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 백
[매거진 esc] 초등학교때 미국 이민가 한국식 퓨전 일식으로 스타셰프 된 아키라 백
“고추장, 지금 미국에서 인기예요. 맵지만 달고 신맛도 있어 매력적이죠. 미국인들이 매운 고추장을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오해입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일식레스토랑 ‘옐로테일’의 총주방장 아키라 백(본명 백승욱·38)이 전하는 미국 현지 소식이다. 실제 샘표식품의 2011년 미국 고추장 수출량은 전년도에 비해 2배 늘었다. 5~6년 전부터 비빔밥, 갈비, 불고기 등 미국에서 일반적인 한식의 인기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월31일과 6월1일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레스토랑 ‘클락식스틴’(CLOCK16)에서 열린 ‘아키라 백 스페셜 디너쇼’를 진행한 그를 만났다.
“고추장 팬”인 그는 일식과 프렌치 스타일이 섞인 자신의 요리에 한식의 요소를 담는다. 제주산 도미에 초고추장을 얹고 푸아그라를 고추장 양념에 버무린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 자랐잖아요. 제 입맛의 80%는 한국적인 거죠.” 그는 데이비드 장, 코릴 리 등과 함께 한국계 스타 셰프로 미국에서 명성을 쌓고 있는 요리사다. 패리스 힐튼처럼 그의 맛에 반한 명사들이 많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그중 한 명이다.
퓨전 일식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노부 마쓰히사의 레스토랑 ‘마쓰히사 애스펀’의 총주방장으로 일할 때였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통령 선거 유세 자금 마련차 콜로라도 애스펀을 찾은 클린턴에게 그는 은대구쌈요리를 내놓았다. 미소(일본식 된장) 소스에 사흘간 재운 은대구에 미소 소스를 또 바르고 구운 다음, 튀김요리와 함께 보스턴 상추에 올려 낸 요리였다. 우리네 쌈 요리인 셈이다. 클린턴은 맛에 반해 주방까지 찾아와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클린턴은 애스펀을 방문할 때마다 그의 쌈 요리를 즐긴다.
“식당에서 일하겠다니
머리를 박박 밀고 오래요
정말 깎을지 몰랐던 거죠” 미국 일식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모리모토 마사하루와 마쓰히사 노부유키(노부 마쓰히사)의 레스토랑에서 근무, 요리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미국 푸드네트워크가 만든 인기 요리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등 그의 요리사 이력은 화려하기만 하다. 찬란한 태양은 짙은 어둠을 뚫고 나오는 법. 그의 빛나는 요리 인생은 어두운 시간을 이겨내고 탄생했다. “저는 원래 운동선수였어요. 미국에서 스노보드 선수로 살려고 했죠.” 서울 학동초등학교 야구부 선수였던 그는 운동이 적성에 맞았다. “함께 스카우트된 친구 중에 서장훈도 있어요. 중학교 때 농구로 전향해 성공했죠.”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스노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낯선 땅, 영어도 잘 못하는 어린 한국 소년의 눈에는 스노보드 선수들이 멋져 보였다. “콜로라도 애스펀은 스키장과 캠핑장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죠. 동양인은 찾아보기가 힘든 곳이었어요.” 그저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스노보드 선수들을 쫓아다녔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스노보드팀에 가입하면서 친구도 생기고 인기도 얻었다. 그는 1996년 세계스노보드대회 하프파이프 부문에 출전해 5위를 했다. 한국으로부터 나가노 겨울올림픽에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하지만 한국이 출전 자격을 획득하지 못해 결국 무산되었다. 일본식 된장 소스 바른
