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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회는 프랑스·한국의 음식공용어

등록 2011-05-19 14:06

뵈프 타르타르
뵈프 타르타르
케첩·향신료에 날고기 버무린 ‘뵈프 타르타르’
‘워낭소리’의 누렁이는 운이 좋은 놈이다. 소로 태어나 장수했다. 주인장과는 친구였다. 나른한 봄날 친구와 같이 졸고, 햇볕 따가운 여름에는 그늘에서 산바람을 즐겼다. 이만하면 소의 일생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주인이 요리사였다면? 영화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요리사의 눈에 소란 ‘아낌없이 사용할’ 훌륭한 식재료이다. 안심, 등심, 채끝, 우둔살, 앞다리, 양지, 갈비 같은 살코기와 꼬리, 간, 혀, 등골 같은 부위까지, 탐나는 식재료다. 조선시대 궁중요리인 금중탕에는 소의 두골로 부친 전이 들어간다. 콩팥과 염통은 구이요리의 재료였다. 이런 독특한 요리가 아니더라도 머릿속을 가볍게 스쳐 가는 요리만도 열 손가락이 넘는다. 불고기, 갈비탕, 꼬리곰탕 등.

서양도 마찬가지다. 바삭한 겉과 살짝 도는 핏빛 육질을 즐기는 스테이크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카사노바의 열정과 함께하는 쾌락의 요리>를 들춰보면 ‘베네치아식 송아지 간’ 요리가 등장한다. 힘줄을 뺀 송아지 간에 레몬 껍질, 소금, 후춧가루를 뿌리고 베이컨, 양파 등을 사용해 맛을 낸 요리다. “나를 가지세요. 오! 내 사랑” 하고 외치는 처자들에게 “식욕이 나는군요. 저랑 같이 드시겠어요?”라고 외쳤던 카사노바의 요리다. 소는 인간이 ‘힘쓰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단백질 공급원이다.

굽거나 찌거나 끓이지 않고 날것 그대로 즐기는 요리는 육회다. 생고기 특유의 식감이 가장 큰 자랑거리다. 지방이 거의 없는 우둔살이나 홍두깨살을 각종 양념으로 버무리고, 채 썬 배와 마늘을 곁들여 먹는 요리다. 지방에 따라서는 간장 양념 대신 고추장 양념을 쓰기도 하고 달걀노른자를 곁들이기도 한다.

타타르족 말고기 육회 프랑스로 건너가

놀랍게도 바다 건너 프랑스에도 육회가 있다. 뵈프 타르타르(boeuf tartare). 뵈프 스테이크 타르타르, 타르타르스테이크, 비프 타르타르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이 요리는 아시아 유목민족인 타타르족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타타르족은 중세시대에 이미 날고기를 갈아서 소금, 후추 등으로 버무려 먹었다. 타타르족의 말고기 육회가 프랑스로 건너오면서 쇠고기 육회로 변했다고 한다.

프랑스식 육회는 어떤 맛일까? 우리 육회와는 어떤 차이일까? 서울 강남구 삼성동 65번지 ‘레스쁘아’(L’Espoir)의 셰프 임기학(34·사진)씨가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의 차림표에는 ‘케이퍼와 홈메이드 케첩을 곁들인 한우 안심의 프랑스식 육회’가 있다. 뵈프 타르타르다. “타르타르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날것을 잘게 잘라서 여러 가지 음식과 섞어 먹는 음식을 말하죠. 쇠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뵈프 타르타르가 대표적입니다.” 연어를 주재료로 쓰면 연어 타르타르인 셈이다. 레스쁘아의 뵈프 타르타르는 쇠고기의 안심이 재료다. 우리 육회가 홍두깨살이나 우둔살을 쓰는 것과 다르다. 임씨가 안심 부위를 선택한 이유는 “힘줄이나 지방이 거의 없고 날로 씹어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육회는) 고급 부위를 많이 씁니다. 요리사에 따라 등심을 쓰기도 하죠.” 두번째 차이는 모양이다. 우리 육회가 길게 채를 썬다면 뵈프 타르타르는 정방형으로 손톱 반만하게 썬다. 가로, 세로, 높이를 약 0.3㎝(1/8인치) 정도로 자른다. “더 잘게 자르면 으스러지기도 하고 씹을 때 식감도 없어지죠.”

