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포도밭 가진 스페인, 최대 와인수출국 될지도
#어두운 와인바, 박미향과 ㅅ이 촛불을 사이에 두고 있다.
박: (계속 웃으면서) 스승님 무엇을 고를까요?
ㅅ: (따라 웃으며) 잘 고르시잖아요. (차림표 한 지점에 손가락을 짚고는) ‘킴 크로포드 소비뇽 블랑 말보르’ 어때요?
박: 여름은 역시 화이트와인인가요!
ㅅ: (특유의 진지한 말투로 종업원을 불러 킴 크로포드를 지목하며) 얼음통에 5~10분 담갔다가 주세요. 드라이한 화이트와인에 스파이시한 맛 느껴보신 적 있어요? 고추처럼 매운맛은 아니에요. 후추 정도 될까. (종업원이 와인을 가져와 서빙하자)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 맛보세요.
박: (화이트와인을 마시면서) 빌라 엠보다 달지 않네요.
ㅅ: (화이트와인 포도품종은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리슬링, 모스카토, 피노그리 정도죠. 빌라 엠은 모스카토로 만들어요. 왜 누드병인지 알아요?
박: (멍청한 표정으로) 아니요.
ㅅ: (이탈리아 와인회사 잔니 갈리아르도사에서 만들죠. 잔니가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고객에게 선물할 때 자신이 라벨을 그려줬대요. 그것이 시작이었죠. 오크향 나요? 박: (볼이 발그레 변하고 취기가 돈 듯한 목소리로) 좋은데요. ㅅ: (옛말에 요리 못하는 며느리가 음식 대가 시어머니를 속이는 방법 중 하나가 맵게 만드는 거라잖아요. 오크향이 너무 진하면 다른 향을 느낄 수 없어요. 저렴한 신대륙 와인들 중에 그런 것들이 있죠.(가방에서 주섬주섬 와인 한 병을 꺼낸다.) 박: 시에이치 베레스 리슬링 2006 임펄스? ㅅ: (리슬링이에요. 소비뇽 블랑과 어떻게 다른지 보세요. 타닌이 거의 안 느껴질 거예요. 산도가 높을수록 좋은 화이트와인이에요. 리슬링 와인은 ‘첫사랑의 와인’이라고 해요. 첫맛은 꿀처럼 달지만 끝맛은 쓸쓸하기 그지없으니깐. 박: (몸이 노곤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마지막에 느껴지는 허무감이 그런 거군요. 그래도 뭔가 인생의 끈적한 진액 같은 열정이 느껴지는 리슬링이 전 너무 좋네요. 2008년 풍경이다. ㅅ은 나에게 와인 스승이다. 진정한 술꾼은 어떤 종류의 술이든 마다하지 않는 법. 와인은 복잡하고 비싸고 번잡하고 꼴사나운 고상이 싫지만 한산소곡주나 안동소주처럼 술꾼의 호기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그는 와인 관련 글을 쓰는 전문가였다. 프랑스, 칠레,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스페인까지 안 가본 와이너리가 없다. 2007년 와이너리 취재를 앞두고 시험 전날 외워야 할 백과사전을 앞에 둔 중학생처럼 막막할 때 ㅅ을 만났다. 그는 차근차근 와인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맛을 감별하는 법과 포도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존댓말을 쓸 정도로 어색했던 사이는 소꿉친구처럼, 한 맛을 완성하는 페투치네 면과 견과류 토핑처럼 친해졌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 전공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은 와인에 대한 식견이 매우 겸손하면서 높은 경지라는 것이다. 몇 해 전 스승은 큰 고난을 겪기도 했다. “당뇨, 정말 당뇨라고? 나이가 30대 중반인데?” 미식이 대식의 단계를 넘어야 성취할 수 있는 경지인 것처럼 와인도 비슷했다. 너무 많은 와인과 음식을 먹은 것이 원인이었다. 음식을 탐험하는 이들이 통풍이나 비만에 시달리는 일은 허다하다. 지난주 이태원의 스페인 음식점 ‘봉고’에서 그를 만났다. 마치 라운지바나 클럽을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다. 작년부터 스페인 음식점이 늘고 있다. 강남구 신사동에서 유명한 ‘스페인클럽’이 3호점을 내고, ‘미카사’ 등의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파에야, 하몬, 보카디요(스페인식 햄버거) 등은 우리 입맛과 잘 맞는다.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늘면서 찾는 이들도 따라 늘었다. ㅅ과 카바(스페인 스파클링 와인)를 마셨다. “프랑스의 샴페인과 같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지만 가격은 훨씬 싸죠. 드라이하고 달지 않아요. 에프티에이(FTA) 체결 뒤 가장 주목받는 와인이 스페인 와인입니다. 좀더 다양한 맛들이 들어오고 있고, 전세계에서 포도밭이 가장 넓죠. 어쩌면 몇 년 뒤에는 세계 1위 와인수출국이 될지 몰라요.” 그는 최근 하는 일이 달라졌다. 꿈꾸는 자만이 가지고 있는 흥분이 그에게서 느껴진다. 스승은 역시 멋지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mh@hani.co.kr
