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꼬리를 손질하는 요리사.(김종수 기자)
[매거진 esc]
푸드스타일리스트 강지영의 진기한 요리체험기·스타 셰프 양지훈의 웃긴 성공기
중세 프랑스에는 재미있는 향신료 빵이 있었다고 한다. 쫄깃한 빵은 남성의 성기 모양이거나 포동포동한 여성의 젖가슴과 엉덩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다산을 기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달콤한 빵을 맛보기도 전에 웃음부터 터뜨렸다. 음식에 뿌리는 양념 중에 웃음만한 것이 없다. 맛을 더 고소하게 한다. 세상을 여행하다 보면 프랑스인들의 향신료 빵처럼 ‘생활밀착형 웃음코드 먹을거리’를 만나기도 한다.
20대부터 여러 나라를 여행한 푸드스타일리스트 강지영씨는 세계인들의 신기한 맛에 대한 경험이 많다. 그는 <나는 서울이 맛있다> <서울 푸드 파인더> <파티푸드 인 스타일> 등의 음식책을 저술한 요리평론가이다. 요리평론가의 기억 속에 잊을 수 없는 재미있는 맛이란 어떤 것일까? 그는 가장 잊을 수 없는 요리를 사막에서 만났다.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강씨는 부유한 아랍계 친구의 손에 이끌려 베두인족(아랍의 유목민)의 화려한 결혼잔치에 간 적이 있다. 29살 때다. 피로연 정원에는 모래가 깔려 있고 천막에는 길게 늘어진 흰색 천들이 춤추는 무희들처럼 하늘거렸다. 폭신한 베개들이 유혹하고 물담배는 태양을 질투하듯 뿜어 올라갔다.
축하연이 한창 흥을 더해갈 때쯤 건장한 사내들이 느닷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강씨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사내들은 커다란 웅덩이를 힘차게 “영차영차” 파고 나무조각들을 깔아 넣었다. 호기심에 눈이 동그랗게 변한 그는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웅덩이에 들어갈 것이 궁금했다. 불쇼나 뱀쇼 같은 관광지 쇼가 한바탕 벌어질 줄 알았다. 드디어 주인공이 나타났다. 식용으로 잡아 내장이 잘 손질된 낙타였다. ‘오 마이 갓!’
낙타 속에 양, 양 속엔 닭이…
이미 세상과 하직한 낙타는 첫날밤을 기다리는 신혼부부처럼 다소곳하게 웅덩이 아래로 들어갔다. 평범한 낙타는 아니었다. 낙타의 뱃속에는 사막의 뜨거운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이 있었다. 어린양이었다. ‘오 마이 갓!’ 잘 손질된 양이 낙타의 뱃속에 웅크리고 들어가 있었다. 신기한 모양새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린양의 뱃속에는 닭 한마리가 있었다. ‘오 마이 갓!’ 닭의 뱃속이 궁금해진다. 뱃속에는 감자, 양파, 견과류, 마른 과일, 향신료 등이 꽉 채워져 있었다. 나무에 불이 붙고 이 생경한 음식 위에는 모래가 덮였다.
사람들이 춤추고 와인을 마시는 동안 낙타 바비큐는 익어갔다. 강씨는 피로연을 즐길 생각은 아예 접어두고 요리사들 옆에 딱 붙어서 과정을 지켜봤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죠. 아랍권에서도 이런 요리를 맛보기란 정말 어려워요. 정말 고급요리인 거죠.” 익은 고기는 보들보들 부드러운 살점을 자랑하면서 매콤한 소스와 함께 식탁에 등장했다. “살짝 누린내가 느껴졌는데 역한 것은 아니었어요. 불향과 향신료 냄새가 강했어요. 사슴고기 맛 같았다고나 할까요. 낙타 살은 아주 쫄깃했어요.”
