래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까지 각 가정에서 온갖 곡류를 발효시켜 만들어 마시던 술이 바로 막걸리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구나 인정할 막걸리의 원형이 없다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세계인의 입을 사로잡은 발효주는, 와인처럼 맛의 다양성이 극대화된 부류다. 테루아르(지리 및 환경 요인)에 따라 와인의 향과 맛, 재료는 다 다르다. 와인 생산 지역과 생산자들은 그 차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다. 소비자들은 와인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을 즐긴다. 심지어 그 차이 때문에 엄청난 돈을 기꺼이 지불하려고 한다.

막걸리 역시 더 다양해져야 한다. 서로 다른 향과 맛, 가격대의 막걸리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거꾸로 획일화는 막걸리를 과거의 술, 추억의 맛에 머물게 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누군가가 자신의 혀나 취향, 노하우만이 막걸리의 원형이고, 기준이라고 한다면? 막걸리 산업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불손한 의도가 있는 주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한겨레>는 이런 주장에 적극 동조하고 나선 격이 되고 말았다(8월23일치 esc ‘비싼 막걸리, 값어치는 글쎄’). 어느 교수의 인상평을 통해 새로운 막걸리의 향과 맛, 재료에 대한 시도를 단숨에 부정하고 말았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월향 막걸리는 너무 달고, 유기농 쌀을 100% 쓰지 않았으며,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의 주장은 막걸리의 다양화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미 막걸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이었다. 도정하지 않은 쌀인 현미는 술을 담그기에 쉽지 않은 재료다. 쌀 껍질의 단백질이 발효 과정에서 서로 뭉치는 성질이 있어서다. 이 때문에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현미와 우리 쌀을 6 대 4 정도의 비율로 배합해 막걸리를 만든다. 그 결과 은은한 배나 사과꽃 향기와 특유의 단맛이 난다. 좋은 재료 외에 일주일이 넘는 숙성 기간도 높은 원가의 배경이다. 이런 사정은 고려하지도 않고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원형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막걸리에 대해 자신의 기준만 고집한다면, 전통도 모르면서 전통만 고집하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만다. 그래서야 점차 거품이 꺼지는 막걸리 산업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느 분야에나 근본주의는 있다. 하지만 불분명한 근본을 강요하는 것은 근본주의보다도 더 나쁘다.

이여영 (주)월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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