세번째는 양념이다. 재료와 버무리는 점은 같지만 양념의 내용이 다르다. 레스쁘아의 뵈프 타르타르에는 임씨가 직접 만든 케첩이 들어간다. 이 케첩에는 작은 비밀이 숨어 있다. 여러 가지 향신료가 붉은 케첩에 의지해 모여 있다. 끈적거리는 케첩은 일종의 향신료들의 “매개체”다. 이 오묘한 연대는 뵈프 타르타르의 맛을 한층 더 복잡한 단계로 끌고 간다. 브랜디도 들어간다. 브랜디의 용도는 고기의 잡냄새를 없애는 것이다. 우리 고기요리에 들어가는 청주나 술 한두 방울, 으깬 마늘과 비슷한 역할이다. 서양요리의 단골 식재료, 올리브유도 빠지지 않는다. 번개처럼 우리 육회의 참기름이 생각난다. 고소한 참기름이 빠진 육회는 팥 앙금 없는 찐빵이요, 신부 없는 결혼식이자, 문짝 없는 자동차다. “올리브유는 퍽퍽한 식감 때문에 넣어요.” 잘게 자른 샬롯(양파의 한 종류), 여러 가지 허브, 삶은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가 뒤를 잇는다. 조연들이다. 춤추는 조연들의 맛이 없다면 주인공의 스폿조명도 없다. 길을 나서기 전 옷매무새를 마지막으로 다듬듯 뵈프 타르타르의 최후 공정은 메추리알 노른자를 얹고, 접시 바닥에 아삭아삭하고 새콤한 샐러드 피클을 까는 것이다. 달걀노른자를 곱게 육회 맨 꼭대기에 용상처럼 올려놓거나 비벼 먹는 우리 방식과 닮았다. 우리 육회와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은 뵈프 타르타르는 신기하기만 하다.

전통 육회, 마늘·간장·소금에 참기름만 살짝


육회
육회
임씨는 미국의 한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처음 맛을 봤다. 존슨 앤 웨일스(Johnson&Wales) 대학교에서 요리를 공부할 때다. 한국에서 맛본 육회의 기억은 고추장에 버무린 양념 맛이었다. “그 당시 순수한 고기 맛이 느껴졌습니다.”

하얀 접시에 소담한 모양의 뵈프 타르타르가 나타났다. 붉은색 가운데 틈틈이 흰자와 노른자가 보인다. 빵은 친구처럼 그 옆을 지킨다. 파르메산치즈는 파수꾼처럼 올곧게 뵈프 타르타르를 싸고 있다. 메추리알의 노른자가 보석처럼 빛난다. 뵈프 타르타르는 외유내강형이다. 부드러움 속에 이를 끌어당기는, 강하게 씹히는 맛이 있다. 메추리알의 노른자를 붓자 부드러움은 격정에 휘말려 거리를 뛰쳐나간 무희처럼 강해진다. 치즈를 곁들이자 또다른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말수가 적은 우직한 남자의 스쳐가는 팔뚝처럼 묵직하다. 바삭한 빵을 초청하자 마치 위트 있는 이를 만나 유쾌한 한때를 보내는 듯하다.

임씨가 자신의 차림표에 뵈프 타르타르를 둔 이유는 순수한 “고기 맛”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의 손을 이끌고 서울 마포구 용강동 ‘이박사의 신동막걸리’로 향하고 싶어진다. 이곳의 육회는 전통의 기법을 따르지만 주인 이원영(38)씨만의 음식철학을 담고 있다. 임씨처럼 고기 자체의 맛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일교차가 큰 경북 북부지역 고기만 씁니다. 낮에는 풀어져 있다 밤이 되면 추위 때문에 움츠러드는 가축은 육질이 탄력 있고 맛나죠.” 강원도 한우들이 맛있는 이유와 비슷하다. 달걀노른자도, 배도, 양념에 들어가는 설탕도 이곳 육회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육쪽마늘과 간장, 천일염, 고향에서 직접 만든 참기름만 소의 홍두깨살과 만나 사랑한다. 이것들조차 권태기가 올 만큼 양이 많지는 않다. “쇠고기 생고기는 차진 식감만 있어요. 원래 무맛과 비슷하죠.” 그 맛을 최대한 살린 육회다. 이씨는 ‘이박사’란 닉네임으로 네이버 파워블로거로도 활동했다. 신동막걸리에 반해서 결국 경상도 음식과 막걸리 등을 차림표에 내건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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