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편안한 추리소설, 코지 미스터리의 세계
파티시에, 찻집 주인,
케이크 마니아 등
생업 가진 여성들이 문제 해결
주 독자층도 10~20대 여성 손에는 돋보기와 권총 대신 조리기구를 들고 있다. 미궁에 빠진 사건 해결의 집념보다는 남자문제 해결이 먼저다. 근사한 쿠키 조리법(레시피)을 완성한 때면 행복에 겨운 신음 소리와 함께 범죄의 실마리가 풀린다. 그녀의 이름은 한나 스웬슨.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평범한 30대 여성이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미네소타주의 작은 마을 레이크에덴에서는 명탐정으로 통한다. 이처럼 형사나 사립탐정이 아니라 소시민에 가까운 캐릭터가 등장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커뮤니티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범죄물을 ‘편안한 추리소설’, 즉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2006년 해문출판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와 시공사의 ‘이혼녀 현상금 사냥꾼’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를 필두로 다수의 장르문학 브랜드를 통해 코지 미스터리 작품들이 소개되면서, 그해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난 추리소설 출간량과 인기에 일조한 바 있다. 영미권에서는 1980~9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이 코지 미스터리는 몇 가지 지점에서 이전의 추리물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주인공은 대개 여성이며 자신만의 생업을 가지고 있다. 앞서 소개한 파티시에 한나 스웬슨을 비롯해(조앤 플루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 커피숍 주인인 클레어(클레오 코일의 커피하우스 미스터리 시리즈),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 시어도시아(로라 차일즈의 찻집 미스터리 시리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외에 백발 할머니가 주인공인 경우도 있고(리타 라킨의 글래디 골드 시리즈), 케이크 가게 순례가 취미인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작품도 있으며(요네자와 호노부의 계절 미스터리), 심지어 인격을 얻은 복화술 인형(아비코 다케마루의 인형 탐정 시리즈)이나 고양이가 탐정 노릇을 하는 소설(시바타 요시키의 고양이 탐정 쇼타로 시리즈)도 있다. 주인공이 주로 여성이고 그들의 직업 또한 지극히 일상적인 관심사에 맞닿아 있다는 설정은, 코지 미스터리가 어떤 독자들에게 소구하는 추리소설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정통 추리소설이 하드보일드, 경찰 수사물 등으로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하여 주로 30~40대 남성들과 주부들이 주 독자층이라면, 코지 미스터리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덜 자극적인 표현, 로맨스 등 독특한 테마와 주제들이 가미되어 10~20대 여성들이 주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정통 추리물은 물론 다수의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를 국내에 출간한 해문출판사 대표 이경선씨의 말이다. 기존의 추리소설 팬들보다는 일반 소설이나 로맨스 소설 독자들 중에서 참신한 내용과 주제의 소설을 찾던 이들이 코지 미스터리를 접하게 된 사례가 많다는 것. 이러한 독자층의 성향은 작가들의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전 <계간 미스터리> 편집장 박광규씨는 “코지 미스터리 작가 중에는 평범한 주부 생활을 하다 등단한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잔혹한 묘사라든가 정교한 트릭보다는 인간관계에 방점을 두는 편”이라고 말한다. 작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캐릭터를 만들고, 스스로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려 풀어낸 셈으로, 예컨대 웨딩플래너 탐정 애너벨 아처 시리즈(국내 미출간)를 쓴 작가 로라 더럼은 ‘워싱턴 디시(DC) 최우수 웨딩 컨설턴트’ 상을 3년 연속 수상한 실제 웨딩플래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듯 소설에 반영된 작가들의 경험은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는 장치가 된다. 재닛 에바노비치가 창조한 생계형 현상금 사냥꾼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원 포 더 머니> 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원고를 출판사로부터 퇴짜 맞았던 소설가 지망생 시절의 눈물 젖은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세 아이를 키우는 주부 탐정 ‘제인 제프리’ 시리즈(국내 미출간)는 그 자체로 작가 질 처칠의 육아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골적인 성이나
폭력 묘사 없는
고전 미스터리에 가까워 비전문 탐정이 등장하고 정교한 트릭보다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중심인 까닭에 코지 미스터리는 기존의 추리소설들과 비교하면 좀더 상업적인 장르에 가까워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지 미스터리가 정통 추리물에 더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코지 미스터리의 두 번째 특징이 나온다.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묘사의 비중이 낮다는 것. 이는 전통적인 미스터리의 계승을 기치로 내건 영미권의 추리문학상인 ‘애거사 상’의 심사조건(노골적인 성애 묘사나 근거 없는 폭력과 살육을 허용하지 않음)과도 일치한다. 장르의 발전과 함께 추리소설 속 폭력의 강도와 유혈의 농도는 점차 높아졌으나, 온전히 두뇌게임에만 집중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황금기 시절 추리문학들과 비교하자면 코지 미스터리가 오히려 정통에 가깝다는 뜻이다. “코지 미스터리는 새로운 장르가 아니라 미스터리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중 할머니 탐정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작품(<비뚤어진 집>, <움직이는 손가락> 등)이 대표적인 코지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 이경선씨의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성인 독자들이 코지 미스터리를 읽는다는 것은 어린 시절에 탐독했던 추리소설의 순수한 흥분을 되살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울러 대체로 여름철 독서목록 1순위를 점하고 있는 여느 추리소설들과는 달리, 코지 미스터리의 편안한 분위기는 기나긴 겨울밤의 훈훈한 난롯가에 어울린다. 뇌세포를 일깨울 달콤한 조각 케이크와 따끈한 다르질링 홍차도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글 조민준 객원기자 zilch92@gmail.com·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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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성이나
폭력 묘사 없는
고전 미스터리에 가까워 비전문 탐정이 등장하고 정교한 트릭보다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중심인 까닭에 코지 미스터리는 기존의 추리소설들과 비교하면 좀더 상업적인 장르에 가까워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지 미스터리가 정통 추리물에 더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코지 미스터리의 두 번째 특징이 나온다.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묘사의 비중이 낮다는 것. 이는 전통적인 미스터리의 계승을 기치로 내건 영미권의 추리문학상인 ‘애거사 상’의 심사조건(노골적인 성애 묘사나 근거 없는 폭력과 살육을 허용하지 않음)과도 일치한다. 장르의 발전과 함께 추리소설 속 폭력의 강도와 유혈의 농도는 점차 높아졌으나, 온전히 두뇌게임에만 집중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황금기 시절 추리문학들과 비교하자면 코지 미스터리가 오히려 정통에 가깝다는 뜻이다. “코지 미스터리는 새로운 장르가 아니라 미스터리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중 할머니 탐정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작품(<비뚤어진 집>, <움직이는 손가락> 등)이 대표적인 코지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 이경선씨의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성인 독자들이 코지 미스터리를 읽는다는 것은 어린 시절에 탐독했던 추리소설의 순수한 흥분을 되살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울러 대체로 여름철 독서목록 1순위를 점하고 있는 여느 추리소설들과는 달리, 코지 미스터리의 편안한 분위기는 기나긴 겨울밤의 훈훈한 난롯가에 어울린다. 뇌세포를 일깨울 달콤한 조각 케이크와 따끈한 다르질링 홍차도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글 조민준 객원기자 zilch92@gmail.com·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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