ㅅ: (이탈리아 와인회사 잔니 갈리아르도사에서 만들죠. 잔니가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고객에게 선물할 때 자신이 라벨을 그려줬대요. 그것이 시작이었죠. 오크향 나요? 박: (볼이 발그레 변하고 취기가 돈 듯한 목소리로) 좋은데요. ㅅ: (옛말에 요리 못하는 며느리가 음식 대가 시어머니를 속이는 방법 중 하나가 맵게 만드는 거라잖아요. 오크향이 너무 진하면 다른 향을 느낄 수 없어요. 저렴한 신대륙 와인들 중에 그런 것들이 있죠.(가방에서 주섬주섬 와인 한 병을 꺼낸다.) 박: 시에이치 베레스 리슬링 2006 임펄스? ㅅ: (리슬링이에요. 소비뇽 블랑과 어떻게 다른지 보세요. 타닌이 거의 안 느껴질 거예요. 산도가 높을수록 좋은 화이트와인이에요. 리슬링 와인은 ‘첫사랑의 와인’이라고 해요. 첫맛은 꿀처럼 달지만 끝맛은 쓸쓸하기 그지없으니깐. 박: (몸이 노곤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마지막에 느껴지는 허무감이 그런 거군요. 그래도 뭔가 인생의 끈적한 진액 같은 열정이 느껴지는 리슬링이 전 너무 좋네요. 2008년 풍경이다. ㅅ은 나에게 와인 스승이다. 진정한 술꾼은 어떤 종류의 술이든 마다하지 않는 법. 와인은 복잡하고 비싸고 번잡하고 꼴사나운 고상이 싫지만 한산소곡주나 안동소주처럼 술꾼의 호기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그는 와인 관련 글을 쓰는 전문가였다. 프랑스, 칠레,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스페인까지 안 가본 와이너리가 없다. 2007년 와이너리 취재를 앞두고 시험 전날 외워야 할 백과사전을 앞에 둔 중학생처럼 막막할 때 ㅅ을 만났다. 그는 차근차근 와인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맛을 감별하는 법과 포도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존댓말을 쓸 정도로 어색했던 사이는 소꿉친구처럼, 한 맛을 완성하는 페투치네 면과 견과류 토핑처럼 친해졌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 전공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은 와인에 대한 식견이 매우 겸손하면서 높은 경지라는 것이다. 몇 해 전 스승은 큰 고난을 겪기도 했다. “당뇨, 정말 당뇨라고? 나이가 30대 중반인데?” 미식이 대식의 단계를 넘어야 성취할 수 있는 경지인 것처럼 와인도 비슷했다. 너무 많은 와인과 음식을 먹은 것이 원인이었다. 음식을 탐험하는 이들이 통풍이나 비만에 시달리는 일은 허다하다. 지난주 이태원의 스페인 음식점 ‘봉고’에서 그를 만났다. 마치 라운지바나 클럽을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다. 작년부터 스페인 음식점이 늘고 있다. 강남구 신사동에서 유명한 ‘스페인클럽’이 3호점을 내고, ‘미카사’ 등의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파에야, 하몬, 보카디요(스페인식 햄버거) 등은 우리 입맛과 잘 맞는다.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늘면서 찾는 이들도 따라 늘었다. ㅅ과 카바(스페인 스파클링 와인)를 마셨다. “프랑스의 샴페인과 같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지만 가격은 훨씬 싸죠. 드라이하고 달지 않아요. 에프티에이(FTA) 체결 뒤 가장 주목받는 와인이 스페인 와인입니다. 좀더 다양한 맛들이 들어오고 있고, 전세계에서 포도밭이 가장 넓죠. 어쩌면 몇 년 뒤에는 세계 1위 와인수출국이 될지 몰라요.” 그는 최근 하는 일이 달라졌다. 꿈꾸는 자만이 가지고 있는 흥분이 그에게서 느껴진다. 스승은 역시 멋지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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