그의 재미있는 요리체험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4년 중국 광저우를 여행할 때다. 아침식사로 콘지(죽)가 나왔다. 콘지는 중국인들이 아침식사로 먹는 평범한 요리다. 그의 눈에 불을 지핀 것은 콘지와 함께 나온 반찬이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번데기보다 2~3배 큰 크기의 벌레였다. 향신료와 간장으로 졸이고 바삭하게 튀긴 고단백질 반찬이었다. “우왕, 징그러워” 강씨의 친구들은 비명을 질렀다. 음식에 관해서는 어떤 편견도 없는 미식가 강씨는 용감하게 하얀 죽 위에 벌레를 올려놓았다. 물컹한 죽 사이로 바삭바삭한 다리들이 버둥거렸다. 둘은 천생연분이었다. “텍스처(식감)가 훌륭했어요. 바삭바삭하고 맛있었어요. 우리 우엉조림 같은 맛이었죠.” 강씨는 1994년의 절반을 이런 식으로 여행했다.
맛에 대한 기억을 물어보면 사람들은 매운맛에 대한 경험을 털어놓을 때가 많다. 매운맛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강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스리랑카에서 무서운 커리를 먹었다. 그가 먹은 것은 맵다고 소문난 ‘빈달루 커리’보다 매운 커리였다. 새벽 5시, 강씨의 위는 무장해제 된 공터였다. 코끝을 스쳐가는 향만으로도 울컥 청양고추의 기운이 느껴지는 커리는 강씨의 위를 향해 돌진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먹었는지 모르겠어요. 아주 매웠어요.” 그는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고 속은 쓰렸다. 날렵하게 스테이크의 포크질을 하던 얇고 가는 손은 물을 계속 찾았다. “인도 친구들이 ‘너도 그거 먹을 줄 아냐!’ 하는 소리를 나중에 하더라구요.” 매운 커리는 상쾌한 강씨의 이른 아침을 뜨겁게 데웠다.
그는 베트남에서 코브라뱀 고기 코스요리를 맛보았고 호주에서는 악어꼬리로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악어스테이크는 여행 마니아들에게도 익숙한 요리다. 대형슈퍼에서 구입한 악어꼬리는 두께 2.5㎝ 정도에 금메달보다 조금 큰 크기였다고 한다. “중간에 뼈가 있어요. 웰던으로 익혔죠.”
강씨는 그 나라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그 나라만의 음식을 먹다 보면 친구가 된다. “음식은 기후나 지리적 이유로 발달하는 경우가 많아요. 더운 나라에 불 요리가 적은 것처럼. 선입견을 버리고 음식을 먹으면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죠.” 요리평론가의 기억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요리가 많다.
영어 못해 인정받은 한국인 요리사
음식을 직접 만드는 요리사의 기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스타 셰프 양지훈은 미국 주방에서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양지훈은 한국에서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르 코르동 블뢰’에서 수학한 실력가다. 현재 ‘남베101’이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한국식 프렌치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요리공부를 마치고 미국 코네티컷주의 ‘레인’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다. 군기가 바짝 든 주방의 대장은 존이라는 요리사였다. 실력있는 요리사들에게 흔히 따라붙는 ‘더러운 성질’이 존에게도 있었다.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대장에게 동양인 요리사가 인정받고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갓 입사한 어리둥절한 요리사는 먹잇감이다. 양씨는 주방에서 ‘지’(g)로 불렸다. 이름이 비슷한 중국인 요리사들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지, 아 유 노 브레인?”이라는 소리를 밥 먹듯 들었다. 양씨는 석달 만에 무서운 존에게 인정받아 ‘마스터 쿡’이 되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영어를 못해서였다. 동료 요리사들은 존이 주문하는 일에 “노”라고 답하고 “비코즈~”로 설명을 하는데 양씨는 짧은 영어실력 때문에 “노”를 할 수가 없었고 “비코즈”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예스”를 외쳤다. 일들이 그에게 몰렸다. 일을 해낼수록 그는 존에게 인정받았다. 그의 한국 식탁에는 존의 주방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기억들이 빛난다. 웃음이 솔솔 뿌려진 요리는 산해진미보다 맛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중국인들이 먹는 콘지.(박미향 기자)
양지훈 셰프가 만든 프랑스 요리 ‘존 도리 (John Dory)’. (101 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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