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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김밥·라면…간단한 음식만 있다는 편견을 버려!

등록 2011-09-08 15:16수정 2011-09-08 15:34

(왼쪽부터) 도리뱅뱅이정식. 횡성한우떡더덕스테이크.
(왼쪽부터) 도리뱅뱅이정식. 횡성한우떡더덕스테이크.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먹거리를 둘러싼 오해들…그것을 알려주마

목이 탄다. 배도 고프다. 화장실이 급하다. 눈은 저절로 감긴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저리고 어깨가 쇳덩어리를 얹은 것처럼 무겁다. 저 멀리 불빛이 보인다. 고속도로 휴게소다. 운전자가 사막 한가운데를 걷는 방랑자처럼 신체의 절박함을 느낄 때 휴게소는 오아시스다. 오아시스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운전자의 쉼터에는 먹거리가 가득하다. 휴게소 여행의 백미는 역시 음식이다. 어묵, 꼬치요리, 감자구이, 구운 오징어 등이 한곳에 모여 있고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음식들도 있다. 휴게소에는 패스트푸드나 간단하게 조리한 음식들만 모여 있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휴게소 음식의 오해를 샅샅이 파헤쳤다.

전통음식은 없고 돈가스만 있다고? → 평양온반·도토리묵국수


평양온반
평양온반
경부고속도로 칠곡휴게소(서울 방향) 자율식당. 지붕 위로 별이 총총 뜬 밤 9시, 식판을 든 여행객들의 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 포기김치 800원, 오이미역냉국 1400원, 모둠야채 1200원 등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자율식당에선 나만의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앞사람의 뒤통수와 코 찡긋한 음식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생소한 이름이 툭 튀어나온다. 평양온반. 전통음식 전문점에서도 보기 힘든 평양온반(사진)이 있다니! 닭 육수에 밥을 말고 그 위에 양념한 고기를 찢어 얹는 요리다. 평안도 사람들이 냉면만큼이나 즐겨 먹었다. 평양온반 앞에는 3500원 가격표가 붙어 있다. 1000원 하는 밥공기 하나를 추가해야 하니 합해 4500원짜리 평양온반인 셈이다. 큼지막한 달걀지단이 상어처럼 휘휘 국물 사이를 돌아다닐 때 파란 파들이 약 올리듯 떠 있다. 닭 국물 특유의 담백한 맛을 음미할 때쯤 축축하게 젖은 녹두전이 숟가락 위로 올라온다. 갖은 약재를 넣고 4~5시간 직접 우린 닭 육수다.

도토리는 신석기시대부터 먹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지천에 널려 있었다. 불린 도토리를 맷돌에 갈면 앙금이 생긴다. 말리면 묵가루가 된다. 물을 붓고 끓였다가 굳히면 묵이 된다. 조상들은 묵무침, 묵채 등을 해 먹었다. 경부고속도로 신탄진휴게소(서울 방향)에는 도토리묵국수(사진)가 있다. 이름 그대로 도토리묵으로 국수를 만들었다. 따스한 것과 차가운 것 2가지다. “여름에는 찬 것을 많이 찾죠. 노인들은 주로 따스한 걸 드셔요.” 종업원이 전한다. 찬 것에는 시원한 냉면육수에 두툼하게 썬 묵, 김치, 오이채 등이 꽉 차 있고, 따스한 것에는 멸치육수에 묵, 파 등이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늘어져들 있다. 현명한 배우자가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상대를 타박하기보다 치약을 하나 더 준비하듯 각자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지혜가 휴게소 식탁에 숨어 있다. 도토리 특유의 알싸한 쓴맛이 적은 것이 흠. 이 휴게소에는 도미노피자가 운영하는 면요리점 ‘시젠’의 쌀국수와 강원도에서 식재료를 공수한 황태요리들도 맛볼 수 있다.



머리 쥐어짜 개발한 요리는 없을까? → 불닭구운면·도리뱅뱅이정식

부드럽고 미끈거리는 면을 굽는다면? 딱딱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다. 미끄러지듯 입에 흘러들어가야 면이다. 호남고속도로 정읍녹두장군휴게소(논산 방향) 불닭구운면은 예외다. 우동면보다 조금 굵은 면을 살짝 굽고 매운 불닭소스를 얹었다. 어묵이라고 오해하기 십상인 닭강정도 박혀 있다. 부드럽다 싶으면 바삭바삭한 면이 나타난다. 입안에서 불꽃이 팡팡 터진다. 침 바른 입술이 말라 따가운 것처럼 타들어간다. 불닭구운면은 경력이 화려하다. “2009년 도로공사에서 주최하는 ‘맛자랑 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어요. 영우냉동식품과 손잡고 대회에 출품했죠.” 정읍휴게소 정정호 과장은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영우냉동식품은 식자재 면을 구운면 전문점 ‘미소리’에 공급한다.


