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리를 마치고 가지런하게 책이 꽂혀 있는 〈esc〉팀 이병학 기자의 책상.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정리 전문가’ 윤선현씨의 비법 완벽공개…정리 뒤 ‘애프터서비스’도 중요
‘정리 전문가’ 윤선현씨의 비법 완벽공개…정리 뒤 ‘애프터서비스’도 중요
“책 정리 좀 하실래요?”
책장 정리 기사를 위해 책 정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팀장은 갑자기 책상 밑에 쌓아둔 책을 캐비닛으로 몽땅 치워버렸다. 책 무덤 속에 파묻혀 기사를 쓰는 건너편 학술 담당 기자는 “이대로가 행복하다”며 눈길을 돌렸다. 매일 기차역 대합실처럼 책이 오고 가는 <한겨레> 편집국, 그중에서도 책 홍수가 가장 심한 문화부에서 ‘책 정리’는 ‘4대강 사업’ 뺨치는 무모한 일을 넘어 ‘공포스러운’ 작업이기도 하다. 결국 〈esc〉는 멀리 여행 취재를 떠나 자리를 비운 〈esc〉팀 이병학 기자의 책상을 ‘정리 대상’으로 지목했다. 물건 정리부터 인맥·시간 정리까지 각종 정리 컨설팅을 하고 있는 윤선현 ‘베리굿 정리 컨설팅’ 대표와 함께 새 책장을 들여놓고 제자리를 못 잡고 여행중인 책들의 ‘정착’을 도왔다.
책 정리 작업은 ‘버림’에서 출발했다. 윤 대표는 “집 정리 가운데 책 정리가 가장 많이 골치 썩는 문제”라며 “예전에 나 또한 책에 집착해 고생했다”고 말했다. “다 보지 못한 토익 영어책이 책장에 꽂혀 있다면, 책을 볼 때마다 ‘실패’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끊임없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줍니다.” ‘그래도 아까운데…’ 생각하며 책을 쌓아두는 건 집착일 뿐이라는 것이다.
집착 버려야 진짜 사랑…책도 마찬가지
책을 ‘버리는 기준’은 ‘현재 중요하거나, 앞으로 쓸모 있는지’다. 책장에 꽂힌 책을 정리하는 경우에는 버릴 책부터 하나씩 빼는 작업을, 흐트러진 책을 정리할 때는 구분하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그밖의 잡동사니는 작은 상자를 준비해 모아둔 뒤 책장을 정리하고 나서 따로 정리하기로 했다.
책을 솎아보니 책꽂이 두 칸 분량의 책이 다른 책장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그다음은 ‘분류’ 작업. 남은 책을 도서관의 ‘한국십진분류법’처럼 근사하게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 가정이나 사무실에선 벅찬 일이다. 이 때문에 그는 “세 종류로 구분하는 게 가장 알맞다”고 조언했다. 책을 ‘단순한 정보’와 ‘응용할 수 있는 자료’, ‘개인적인 책’ 등으로 나눠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좀더 구체적으로 나누면 금세 분류한 책이 뒤섞이고 책 주인도 제대로 기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행 담당인 이병학 기자의 책상에는 여행 자료, 여행 지도, 각 지역의 홍보자료, 출판사에서 보내온 여행 관련 서적들이 뒤섞여 있었다. 윤 대표의 분류법에 따라 여행 자료, 국내여행, 지역정보 세 가지로 구분해봤다. 가장 자주 쓰게 되는 지역정보 관련 책은 손이 뻗기 좋은 첫째 칸에 꽂기로 했다.
어떻게 정리할지를 정했다면 책장의 공간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책을 꽂아야 한다. 무작정 책을 꽂다 보면 자리가 모자라는 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책 꽂기는 힘도 많이 들고 짜증도 나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과정”이라고 윤 대표는 말했다. 좀더 품을 덜기 위해서는 분야별로 꽂을 책을 한 줄로 늘어놓은 뒤 책장의 공간을 가늠해보는 게 현명하다. 공간을 나눌 때도 최대한 공간을 확보해둬야 새 책을 꽂을 수 있고, 책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윤 대표는 설명했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어수선하게 꽂힌 아이들 책 때문에 고민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꽂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생각부터 버리세요.” 윤 대표의 대답은 단순했다. “판형이 제각각인 아이들 책을 무조건 보기 좋게, 예쁘게 꽂는 일은 부모에게나 좋은 일”이라며 “아이 눈높이에서 다양한 책을 쉽게 볼 수 있도록 꾸며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 책 정리, 들쭉날쭉해도 괜찮아
가장 먼저 아이의 키에 맞춘 책장의 공간에 아이들 책 전용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눈높이에서 책을 뽑을 수 있는 높이가 가장 좋다. 그다음으로는 ‘자주 보는 책’과 ‘잘 안 보는 책’을 구분해 자주 보는 책을 쉽게 뽑도록 해야 한다. 위인전집 등은 같이 모아두는 편이 낫다. “책 옆면에 스티커를 붙여 영어 관련 책은 빨간색, 놀이용 책은 파란색 등으로 분야별 구분을 해두면 아이들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책 정리보다 더 중요한 건 정리한 뒤다. 이른바 ‘애프터서비스’다. 책장은 가족 구성원 각자 따로 구별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거실·방 가운데 모두가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 가장 적합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주일에 한번쯤 15~30분 정도로 시간제한을 두고 ‘정리하는 날’을 정해 책장 칸마다 정리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윤 대표는 강조했다. 특히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책만 뽑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석 달 단위로 책을 꽂아두는 위치를 바꿔주면서 새로운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진짜 사랑하면 방치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책장도 정보가 흐르는 공간이잖아요. 단지 예쁘게 꽂아두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요. 책도 끊임없이 바꿔줘야 지식이 잘 흐를 수 있죠.”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윤선현 대표가 필요한 책과 필요 없는 책을 구분한 뒤 옮기고 있다.
책장의 공간을 가늠해보려고 분야별로 꽂을 책을 한 줄로 늘어놨다.
책 정리를 하기 전, 책과 자료, 잡동사니가 뒤섞여 있던 이병학 기자의 책상 모습.
아이들 책은 키 높이를 맞추기보다는 자주 보는 책을 기준으로 꽂아 두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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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정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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