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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로 행복했던 추억

등록 2011-09-29 14:21수정 2011-09-29 14:25

[esc] 밥스토리-밥알! 톡톡!
어린 시절 방학만 되면 용산역에서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 남도 땅에 있는 외가와 친가를 오갔다. 멋진 시골 풍경에 추억을 켜켜이 쌓았던 시절이다. 외가의 대문 앞에 서서 영산강의 살랑거리는 바람을 귀밑으로 느끼며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갓 삶아낸 옥수수, 다양한 종류의 떡, 구들장에서 손수 만들어주신 한과, 밤고구마 등을 먹었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사랑 가득한 시골의 맛을 생각하면 40대 후반인 지금도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번진다. 참으로 다양했던 시골 외할머니의 손맛 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푼 뒤 솔가지로 불 한소끔 더 때서 노릇노릇하게 구운 함지박만한 누룽지였다. 외손녀가 유독 맛나게 즐겨 먹는 모습을 보신 외할머니는 밥을 하시고 나면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누룽지를 만들어 주셨다. 세상 모든 것을 차지한 듯 좋았다.

1991년 신혼 시절 아련한 누룽지의 추억이 뒤바뀌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이전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갓 결혼한 신부는 시어머니께서 지어주신 밥으로 맛있는 상을 차려 남편과 함께 식사를 마칠 즈음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말씀하셨다. “아가, 불 한소끔 때서 밥을 눌려 오려무나. 네 신랑이 좋아한단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린 시절 추억과 맞물려 쾌재를 올렸다. ‘옳다구나. 우리 신랑도 가마솥 누룽지를 좋아하는구나!’ 부지런히 부엌으로 나가서 불 한소끔 때서 어린 시절 외할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근사한 누룽지를 만들어 개선장군처럼 들고 방으로 들어선 순간, 시어머니와 남편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어머니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당황한 나는 얼결에 이렇게 말했고 이어지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폭소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죄 없는 남편의 옆구리만 찌르고 있었다.

당혹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꺽꺽대는 남편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남편이 좋아했던 누룽지는 불 한소끔 때고 물을 부어 만든 고소하고 걸쭉한 누룽지 밥이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릇에 걸쭉하게 만든 누룽지 밥을 기대하셨던 어머니 입장에서 얼마나 어이없으셨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신부의 당찬 누룽지 소동으로 온 가족이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그 뒤로 호탕하신 시어머니는 가족 모임에서 빠짐없이 그때 일을 들먹이시며 웃음꽃 피우는 소재로 쓰셨다. 직장 생활을 하며 여전히 누룽지를 즐겨 먹는 나를 위해 지금도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비록 가마솥은 아니지만 압력밥솥에 밥을 깔고 누룽지를 만들어주신다. 사랑 가득한 고소한 누룽지를 먹을 수 있는 난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이지향/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 주제 밥에 얽힌 추억담, 밥과 관련한 통쾌, 상쾌, 유쾌한 이야기 ● 분량 200자 원고지 8장 안팎 ● 응모 방법 <한겨레> 누리집(hani.co.kr) 위쪽 메뉴바의 ‘esc’를 클릭한 뒤 ‘밥알! 톡톡!’에 사연과 사진을 올려주시거나 한겨레 요리웹진 끼니(kkini.hani.co.kr)의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려주세요 ● 상품 PN풍년 압력밥솥 ‘스타켄’(STARKEN) 시리즈 1개 ● 문의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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