불닭구운면
불닭구운면
영동고속도로 강릉휴게소(강릉 방향)에도 ‘미소리’라는 이름을 단 구운면 전문점이 있다. 해산물 구운면이 인기다. 2009년에 ‘맛자랑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정읍휴게소 차림표에는 독특한 이름도 있다. 복분자낙지연포탕이다. 복분자 추출물을 탕에 넣었다고 어림짐작하기 쉽다. 밥에 넣어 색을 냈다. 미세한 혀를 가진 이가 아니라면 일반 밥맛과 구별하기는 어렵다. 이곳은 전화로 예약하면 가족끼리 오붓하게 먹을 수 있는 방도 준비돼 있다. “아이들이 많은 집이나 노인이 있는 가족이 많이 찾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에는 이름도 재미있는 도리뱅뱅이정식이 있다. 열두폭 치마가 확 퍼진 것처럼 약 35마리 빙어가 넓게 원을 그리고 있다. 육상선수의 원반 같다.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30여년 전 시작된 요리예요. 빙어를 고추장과 약 10가지 소스를 섞은 양념에 재웠다가 냉장고에 열흘 정도 보관한 뒤 구워 내요. 1년 전부터는 깻잎, 양파 등의 채소도 곁들여 내는데 손님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장태자 매니저가 귀띔했다. 통째로 잘근잘근 씹는 동안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간다. 이것이 큰 멸치인가 쇠고기인가 구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랑보다 무서운 정처럼 고소한 맛이 찐득하게 붙어 있다. 밥도둑은 게장이 아니라 바로 이놈이다. 빙어는 ‘호수의 요정’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예쁜 놈이다. 멸치와 닮아서 ‘메르치’, ‘민물멸치’라고도 부른다. 휴게소 아래 강가에는 도리뱅뱅이를 파는 포장마차도 있다. 이곳은 소주 한잔 걸치기에 좋은 풍경이다. 칠곡휴게소(부산 방향)에 있는, 돈가스 소스에 벌꿀을 섞은 아카시아벌꿀돈가스도 고심 끝에 개발한 요리다. 가까운 왜관에는 매년 벌꿀축제가 열린다.

면요리는 다 똑같겠지? → 멍게랭면·닭육수토속된장라면


멍게랭면
멍게랭면
면이 같다고 요리가 같진 않다. 육수와 고명에 따라 면요리는 얼마든지 변신한다. 9월이지만 여전히 따가운 정오, 영동고속도로 여주휴게소(인천 방향)에 한 식당 코너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차림표에 떡하니 등장한 멍게랭면(사진) 때문이다. “지난 설 때 신기해 보여서 먹었는데 또 찾게 되네요.” 운전자 ㄱ씨의 한마디다. 평범한 냉면이 범상치 않은 요리로 변신했다. 오로지 바다향 물씬 풍기는 멍게 때문이다. 혀를 집어삼키는 향긋한 비린 맛 때문에 입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만큼 정신이 없다. 면은 투명인간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흐느적거리는 멍게가 면을 감싸 안을 때만 면은 면으로서 자격이 생긴다. 탈북 사업가인 전철우씨가 대표로 있는 프랜차이즈 ‘전철우 고향랭면&오마니칼국수’에서 개발했다. 현재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인천 방향)에도 입점했다.

휴게소 라면은 어떨까? 칠곡휴게소(부산 방향) 라면 차림표에는 토속된장라면이 보인다. 식품회사 농심의 면과 예사롭지 않은 국물의 조화다. 휴게소에서 직접 담근 된장을 닭 육수에 풀었다. 고소하고 구수한 맛이 잇달아 찾아온다.

로컬푸드는 없을 듯? → 횡성한우떡더덕스테이크·풍천장어탕


풍천장어탕
풍천장어탕
횡성 하면 한우다.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강릉 방향) 한쪽에는 한우 매장이 있다. 산지에서 가까운 로컬푸드다. 이름도 거창한 횡성한우떡더덕스테이크를 주문하면 돌아오는 한마디. “5분은 넘게 걸리는데 괜찮으시겠어요?” 5분의 비밀은 떡갈비처럼 부드러운 고깃살에 숨어 있다. 다진 횡성한우와 잘게 간 더덕이 한 몸이 되는 시간이다. 조리하기 전에 미리 반죽은 해두지만 도톰하게 빚고 노릇노릇 구워 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접시에 오르는 밥도 볶음밥이다. 반죽은 20㎏ 한우에 더덕이 2㎏ 정도 들어간다. 동그랗게 뭉친 스테이크를 오븐에 구울 때 손톱 3분의 1 크기의 더덕 조각이 치즈와 함께 올라간다. 김유호 부조리실장은 “씹는 맛을 더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서해안고속도로 고창고인돌휴게소(무안 방향)에는 풍천장어탕(사진)이 있다. 고창은 장어가 복분자만큼 유명한 곳이다. 이 2가지를 맛보지 않고는 고창을 다녀갔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장어탕은 육개장도 아닌 것이, 개장국도 추어탕도 아닌 것이 도통 알 수가 없다. 3가지가 고루 모인 맛이다. 뼈와 머리로 5~6시간 국물을 우리고 그 위에 뼈를 발라낸 장어 살을 넣고는 믹서에 간 뒤 다시 끓여 냈다. “우리 장어는 전북 고창군 성내면에서 온당께. 풍천(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곳)장어여. 아따 많이 드쇼이.” 장순자 조리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땀을 쏙 빼는 맛에 취해 눈을 돌리면 휴게소 한쪽에 모시송편이 눈에 들어온다. 모시잎을 삶아 같이 반죽한 송편이다. 3개당 2500원인 값은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두툼한 송편 속에 산란기 때 알이 꽉 찬 생선처럼 소가 튼실하다.

로컬푸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안동휴게소의 인삼안동간고등어매운탕과 안동양반골동면, 함양휴게소 연잎밥과 연칼국수, 평창휴게소 황태해장국, 지리산휴게소 지리산흑돼지제육덮밥, 서산휴게소 서산어리굴젓백반, 예산휴게소 예산사과돈가스 등.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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