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개성’ 신고 걸었더니 가뿐하게 일상탈출

등록 2011-11-03 11:02

운동화 열풍은 세대를 초월해 진행중이다. 신발 유통업체의 실제 판매에서도 40대 소비자들의 비중이 늘고 있는 추세다.
운동화 열풍은 세대를 초월해 진행중이다. 신발 유통업체의 실제 판매에서도 40대 소비자들의 비중이 늘고 있는 추세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미니스커트에 러닝화, 비즈니스 캐주얼에 농구화…운동화 따라잡기
식품회사에 다니는 주현우(39)씨는 출근할 때도 컨버스 운동화를 신는다. 회사에서 비즈니스 캐주얼 입기를 권장하면서 ‘운동화 착장’을 결심했다. “캐주얼에 편안한 가죽 로퍼를 신었는데, 컨버스도 꽤 잘 어울릴 것 같아 시도했어요.” 아무리 캐주얼을 권한다지만, 회사 출근할 때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나 말고는 크게 신경쓰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주욱 운동화를 신고 있죠.” 운동화, ‘운동을 할 때 신는 신’이다. 거리에서, 운동화의 쓰임은 이 정의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 짧은 치마에 러닝화를 신고,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고 농구화를 신는다.

운동화의 패션 심리 → 실용성보다는 개성

운동화를 즐겨 신는 이들에게 물어보라. 왜 신냐고. 그러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답할 거다. “편안해서.”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 은연중에 혹은 의식적으로 외모와 옷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나. 이른바 명품이라면 짝퉁도 가리지 않는 심리도 이런 데서 기인할 터. 의상심리학에서도 옷이나 외모는 사람의 정체성과 가치를 나타낸다고 여긴다. 아무래도 패션 보수주의를 벗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운동화에 패션심리가 뚜렷이 드러난다.(고작 운동화로 ‘패션 티내기’라니 참 소심하도다.) 정장이나 비즈니스 캐주얼에 운동화를 신은 이가 “편해서 신는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그는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왜 이래~ 멋내려고 신었으면서!”라고 맞받아야 센스쟁이다.

국내 운동화는 실용성보다는 개성을 드러내는 도구다. 여기에 ‘활발하면서도 창의적인 느낌’을 준다고들 여기게 되면서 너도나도 운동화를 신는다. 이런 개성 표현은 또 어느새 유행이 된다. 운동화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딱딱한 옷에 운동화를 조합하면서 ‘반전 패션’이라 이름 짓는 것이다.

또래 집단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도구로 운동화가 애용되고도 있다. ‘그때 그 운동화’를 떠올려보자. 1980년대 리복 프리스타일, 1990년대 나이키의 에어조던(사진)과 에어맥스, 2000년대 컨버스의 올스타와 케이스위스의 운동화…. 굳이 농구를 하지 않고 달리기를 하지 않더라도 한 켤레쯤 가지고 있어야 할 운동화계의 고전 모델들이었다. 운동화에서 시작된 또래 문화는 미국 프로농구와 힙합, <백 투 더 퓨처>(2016년 자동으로 끈이 매어지는 운동화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한 영화) 등의 영화로 그 이야깃거리가 더욱 풍부해져갔다. 취업준비생 김문기(28)씨는 “고등학교 다닐 때, 나이키의 ‘에어포스원’ 모델은 하나쯤 갖고 있어야 했다”며 “없으면 왠지 또래 집단과 동떨어진 느낌이었다”고 떠올렸다.

운동화의 문화 코드 → 단 하나뿐인 나만의 아이템


그래서 운동화는 그 자체로 문화 코드다. 우선 ‘마니아 문화’. “1910년대 후반에 나온 농구화였던 컨버스사의 ‘올스타’ 모델, 1985년 나이키와 마이클 조던의 협력으로 나온 ‘에어조던’ 모델 등은 운동화 그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나이키스포츠의 운동화 디자이너를 거쳐 운동화 디자인 컨설팅업체인 인다슈의 한국지사장인 성호동 부사장의 말이다.