은대구 요리 맛본 클린턴
주방으로 찾아와 “20살인지 21살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큰 사고가 났어요.” 착지하다가 뼈가 부서졌다. “늘 부상이 있었지만” 당시 사고는 스노보드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좌절은 컸다. 그때 만난 이가 켄이치였다. 켄이치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일식레스토랑 ‘켄이치’를 애스펀에서 운영하고 있는 일본인이었다. 그의 주방에는 영어는 잘 못하지만 일식만은 일가견이 있는 일본인 요리사들이 많았다. “켄이치하고는 원래 친했어요. 그분을 좋아했어요.” 무작정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허락은 쉽게 나지 않았다. “삭발을 하고 오면 일하게 해줄게”란 답이 돌아왔다. 켄이치가 일감을 구하는 이들을 쫓아내는 방식이었는데 백씨는 덜컥 머리카락을 밀었다. 지금까지 그는 박박머리다. “칼에 손이 베이고, 설거지만 하는 힘든 날들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도 시작한 일”이기에 오기로 버텼다. “아침 5~6시에 출근해 자정이 넘어야 집에 들어오는 생활이었죠.” 그곳에서 일하면서 일식의 기초를 다졌다. 이름도 ‘아키라 백’으로 고쳤다. “‘욱’자를 한자로 적어 보여주면 일본인 요리사들이 ‘아키라’라고 했어요.” 요리를 하면서 대학은 그만두었다. “미국 사람들 립 아이 스테이크 좋아하잖아요. 제가 잘 만들지 못했어요. 답답했죠.” 그는 에이아이시(AIC)의 요리학과에 입학해 갈증을 해소했다. 2년 과정을 마치고 무작정 여행에 나섰다. “인기있는 레스토랑은 뭘 잘 만드는지 궁금했어요.” 무작정 찾아가 일을 배웠다. 돈을 받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모리모토가 운영하는 필라델피아 모리모토 레스토랑도 그때 일한 곳 중 하나다. “주방보조였는데, 굴 껍질만 하루 종일 벗겼어요. 1000개가 훨씬 넘었죠. 아주 힘들었어요.” 그때 생긴 ‘한’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후배) 요리사가 생기면 굴만 까라고 한다”고 말한다. 요리 여행은 2년이 걸렸다. 이후 노부 마쓰히사에게 발탁되어 ‘마쓰히사 애스펀’의 총주방장이 됐다. 그의 요리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순간이다.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요리사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어야 해요. 2008년 입사한 ‘옐로테일’에서도 제 스타일 음식을 만들고 있어요. 뿌리가 있어야 나만의 스타일이 나오죠.” 그의 뿌리는 한식이다. 튀긴 새우에는 유자주스와 고추장을 버무린 소스를 올리고, 고추장에 마요네즈도 섞었다. 그가 만든 ‘초고추장을 가미한 흰살생선 카르파초(날고기나 날생선을 얇게 썰고 소스를 뿌린 요리)’는 그의 레스토랑을 찾는 이들에게 우리 고추장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미국에서 우리 고추장은 그의 솜씨를 날개 삼아 뿌리내리고 있었다. 오는 9월에 한국을 다시 찾아 지방을 돌면서 고추장 장인들도 만나볼 계획이다. 90% 한국식이 가미된 레스토랑을 열 생각도 한다. “한국에서 스트리트 푸드(길거리 음식)가 제일 맛있어요. 순대, 떡볶이, 호떡, 특히 좋아해요.” 영락없는 한국 요리사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참고도서 <라스베이거스 요리사 아키라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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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란, 고추냉이 버터 등을 곁들인 횡성 한우 꽃등심 요리. 2. 송로버섯 오일로 향을 낸 참치피자. 3. 깻잎과 초고추장을 곁들인 제주산 도미말이.
