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패션모델 지망생과 모델 출신 직장인, 이촌동 골목에서 만나다
패션모델 지망생과 모델 출신 직장인, 이촌동 골목에서 만나다
ㅎ은 열 살 연상의 여인과 연애를 했다. ㅂ은 열 살 어린 여성과 사귄 적이 있다. ㅎ은 20대 초반, ㅂ은 40대 초반의 남자다. 두 사람의 첫번째 공통점은 ‘10’이다. “나이는 사랑하는 데 별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ㅎ이 말하자 ㅂ도 동의한다. “사랑하다 보면 외모도 성격도 비슷해져요.” 이 두 남자가 사랑한 여성들은 모두 30대 초반이다. 몇 해 전 한 외국 잡지에서 가장 매력적인 남자의 나이는 34살이라고 했다. 여자도 마찬가지인 걸까!
이 두 남자의 두번째 공통점은 ‘패션’이다. ㅎ은 어릴 때부터 패션모델이 꿈이었다. 190㎝가 넘는 키에 호리한 신체, 적당하게 각진 얼굴은 소위 말하는 ‘카메라발’이 잘 받게 생겼다. 그러나 꿈은 닿을 수 없는 달나라에 있었다.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려면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 그는 제주도에 있는 대학교를 다닌다. 모델이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면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 그러다가 결국 모델이 안 될지도 모른다. 꿈만 꾸다가 나이만 들지도 모른다. 서울 생활은 아마도 고단할 것이다. 부모님의 반대도 심하다. ㅂ은 ㅎ의 나이 때에 패션모델을 시작해서 이름을 날렸다. 지금은 유명 디자이너의 회사에서 홍보와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다. 패션계에서는 마당발로 통한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깔끔한 매너,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넉넉한 친화력이 그의 큰 매력이다.
두 사람은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알랭 미클리, 크롬 하츠, 돌체 앤 가바나, 테오, 레스 댄 휴먼 등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ㅂ은 ㅎ에게 명함을 건네면서 “한번 꼭 우리 사무실로 와라” 당부한다. “실제 워킹을 봐야 소질이 있는지 알 수 있어요.” ㅎ처럼 꿈과 현실이 북극과 남극만큼 떨어져 있어 까끌까끌한 소금을 한 다발 씹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청년들이 우리 시대에는 많다. 청년유니온의 사무실에는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쳐라” 표어가 붙어 있다.
우리 앞에는 참치다타키, 쫄깃한 면과 갖가지 채소가 새콤하게 얽힌 우동샐러드, 소보로덮밥 등이 서로 맛을 뽐내려고 속속 도착한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시장골목에 있는 ‘이꼬이’의 음식들은 우리를 친구로 만들었다. 이곳은 ‘패피’(패션 피플)들의 아지트다. 문을 연 지 고작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리가 없다. 주인장 정지원(38)씨는 패피들의 까다로운 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그는 2000년부터 각종 패션행사의 케이터링을 도맡아 했다.
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홍보·마케팅 업무를 했던 정씨는 손맛이 좋아 요리사의 길에 들어섰다. “회사 그만두고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서 요리를 자주 해줬어요. 소문나서 강의도 하게 되었죠.” 우동샐러드의 쫄깃한 맛은 면의 전분기가 없어질 때까지 찬물과 얼음물에 헹구는 데 비결이 있다. 소보로덮밥에는 따로 볶은 표고버섯, 가쓰오부시, 참치, 쇠고기가 올라가 맛을 냈다. 정씨는 현장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음식업계에 입문해 자신의 꿈을 찬찬히 꾸려가고 있다. 정씨의 음식을 먹고 흐뭇해진 ㅂ과 ㅎ의 고향 선배인 ㄱ, 나는 ㅎ에게 건투를 빌었다. (이꼬이 070-8279-9408)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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