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 상행선 여주휴게소 음반 판매대의 모습.
하이웨이 트로트의 독특하고 신기한 세계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이~있~다~ 띠리리리띤띤.”
2일 낮 서해안고속도로 논산 방향에 있는 전북 정읍 녹두장군휴게소 음반 판매대에서 전자음 요란한 ‘홍도야 우지 마라’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앞에서 대전 집에 가던 중 휴게소에 들렀다는 고재봉(71)씨가 시디(CD)를 한참 만지작거리다 <김연자 트로트 여왕>을 집어 들었다. “원래 뽕짝을 좋아해요. 옛날 노래도 많고 졸음 쫓기도 좋고, 또 신나잖아?”
고속도로 판매대에는 일반 레코드 매장과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7000원에 파는 카세트테이프, 1만2000원짜리 시디 등 이른바 ‘트로트 메들리’ 음반이 대부분이다. 모두 두 개가 한 묶음이다. 그 흔한 아이돌 가수의 음반도 없다. 오래전 추억의 노래부터 낯선 가수들의 생소한 노래까지 다양한, 이른바 ‘하이웨이 트로트’ 세계에는 나름의 독특한 이야기가 있다.
메들리의 기원은 1980년대→ 트로트 메들리를 묶은 음반이 처음 나온 건 일본에 진출해 ‘엔카의 여왕’으로 불리던 ‘김연자’부터다. 1970년대 후반 그가 <노래의 꽃다발>이라는 트로트 메들리 음반을 내면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본격적으로 인기몰이를 한 이는 주현미다. 오래전 추억의 노래들을 메들리로 엮어 <쌍쌍파티>라는 음반을 내놓은 그는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뒤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 등 자신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대표적인 트로트 가수로 성장했다. 그 뒤 여고생 가수였던 문희옥이 1987년 내놓은 <사투리 디스코 메들리>가 인기를 이어갔다. 당시 트로트 메들리가 인기를 끈 데에는 포크 음악과 함께 한국적인 정서의 멜로디가 1980년대의 우울한 시대상을 반영했다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대중가요가 다양해지면서 현재까지 트로트 메들리 시장은 다소 주춤하고 있다. 2000년대 초 관광버스 가이드 출신인 ‘신바람 이박사’가 젊은층을 겨냥한 트로트 메들리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 충북 옥천 금강휴게소(부산 방향)에서 30년 넘게 음반·기념품점을 하고 있는 이규성(70)씨는 “인터넷에서 더 싸게 파는 음반도 많아지고, 20~30대는 음반을 전혀 안 사니, 트로트 메들리 음반도 예전처럼 잘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블 리코딩을 아시나요→ 트로트 메들리 가수들은 매해 서너개 이상의 음반을 내놓는다. 그만큼 짧은 시간에 다양한 노래를 담는 게 생명이다. 보통 20여곡의 노래를 5~6시간 안에 부르며, 일반 음반과 달리 4~5개의 악기만 두고 연주를 한다. 반주가 약하기 때문에 가수가 부른 노래를 다시 똑같이 불러 입히는 ‘더블 리코딩’ 작업을 거치는 점도 특징이다. 가수 김용임은 “다시 녹음을 할 때는 처음 녹음한 것과 똑같이 불러야 한다. 그만큼 감각도 있어야 하고 노래 연습도 충분히 돼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여러 가수가 부른 노래를 한데 모은 이른바 ‘떼창’(옴니버스) 앨범이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휴게소 음반 판매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슈퍼스타 명작 베스트>나 <트롯트 국가대표 1+2집> 등이 대표적이다. 나훈아·장윤정·박현빈 등 유명 트로트 가수들이 부른 노래뿐만 아니라, 기존의 트로트 메들리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함께 싣는다. 가수 진성은 “요즘 신곡이 변화무쌍해서 제작자가 신곡을 넣어달라고 하면 아이돌 노래도 추가로 녹음해 넣기도 한다”며 “내키지는 않지만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글 김성환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글 김성환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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