머리를 박박 밀고 오래요
정말 깎을지 몰랐던 거죠” 미국 일식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모리모토 마사하루와 마쓰히사 노부유키(노부 마쓰히사)의 레스토랑에서 근무, 요리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미국 푸드네트워크가 만든 인기 요리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등 그의 요리사 이력은 화려하기만 하다. 찬란한 태양은 짙은 어둠을 뚫고 나오는 법. 그의 빛나는 요리 인생은 어두운 시간을 이겨내고 탄생했다. “저는 원래 운동선수였어요. 미국에서 스노보드 선수로 살려고 했죠.” 서울 학동초등학교 야구부 선수였던 그는 운동이 적성에 맞았다. “함께 스카우트된 친구 중에 서장훈도 있어요. 중학교 때 농구로 전향해 성공했죠.”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스노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낯선 땅, 영어도 잘 못하는 어린 한국 소년의 눈에는 스노보드 선수들이 멋져 보였다. “콜로라도 애스펀은 스키장과 캠핑장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죠. 동양인은 찾아보기가 힘든 곳이었어요.” 그저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스노보드 선수들을 쫓아다녔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스노보드팀에 가입하면서 친구도 생기고 인기도 얻었다. 그는 1996년 세계스노보드대회 하프파이프 부문에 출전해 5위를 했다. 한국으로부터 나가노 겨울올림픽에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하지만 한국이 출전 자격을 획득하지 못해 결국 무산되었다. 일본식 된장 소스 바른
은대구 요리 맛본 클린턴
주방으로 찾아와 “20살인지 21살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큰 사고가 났어요.” 착지하다가 뼈가 부서졌다. “늘 부상이 있었지만” 당시 사고는 스노보드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좌절은 컸다. 그때 만난 이가 켄이치였다. 켄이치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일식레스토랑 ‘켄이치’를 애스펀에서 운영하고 있는 일본인이었다. 그의 주방에는 영어는 잘 못하지만 일식만은 일가견이 있는 일본인 요리사들이 많았다. “켄이치하고는 원래 친했어요. 그분을 좋아했어요.” 무작정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허락은 쉽게 나지 않았다. “삭발을 하고 오면 일하게 해줄게”란 답이 돌아왔다. 켄이치가 일감을 구하는 이들을 쫓아내는 방식이었는데 백씨는 덜컥 머리카락을 밀었다. 지금까지 그는 박박머리다. “칼에 손이 베이고, 설거지만 하는 힘든 날들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도 시작한 일”이기에 오기로 버텼다. “아침 5~6시에 출근해 자정이 넘어야 집에 들어오는 생활이었죠.” 그곳에서 일하면서 일식의 기초를 다졌다. 이름도 ‘아키라 백’으로 고쳤다. “‘욱’자를 한자로 적어 보여주면 일본인 요리사들이 ‘아키라’라고 했어요.” 요리를 하면서 대학은 그만두었다. “미국 사람들 립 아이 스테이크 좋아하잖아요. 제가 잘 만들지 못했어요. 답답했죠.” 그는 에이아이시(AIC)의 요리학과에 입학해 갈증을 해소했다. 2년 과정을 마치고 무작정 여행에 나섰다. “인기있는 레스토랑은 뭘 잘 만드는지 궁금했어요.” 무작정 찾아가 일을 배웠다. 돈을 받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모리모토가 운영하는 필라델피아 모리모토 레스토랑도 그때 일한 곳 중 하나다. “주방보조였는데, 굴 껍질만 하루 종일 벗겼어요. 1000개가 훨씬 넘었죠. 아주 힘들었어요.” 그때 생긴 ‘한’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후배) 요리사가 생기면 굴만 까라고 한다”고 말한다. 요리 여행은 2년이 걸렸다. 이후 노부 마쓰히사에게 발탁되어 ‘마쓰히사 애스펀’의 총주방장이 됐다. 그의 요리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순간이다.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요리사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어야 해요. 2008년 입사한 ‘옐로테일’에서도 제 스타일 음식을 만들고 있어요. 뿌리가 있어야 나만의 스타일이 나오죠.” 그의 뿌리는 한식이다. 튀긴 새우에는 유자주스와 고추장을 버무린 소스를 올리고, 고추장에 마요네즈도 섞었다. 그가 만든 ‘초고추장을 가미한 흰살생선 카르파초(날고기나 날생선을 얇게 썰고 소스를 뿌린 요리)’는 그의 레스토랑을 찾는 이들에게 우리 고추장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미국에서 우리 고추장은 그의 솜씨를 날개 삼아 뿌리내리고 있었다. 오는 9월에 한국을 다시 찾아 지방을 돌면서 고추장 장인들도 만나볼 계획이다. 90% 한국식이 가미된 레스토랑을 열 생각도 한다. “한국에서 스트리트 푸드(길거리 음식)가 제일 맛있어요. 순대, 떡볶이, 호떡, 특히 좋아해요.” 영락없는 한국 요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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