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0권의 합창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파주 헤이리에서 ‘책의 숲’을 만나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세상의 모든 책을 보관하고 있는 도서관을 상상했다. 경기 파주시 헤이리에서 지난 20일 마주한 한길사 책장을 보고 보르헤스가 떠올랐다. 이 책장은 ‘바벨의 도서관’을 꿈꾸는 듯 크게 두 팔 벌린 채 서 있었다.
한길사가 운영하는 북카페 ‘포레스타’ 안에 이 책장이 있다. 높이 6m, 너비 20m. 꽂아둔 책만 1만2000권. 모두 2억5000만원어치. 책장 만드는 데만 4000여만원이 들었고, 직원 4~5명이 책을 꽂는 데 꼬박 닷새가 걸렸다. 한길사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펴낸 책을 가지런히 꽂아둔 이 책장은 한길사의 역사를 보여주는 그림 한 폭에 가깝다.
이달 초 북카페를 열면서 이 대형 책장을 세상에 낸 이는 김언호 한길사 대표다. 김 대표는 ‘송뢰’(소나무가 피리를 부는 소리)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북카페 이름도 이탈리아어로 숲인 포레스타다. 책의 숲 한 면을 메우고 있는 책장도 나뭇잎을 닮은 녹색이다.
책장으로 눈길을 옮겼다. 멀리서 바라보니 붉고 푸른 책 겉표지가 어울려 단풍숲처럼 다가왔다. 가까이에서는 높이만큼이나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다. 리영희 전집의 겉표지로 쓴 흑백 나무 사진과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의 흰 겉표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의 노란 표지와 형형색색의 제목상자가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것만 같다.
김 대표가 책장 한가운데 붙여둔 영국 작가이자 건축가인 윌리엄 모리스의 책 판본을 가리켰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몰라요. 위대한 예술가이자 출간 운동을 벌인 운동가였지요.” 그의 생각처럼 아름다운 책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에게 세상에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책장에 이름을 붙여 달라고 부탁했다. “글쎄…. ‘책들의 합창’ 정도면 어떨까. 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면 말이죠.”
파주=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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