애플의 신제품을 사려고 가게 밖으로 길게 줄을 서던 모습은 이미 1980~90년대 나이키 매장에서도 볼 수 있었단다. 나이키의 에어조던은 운동화계의 ‘혁신 아이콘’으로 자리잡았고 팬덤 현상으로까지 확장됐다. 심지어 1989년 미국에서는 에어조던을 빼앗으려다 살인사건까지 벌어졌다. 나이키뿐 아니라, 뉴발란스와 컨버스, 리복 등은 인기 모델의 몇십주년 기념 이벤트까지 공들여 개최한다. ‘운동화 마니아’들의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아울러 운동화는 탈출구다. 기성문화를 답답하게 여기는 이들을 위한. 특히 ‘스트리트 패션’에서 운동화는 빠질 수 없다. 대학생 양지훈(26)씨는 거기서 거기인 운동화를 신는 것도 지겨워서, 자신의 개성에 맞는 운동화를 만들어 신는다. “일본이나 유럽 곳곳의 최신 스트리트 패션을 인터넷이나 외국 잡지 등에서 많이 접하는데, 그런 패션을 연출할 때 함께 신기 좋은 운동화를 찾기 힘들어서 커스텀 운동화를 마련했어요.” ‘커스텀 운동화’는 운동화 디자이너들이 기성 제품의 기본 디자인은 그대로 둔 채 겉감의 재질 등을 바꿔 재단해 만든 운동화다. 양씨처럼 운동화를 개성이 톡톡 튀도록 고쳐 만든 운동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금강제화 등에서 일했던 신발 디자이너 우정현씨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개성을 불어넣어 리폼한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며 “마니아들 사이에선 꽤 인기가 높은 패션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운동화 ‘제대로’ 신기 → 짙은 정장에 흰 운동화는 NG!

이제 운동화는 유행이 아니다. ‘메가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워킹화, 러닝화, 토닝화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나 여전히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운동화가 다양한 듯 보이나 획일적인 이유다. 성호동 부사장이 미국 신발업체 관계자와 시장 조사할 때 일화를 전했다. “미국 쪽 파트너가 우리 학생들을 보더니 그러더군요. ‘한국에선 교복하고 운동화를 세트로 사나요?’ 운동화 소비마저 획일적인 데서 벗어나질 못하는 거죠.”

학생들은 그래도 나은 편. 40대 이상은 개성 넘치는 운동화는 엄두도 못 낸다. 사무실은 안 바뀌어도 운동화 한 켤레만으로도 틀에 박힌 일상에서 시원하게 벗어나는 느낌을 만끽할 텐데. 멋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지는 건 덤이고. ‘참 좋은데…’라면서 표현할 방법을 찾는 40대도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고는 한다. 신발 유통업체 에이비시(ABC)마트 마케팅팀의 박지희 매니저의 증언이다. “소수이긴 해도 운동화로 멋내려는 40대가 늘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정장에 운동화 신는 사람들은 외국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죠. 실제 판매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요.”

늦지 않았다, 40대여.(30대는 좀 낫겠지…) 운동화로 한번 폼 잡아볼 비법을 가 공개한다. 주목! 최근에는 운동화의 착화감에 다양한 색상으로 힘을 준 운동화가 큰 인기다. 남색이나 회색 바탕에 로고를 빨강이나 노랑, 초록색으로 포인트를 준 운동화는 짙은 색 청바지에 무난하다. 가을·겨울에 자주 입는 갈색이나 회색 계열 면바지에는 같은 색 계열의 컨버스 올스타를 갖춰 신으면 제법 근사하다. 무작정 튀는 운동화는 아니올시다! 검은색이나 남색 정장에 하얀색 운동화는? 헐렁한 정장 바지에 은 목걸이를 두르고, 힙합 가수의 제스처를 부담 없이 따라 할 수 있다면, 오케이다. 이렇게 신지 말라는 얘기다.

디자이너 우정현씨의 조언이다. “아무리 운동화가 대세라지만, 10~2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형광색의 운동화를 추천하기는 무리가 있어요. 추천을 하자면, 스티브 잡스가 신었던 뉴발란스의 ‘mr993’ 모델에 차분한 색깔의 운동화가 적합하겠죠.”

성호동 부사장은 “운동화를 신어서 누릴 수 있는 효과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편안함”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는, 유행하는 운동화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는 것을 ‘절대로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잘 어울리는 신발은 사람마다 달라요. 남색 정장에 컨버스의 농구화를 신었던 퍼프 대디가 멋져 보일 때도 있지만, 운동복에 소위 ‘깔맞춤’으로 신은 운동화가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성 부사장은 색 바랜 헐렁한 청바지에 흰색 에어맥스를 신고 있었다.

검증된 구관이 명관이냐, 떠오르는 신참의 상큼함이냐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