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시골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시골이라고 말할 때 여러 가지 의미가 동시에 떠오르지만, ‘인심’이라는 말은 빼놓을 수 없다. 10가구가 사촌보다 가깝게 지내는 우리 동네에는 인심이 차고 넘쳤다. 대문은 늘 열려 있었고, 이웃의 일은 사소한 것까지 공유되었으며, 이웃집 아이들은 우리 집을 제집 드나들듯 오가던 시절이었다.
옆집에 춘식이 아제가 살았는데, 그 아제가 결혼하면서 동네에 아지매가 한 분 더 늘었다. 그 아지매가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용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옆집 중학생이던 나는 성용이를 막냇동생 삼아 귀여워했고, 그런 나를 성용이네 아지매도 옆집 아이 이상으로 생각하셨다. 게다가 시골에서 공부를 어느 정도 했던 터라 옆집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기특해하며 각별하게 대해 주셨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던 나는 제법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는 일이 잦았고, 독채로 떨어진 내 방의 불빛으로 옆집 사람들은 내가 평소 몇 시까지 공부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은 그런 밤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에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늦도록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피곤해서 조금 일찍 잠을 청했다. 불을 끄고 누워 있으면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더 예민해지게 되고, 밤 9시만 넘어도 사람의 왕래가 없는 시골 마을에서는 작은 발걸음 소리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법. 게다가 나는 무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그때였다. ‘절그럭절그럭’, ‘저벅저벅’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점점 더 크게 내 방까지 들렸다. 이 늦은 밤에 불이 꺼진 걸 뻔히 알면서도 우리 집에, 그것도 독채인 내 방에 찾아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은 더 커졌고 이불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마침내 내 방문 앞에서 소리가 멈췄다. 숨을 죽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척’, ‘덜거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 뭐지? 소리를 질러야 하나? 누구야 이 시간에?’ “호근아!” 옆집 성용이네 아지매였다. 방문 앞에는 상보를 덮은 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오늘 성용이 할매 제사 지냈는데, 제삿밥 먹으라고 가져왔다.” 무심한 듯한 말을 남기고 아지매는 어둠 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상보를 들추니 나물에 비빈 고슬고슬한 제삿밥과 여러 가지 전, 과일과 떡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제사 음식을 따로 한 상 차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아지매는 내가 밤늦게까지 공부한다는 걸 알고 우리 집까지 들고 오셨던 거였다. 12시가 넘은 늦은 밤이었지만 나는 일생에서 가장 맛있는 제삿밥을 먹고 있었다.
박호근/서울 양천구 신정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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