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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 전 구글링, 만나선 호구조사

등록 2011-10-27 10:23수정 2011-10-27 16:27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소개팅에 나서는 그 남자 그 여자의 자세
도전 도전 또 도전 그러나 미션 임파서블?
청춘남녀의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 이성과의 만남. 일에 치여, 삶에 눌려, 시간에 쫓겨, 돈에 쪼들려… 짝짓기 미션을 완수하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뜨겁게 분출하는 호르몬을 참을인자 몇개로 견뎌낼 수만은 없을 터. 그들은 서로 만나려는 노력을 어떻게 이어갈까. 지극히 개인적인 남녀들의 사정을 들춰보려고 서른 즈음의 두 남녀 김진심·정순수(가명)씨를 가 만났다. 사연은 달랐지만 고민은 한가지. 누굴 만난다는 것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테크닉도 덩달아 치밀해지면서 동시에 찌질해지고 있었다.

그 남자, 김진심(가명·32) → 방송국에서 일하는 김진심씨. 그는 지난 10년 동안 두번의 긴 연애를 거쳐 올해 초 다시 혼자가 됐다. 점점 바빠지는 회사일에 주말까지 침범당하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결혼도 못하는 건 아냐?’ 불안감에 다시 소개팅에 나선 지 벌써 넉달. 13번의 도전을 마쳤다. 결과는 뼈저린 격세지감. 1년에 100번 넘게, 사나흘에 한번꼴로 소개팅에 나가던 대학시절. 나름 소개팅 전문가라고 자신만만했건만….

2000년 봄, 대학생이던 그에게 소개팅은 일상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름 두둑했던 지갑 덕에 일주일에 평균 세번씩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신촌·홍대앞·강남역이 주무대였고. 재미 반, 진지함 반이었지만, 제법 괜찮은 외모 덕에 선배·친구들에게 꾸준히 소개를 받을 수 있었다. 소개팅 주선자에게는 꼭 세가지를 물었다. “예뻐? 어느 학교 다녀? 그래서 몇 살인데?”

10년 만에 나선 소개팅은 만만치 않았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저나 상대방이나 모든 게 너무 까다로워졌어요.” 지난여름부터 주말·주중 2~3건의 소개팅 약속을 잡던 그는 얼마 전 ‘담당 커플매니저’까지 두게 됐다. 회사 선배한테 소개받은 보험 영업사원에게 연금저축보험 하나 들고, 그의 인맥을 통해 사람을 소개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나요?” 영업사원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세명의 여성을 순서대로 소개받았다. 한정된 인맥의 주변 사람들보다는 이런 방식이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SNS 미리 확인하고 주선자 없이 전화 약속 잡아
소개팅녀의 연락처를 받고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카카오톡’에 뜬 얼굴을 보니 “예쁜 대학원생”이라는 말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 기대가 부풀었다. 소개팅하기 일주일 전 상대방에게 반드시 ‘전화’로 약속을 정하는 건 상식이다. 주선자는 이제 나오지 않는다. ‘예쁜 대학원생’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폭풍 질문이 쏟아졌다. “정확하게 하고 계신 직업이 뭔가요? 나이는요? 학교는 어디 나오셨다고요?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요.”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일주일 뒤 소개팅 자리에서는 거주지, 종교, 혈액형 그리고 결혼한 그의 여동생이 가족들과 어떻게 지내는지까지 물어보는 통에 휴~ 진땀을 뺐다.

“이제는 소개팅 나가기 전에 페이스북·싸이월드·회사 홈페이지 등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는 정보는 죄다 미리 찾아봐요. 대신 카카오톡에 제 사진은 절대로 안 올립니다. 상대방이 저를 미리 평가하는 게 싫어서….”


이번주에도 퇴근 뒤 소개팅 약속을 잡은 그는 너무 까다롭게 조건을 재는 여성들이 싫지만, 어느 순간 본인도 똑같이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소개팅 한번에 5만원도 넘게 들어요. 그래도 연애하는 비용보다는 덜 드는 것 같긴 한데.” 그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빽빽하게 적어둔 ‘소개팅하기 좋은 맛집’ 목록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 여자, 정순수(가명·29) → 생활용품 업체에 다니는 정순수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개팅 경험이 딱 한번 있었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같은 수업을 듣던 선배 오빠가 해준 소개팅이 유일했다. 그 뒤로 대학 졸업까지 오랫동안 이어져온 연애 덕에 소개팅의 세계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이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를 소개팅 전선으로 내세운 건 취업 뒤 찾아온 결별. 달콤한 연애를 하고 싶었고, 또 결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만날 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어떻게 만나야 할지 막막했다. “학교 선후배한테 부탁을 해도 서로 아는 사람이 겹쳐서 해주기 힘들고, 친인척들은 제 이상형을 너무 모르더라고요.” 결국 가장 믿을 만한 이들은 직장 동료였다. 인맥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에 취미 모임도 가보고, 결혼정보업체의 미팅 행사도 찾아갔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소개팅은 이제 30번을 넘겼다. 직장 동료들은 평일 점심시간을 소개팅에 활용하곤 한다. 어색한 자리라 해도 시간 핑계로 끝낼 수 있고 퇴근 뒤 시간을 따로 낼 필요도 없어서다. 하지만 정씨는 원칙을 정했다. 소개팅은 무조건 주말. “평일에는 퇴근하고 만나야 하니까 외모 정돈이 안 되잖아요. 주말 중에도 (미리 파악한 정보로) 기대가 되는 소개팅은 저녁에, 애매한 소개팅은 점심에 약속을 잡았죠.”

그는 소개팅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무엇보다 만날 수 있는 상대의 폭이 정말 좁다는 것. 게다가 학창시절에는 소개팅남이 어쭙잖은 친구라도 됐지만, 도시 직장인에게는 말 그대로 ‘일회성 만남’일 뿐이다. 이야기도 겉돈다. 소개팅 대화의 절반 이상은 호구조사다. “예전에는 주선자가 함께 만나서 어색함을 덜기도 했는데, 요즘은 번호만 주고받고 만나는 ‘기계식 소개팅’이 많죠. 주선자도 시간 낭비 하기 싫어하거든요.”

번호만 주고받고 만나는 기계식 소개팅
거의 매주 소개팅을 했지만 그는 아직 선수 되려면 한참 멀었다. 상대방을 첫눈에 파악할 만큼은 안 됐다는 뜻이다. 오히려 소개팅 횟수가 늘어날수록 더 헷갈린다.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에 빠져든 듯한 느낌. 괜히 이것저것 재려다 다 놓쳐버리는 건 아닐까, 솔직히 걱정도 된다.

지난해 가을 소개팅을 할 때였다. 일요일 오전 11시 서울시내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정씨는 10분을 늦었다. 급히 가고 있는데 소개팅남한테 문자메시지가 왔다. ‘여자가 아직도 안 왔어. 오늘도 바람맞을 건가봐.’ 주선자한테 보낸다는 걸 실수했던 거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10여만원 계산을 쿠폰으로 하면서 종업원들과 실랑이까지 벌였다. 이래저래 소심남이라는 생각에 그 뒤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한참 뒤, 연말에 그의 사무실로 크리스마스카드가 한장 왔다. 그 소개팅남이었다. ‘저는 순수씨를 만나 정말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부디 좋은 사람 만나고 있길, 따뜻한 연말 보내길.’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그 사람을 제대로 봤던 걸까? 이 사람, 따뜻한 사람 아니었을까?’ 상대방을 파악한다는 거, 쉽지 않다. 지금도 그렇다.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의상협찬 (주)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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